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그래도 햇빛에 답이 있다
몇 년 전 한 학술행사 때 일이다. 영농형 태양광을 연구 중인 교수님이 A, B, C가 적힌 봉지 세 개를 내민다. “웬 보리에요?” 물으니 먹어보고 맛이 다른지 답해줄 수 있냐고 한다. “태양광 패널 아래서 자란 작물이 맛없다는 의견이 있어서요”라며.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다. 내 둔한 혀로는 차이를 느낄 수 없었는데 나중에 결과를 들으니 반수 이상이 차이를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세 종류는 각각 태양광 패널 아래서 경작한 것과 일반 노지에서 키운 보리, 그리고 패널 아래 LED램프로 보광한 경우였는데 패널 아래서 자란 보리가 맛있다는 사람이 반대 경우보다 오히려 많았다고 한다. 차이가 근소하고 맛이 비슷하다고 답한 경우가 과반이라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맛엔 별 영향이 없었다는 뜻이다.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도 일본 등을 중심으로 영농형 태양광 실증·보급을 시작한 지 20년이 돼간다. 우리나라도 2016년 이래 꾸준히 실증해왔다. 일각에선 아직도 농촌형과 혼동해 농지 훼손이나 소멸을 걱정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영농형 태양광은 ‘agrivoltaics’라는 영문명에서 드러나듯 철저하게 농작물과 전력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을 때만 붙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패널을 농지 높이 설치해 상부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그 아래에서 경작기계를 움직이며 농사를 병행한다. 빛의 세기가 일정 정도에 이르면 더는 광합성 속도가 증가하지 않는 ‘광포화점’이 작물별로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태양광 모듈의 크기·배치를 조절해 작물재배에 적합한 일조량을 유지하고, 농지 본래 목적과 기능에 충실하면서 발전(發電)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라마다 기후·환경과 작물 특성이 다르므로 실증 연구가 중요하다. 실증에 따르면 대파·밀·배추 수확량은 일반 농지 대비 80% 수준을 유지했고, 포도·녹차 등 일부 작물은 수확량이 더 많았다고 한다. 패널이 여름철 지표면 온도 상승과 토양의 수분 증발을 억제해 일부 작물엔 생육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 기후에서 농작물의 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증 연구는 태양광 기술 개발로 이어진다. 한화솔루션은 그림자를 줄여 작물에 충분한 햇빛을 주기 위해 폭이 좁은 협소형 모듈을 개발했다. 후면에서도 반사광·산란광을 흡수해 발전할 수 있는 양면수광(양면형)기술을 적용해 발전효율을 보상한다.
양면형 기술은 도로, 철도, 울타리, 방음벽 등에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시장 도입 초기에는 발전단가 상승을 우려했으나 전 세계 연구진이 전지기술을 최적화하고 모듈·시스템 성능 연구 등으로 단가를 저감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왔다. 국내 유수 기업들의 주력 상품도 양면형이다. 유럽에서는 전력피크 분산 및 유휴 부지 태양광 활용 극대화를 위해 정남향 기준 방위각 90도 수준인 동서형 태양광 시스템 설치가 늘고 있다. 양면형 모듈 덕에 다양한 방위각·경사각 적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수직 설치로 간헐성 완화에도 기여한다. 우리나라도 ‘신재생에너지 설비의 지원 등에 관한 지침’에서 방위각 제한들을 없애고 남향과 동서형을 병행 설치하면 전력생산시간 편중을 보완하고 공간 활용성을 높일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26일 ‘넷제로 로드맵 보고서’를 발표했다. 2021년 보고서의 개정판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 성장을 보인 태양광 발전과 전기차 덕분에 1.5도 기후목표 달성에 여전히 희망이 있으며, 이 두 가지 기술만으로 2030년 목표 감축량 3분의 1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탄소제거처럼 불확실한 기술보다 입증된 저렴한 기술을 기반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용량 3배, 연간 에너지효율 2배, 전기차·히트펌프 판매량 증대 및 메탄 배출량 감소 등이 그것이다. 향후 10년간 도전적 목표를 요구하며, 2030년 전 세계 전력의 41%를 풍력·태양광이 감당한다.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풍력·태양광 전력생산 비중은 14% 이상이다. 조사 대상 가운데 50개국은 월별 태양광 발전량이 비약적으로 늘어 신기록을 갱신했다.
우리나라 태양광기술도 업계의 고군분투로 크게 발전해왔으나 정책적 뒷받침 없이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간헐성 탓에 전력계통 운영이 녹록지 않다는 이유로 주춤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하기 쉽다. 우리 정부는 내년 3월부터 실시하는 ‘농촌공간계획법’과 연계해 영농형 태양광 보급 확대계획을 밝힌 바 있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업에 대한 기후위기 영향 최소화, 생물다양성 보존, 지역주민·기업의 적극적 참여 등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농촌 재생에너지지구 지정 및 지역 문제 최소화를 위한 정부의 신속하고 합리적인 정책 마련으로 제때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건물·수상 태양광 및 동서형 태양광기술 적용을 위해서도 지역적 환경을 고려한 제도적·정책적 노력이 함께 이뤄진다면 우리도 비용편익이 큰 태양광기술로 탄소중립을 견인하는 국제적 흐름에 동참할 수 있다. 실증 및 내수시장을 통한 지속적 혁신 기술 개발로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곽지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태양광연구단장
nbgkoo@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문채원,“비위생적·안 씻는다” 루머 유포자 추가 고소
- “애들 간식에 세균이 득실득실” 이 탕후루 먹지 마세요
- 서태지, 아내 이은성 감금?…"스스로 활동하고 싶어 하지 않아"
- 송중기 "100일 된 아들, 입술 닮았다…케이티와 육아 중"
- “그럼 구경만 혀?” 백종원, 쓰러진 종업원 ‘심폐소생’ 구하고 한 말이
- 조민, 서울대 대학원 입학도 취소?…“타 대학 현황 파악 중”
- 조혜련, 박수홍·김다예 부부 응원…"평생 같이 가자"
- 김혜선 "우울증으로 독일行…스테판 만나 제2의 삶"
- “태국 음식 왜 무시해?”…백종원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해명
- ‘국내 1호’ 女비뇨기과 전문의, 머슬마니아 대회 2번째 입상 “환자에게도 자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