“윤대통령, 야당과 국정동반자로 협력해야 한다” [헤경이 만난 사람-박주선 前 국회부의장]

2023. 10. 1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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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구속·네번무죄 선고 ‘불사조 정치인’
故김대중대통령에 직언 ‘영민한 사람’ 평가
대통령취임준비위 등 尹정부 성공 도와
어떤 역할이라도 오면 ‘살신성인’ 할것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도왔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계승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고 적임자로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박주선 전 국회 부의장 측 제공]

“아들아. 정직허고 솔직해야 헌다. 글고 우덜이 남한테 도움 받고 빚을 많이지고 살았응게. 항시 베풀고 겸손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 알았재?”

박주선 전 국회 부의장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남긴 이 메시지는 인생의 나침반이 됐다. 1949년 전남 보성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수석합격, 검사로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청와대에도 들어갔고 국회의원 뱃지도 4번을 달았다. 흙수저 신화를 일군 것이다.

‘아주 영민한 사람’, ‘소신을 가지고 직언 하는 사람’,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검사’. 그를 발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린 평가다. 하지만 이내 정치적 좌절과 나락에 빠진다. 검찰이 4번이나 그를 구속했다. 그러나 4번 모두 무죄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그는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가 됐다. 오뚜기처럼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에서 ‘불사조’라는 별명도 얻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민주당과 박주선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소주나 한잔 합시다.”(노무현 전 대통령) 지난 2008년 봉화마을에서 만난 노 전 대통령과의 화해한 일화도 유명하다.

지난 대선에서는 서울대, 검찰 후배인 윤석열 대통령을 도왔다. 호남출신 국회의원의 지지선언은 화제가 됐다. 욕도 들었다. 그만큼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봤고 깨끗하고 결기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이 현재 수사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만나는 것은 부담이다. 하지만 야당 협조가 없으면 국정이 마비된다. 일단은 만나서 국정 참여를 권유해야 하고 국정동반자로 협력해야 한다. 다만 이를 정략적으로 악용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는 뚝심과 배짱이 있다. 국정운영 노하우와 풍부한 정치경험, 인간미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차기 총리후보로도 오르내린다.

지난 5일 광주의 한 식당에서 1시간 가량 인터뷰를 나눴다. 그는 살아온 삶과 한국 정치, 대한민국 미래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총선 낙선 후 서울로 올라갔다. 광주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했는데 실망과 낙담도 컸을 것이다. 어떻게 달랬나?

▶나의 부족하고 미흡한 점을 유권자가 평가한 결과로 생각한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진심과 성심을 다해 지역을 위해 노력했다. 국회의원은 말과 행동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지역이, 국가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결과로 보여주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지만 과정에서 여의치 못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 지지 후 공동선대위원장,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을 역임했다. 가까이서 본 윤 대통령은 어떤 분인가?

▶윤 대통령은 검찰 후배이기는 하지만 고시 기수(박주선 16회·윤석열 33회)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검찰 재직시에는 만나 본 일은 없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공수처법, 검찰수사권 조정문제로 자문을 구한적이 있다.

‘검찰은 지금 호랑이 등에 타고 달리는 상황이다. 이것이 힘들다고 내려오면 잡혀 먹힌다. 소신과 강단으로 국민의 검찰, 국민의 총장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티시라’고 조언했고 ‘존경하는 선배님, 귀한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합리적 이성과 판단에 근거한 건설적 대안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평소 생각을 전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공수처법을 반대한다. 실제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지 않았느냐.

문재인 정권이 계승되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국정일탈과 국가 기본이 많이 훼손됐기에 정권 교체가 필요한 시기였다. 윤 대통령은 사심이 없고 소신과 강단을 가진 사람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셔본 참모의 눈으로 볼 때 정의와 결단, 용기를 갖췄다. 정치경력이 짧아 신세 진 일도 없다. 다만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갈고 닦으면 대한민국의 보석이 될 수 있는 원석이라 생각한다.

-윤 대통령과는 서울대, 검찰 선후배 관계다. 시중에는 대통령이 존경하는 멘토로 알려졌는데 지금도 대통령실과 소통하나?

▶국가원수와 접촉한 이야기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사적인 접촉은 없고 지역의 현안과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은 비서실 등에 제시한 적이 있다.

병든 환자를 고치기 위해서는 수술을 한다. 이 과정에서 통증과 아픔이 있고 때론 후유증도 남는다. 그리고 충분한 회복기도 필요하다. 윤 정부는 과거 여러 잘못을 바로잡고 있다. 야당이 다수당이다 보니 갈등과 마찰도 있다. 방향과 목표만 옳다면 국민들도 평가할 것이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으면 국민 기대에 맞는 신선한 사람이 필요하다. 과거 정권에서 일했던 사람을 또다시 기용하면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듣는다. 결국 야당에게 빌미를 주는 격이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겪으면서 지역민들의 정치 불신, 소외가 크다. 지난 지방선거 때 광주의 낮은 투표율이 그 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주인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스스로 나라를 운영하기 어려우니 대표기관을 뽑아서 운영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후보에 대한 검증과 평가를 거쳐 인물을 뽑아야 지역과 국가가 발전한다. 주권자인 국민도 책임이 있다. 국민을 대표할 대표 선출을 소홀히 하면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파괴하게 된다.

호남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역할을 했다. 호남정신과 자부심으로 주권자의 도리와 사명, 책임,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호남의 자긍심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광주전남은 구심점이 없고 원로가 없다고 여긴다.

▶정치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선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주권자의 역할도 크다. 김대중 이후 호남 출신 대통령감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원죄가 있다. 호남정치 복원을 위해서는 인재를 발굴해 키워야 한다.

전남 보성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는 늘 겸손과 정직을 강조했고 삶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속 서있는 학생이 초등학교 시절 박주선 前국회부의장이다.

-박주선 하면 실력있고 인간적인 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휴머니스트 박주선의 밑바탕 가치, 철학을 지키는 힘은 무언가?

▶살신성인. 어린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이 몸에 배어있다. 어린시절의 가르침이 평생 가는 것 같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중학교에 입학 무렵의 기억이다. 등록금과 교복 살 돈이 없었다. 읍내로 나간 어머니가 돈을 마련해 왔다. 자식을 위해 병원에 가서 피를 판 것이다. 집이 너무나 가난했다. 어머니는 실질적인 가장이었고 자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하늘이 감동 해서 자식을 성공시켰다”고 말할 정도다. 나는 불효자다. 어머니 가슴을 멍들게 했다. 4번 구속과 4번 무죄의 과정에서 어머니로 하여금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게 해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지금도 눈물이 나온다.

-1974년 사법고시를 수석합격했고 4선의원,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다. 그렇지만 4번 구속 4번 무죄를 받았다. 역경과 도전을 견딘 삶의 바탕은 무엇인가?

▶제 스스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진실은 잠시 누가 숨길 수 있어도 영원히 지울 수 없다.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가면 사필귀정의 결과가 이루어 진다.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의 근간이다.

사법개혁과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 스타일로 해서는 절대 안된다. 죄없는 사람이 처벌받고 구속되지 않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무소속 의원시절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스스로 법을 지키지 못한 한심한 행태를 보였다. 오죽 했으면 고등법원 재판장이 심문기일에 “이거 난감하군요, 수사기록을 보기도 전에 구속허가장이 왔습니다”면서 “며칠 계시겠습니까, 잠깐 들어가 계시죠”라고 위로를 전했다.

-흙수저 등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격려와 조언 한말씀 부탁드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실패할수록 성공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결코 포기하지 말라. 이말이 인생을 받쳐주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차기 총리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한 전략과 혜안이 궁금하다.

▶나는 부족하고 미흡한 사람으로서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통령을 도왔다고 자리를 탐해서도 안된다.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이 성공해야 그 결실이 국민과 국가에 돌아온다. 어떤 역할이라도 오게 되면 지위고하를 떠나 살신성인의 자세로 나설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주선은 아주 영민하고 직언하는 사람”이라고 평가 했다고 들었다. 김 전 대통령과의 법무비서관 시절 인연이 궁금하고 이를통해 배운 철학과 가치 무엇인가?

▶인수위 시절 김 전 대통령은 첫만남에서 “영남정권에서 호남출신은 인사차별과 소외를 받았는데 유독 박주선은 요직을 거친 이유가 무엇이요. 큰 ‘빽’(배경)이 있던 거 아니요?” 하고 묻기도 했다. 김중권 비서실장은 “법조인 출신, 판검사 10명을 만났는데 그 중 8명이 박주선을 추천했다. 당신이 적임자”라고 했다. 그렇게 청와대에 들어갔다.

김 전 대통령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사심이 없고 판단력과 소신을 갖춘 사람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상대적으로 정의관념이 강한 부처다. 원칙과 기준에 어긋난 인사를 안 한 것이 혜택을 본 이유다. 대통령께서도 나에게 편향되지 않는 인사를 하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은 부족한 나를 각별히 신임했고 총애했다. 많은 영광스러운 시간이 있었다.

-오는 18일 광주에서 동서미래포럼이 열린다. 잘모르는 분이 많을 것 같은데?

▶뿌리깊은 영호남의 갈등을 해소하고 수습해야 한다. 이게 국정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통합과 국력결집을 이끌 수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병리현상이 지속되고 이를 치유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윤 대통령 후보시절 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동서화합미래위원장을 겸하고 있었다. 당시 구성원들과 선거가 끝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의기투합하기로 했다.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때도 영호남분들이 많이 참여했다.

광주 5·18, 대구 2·28 등 양 지역에서는 유사한 민주화 운동이 펼쳐졌다. 박정희 산업화 정신과 김대중 포용민주 정신을 결합해야 한단계 도약할 수 있다. 과오에 집착할게 아니라 강·장점을 결합해 미래로 나가야 한다. 지방시대위원회 우동기 위원장이 지방균형발전 정책을 다듬고 있다.

-혈색이 좋고 건강하게 보인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생활을 절제하고 주기적으로 운동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욕심을 버리고 살고 있다. 사회와 국가,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이다.

광주=황성철·서인주 기자

si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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