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운용으로 변신한 강성부펀드의 노림수 통할까
한진칼과 달리 경영권 분쟁 어려워 성공은 ‘안갯속’
(시사저널=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강성부펀드'로 더 잘 알려진 KCGI는 최근 매물로 나온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했고, 광복절인 8월15일 KCGI자산운용을 정식 출범시켰다. 사모펀드였던 KCGI가 자산운용 회사로 거듭나려 한 이유는 간단하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행동주의 공모펀드'를 출시하기 위함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강성부펀드는 왜 자산운용사를 인수했나
요컨대 사모펀드는 연기금 등 기관으로부터 정해진 금액을 받아 만기가 정해진 펀드를 설정하고, 만기 시 펀드를 청산해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하지만 충분한 자금력 없이 지분 확보 경쟁을 펼친다면 추가 자금 조달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모펀드가 적지 않다. 실제로 KCGI는 지난 6월 원스토어 투자를 타진했으나 주요 기관투자가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펀드를 조성하지 못했고 결국 투자를 포기해야 했다. 자산운용사로 공모펀드를 운용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개인들이 수시로 입금하는 투자금이 자금력을 계속 보강해 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KCGI자산운용은 사명 변경 이후 9월20일 첫 공모펀드로 'KCGI ESG동반성장 펀드'를 출시했다.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투자자가 초과수익을 얻는 것이 가능한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라고 회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앞서 강성부펀드는 17.29%의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 등과 '제3자 주주연합'을 구성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3년여에 걸친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그리고 지난해 3월 호반건설에 보유지분을 대부분 매각하면서 3000억원대 수익을 실현했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서 성공을 거둔 KCGI는 이후 후속 공격 대상을 빠르게 확대했다. 지난해 12월 오스템임플란트 지분 5.58%를 확보했고 올해 1월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이어 지분율을 6.92%로 늘리며 압박을 한층 강화했다. 오스템임플란트 측은 초대형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UCK파트너스 등과 손잡고 주식 공개매수 후 상장폐지라는 카드로 반격했다. 결국 KCGI는 올해 3월 공개매수에 참여하며 일찍 손을 털었다.
KCGI는 DB하이텍을 새로운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KCGI는 3월말 유한회사 캐로피홀딩스를 통해 DB하이텍 지분 7.05%를 취득했고, DB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막기 위해 DB하이텍의 팹리스 물적분할을 추진해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DB그룹은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주사 전환을 통보받았다. 매년 말 기준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이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사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주사로 전환하면 상장 자회사의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DB하이텍 최대주주인 DB Inc의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 12.42%에 불과했다. 결국 DB그룹은 DB하이텍의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팹리스 물적분할을 결정했다. 일부 소액주주의 반발에도 올해 3월29일 주주총회를 통해 이 물적분할 안건은 가결됐다. KCGI는 이를 문제 삼으며 법원에 DB하이텍의 회계장부 등 열람 및 등사, 이사회 의사록 열람 및 등사를 신청하는 가처분을 제기하기도 했다.
올해 8월에는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도 포문을 열었다. KCGI자산운용은 약 2%의 지분을 확보하고 공개 주주서한을 통해 현대엘리베이터의 개인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사임을 요구했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현 회장(지분율 5.74%)과 현대네트워크 등 특수관계인 19명이 27.77%의 지분율로 경영권을 가지고 있었고 2대 주주인 쉰들러홀딩스가 지분 14.30%를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키움증권 지분을 매수하며 행동주의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움증권 역시 오너인 김익래 회장이 CFD 사태 직전의 다우데이타 주식 매도 논란에 휘말리며 물러난 상태다.
한진칼 엑시트 재현 가능할지 주목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KCGI자산운용의 행보를 놓고 적지 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DB하이텍, 현대엘리베이터 모두 KCGI자산운용의 지분 확보 소식이 전해지며 주가가 단기적으로 상승했지만 이후 주가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DB하이텍은 4월초 8만원에 육박했던 주가가 5만원 수준으로 내려갔고,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8월23일 5만원을 넘었던 주가가 최근 4만원대 초중반까지 떨어진 상태다.
KCGI자산운용이 한진칼의 성공 방정식에 매몰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진칼 성공은 한진 오너 일가 중 조현아 측이 KCGI에 합류하면서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생겨났고 이에 주가도 급등할 수 있었다. 하지만 DB하이텍과 현대엘리베이터는 상황이 다르다. DB하이텍의 경우 최대주주인 DB Inc의 지분율이 12.42%이고 김준기 창업회장이 3.61%를 보유하는 등 최대주주 측 지분율이 17.82%에 달한다. KCGI자산운용 측 지분율은 7.05%에 불과하다. KCGI가 소액주주들과 연대하는 방안도 있지만 지분율 차이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김준기 창업회장과 아들인 김남호 DB그룹 회장의 갈등설도 흘러나오지만 한진그룹의 남매간 갈등과 DB그룹의 부자간 갈등은 다른 이야기다. DB하이텍은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1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지만 김 창업회장은 사재 3500억원을 출연하면서까지 회사를 지켜냈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 여기에 최근 DB Inc가 비상장법인 DB메탈과 합병에 나서면서 지주사 전환 우려도 사실상 해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6월말 기준 DB Inc의 자산총액은 4312억원, DB메탈은 4312억원이다. 오는 12월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승인되면 내년 2월 합병은 완료된다.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2대 주주인 쉰들러홀딩스가 지분을 계속 줄여 나가면서 KCGI자산운용이 난감한 상황이다. 올해 6월 15.50%에 달하던 쉰들러홀딩스의 지분율은 지속된 장내 매도로 현재 12.87%까지 낮아졌다. 여기에 현 회장이 PEF 운용사 H&Q와 손잡고 지주사 전환 및 3100억원 투자유치에 성공하면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키움증권의 경우 2021년 7월 발행한 4400억원 규모 상환전환우선주(RCPS) 때문에 사실상 상방이 쉽지 않은 종목이다. 주가가 전환가액 이상으로 뛰면 보통주로 전환되면서 대규모 매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4400억원 가운데 4000억원에 달하는 4차 RCPS는 전환가액이 15만417원이고 지난해 6월말부터 보통주로 전환 청구가 가능한 상황이어서 KCGI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할지에 재계 및 금융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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