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이·하마스 전쟁에 가려진 우크라이나
[앵커]
전 세계의 시선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으로 쏠려 있습니다.
그 바람에 2년 가까이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소식이 상대적으로 잠잠해졌죠.
미 정치권에선 두 전쟁을 보는 시각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 허효진 기자와 알아봅니다.
전장이 두 곳이 되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2년째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를 것 같아요.
[기자]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이후 가장 먼저 이스라엘에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성명을 내기도 했는데요.
하마스의 공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테러 행위'라며 "이스라엘은 테러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모든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1일,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 회의에 참석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연대를 호소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 : "우리도 전쟁 중에 있고, 그래서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잘 압니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제안합니다. (이스라엘이) 외로이 싸우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직접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는데요.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젤렌스키의 이스라엘 방문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1년 7달 넘게 전쟁을 겪고 있습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우크라이나 민간인만 9,000명 넘게 숨지고 만6,000여 명이 다쳤습니다.
사망자엔 어린이 500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앵커]
우크라이나 피해도 큰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잖아요?
[기자]
우크라이나 역시 그 부분을 분명히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뜩이나 전쟁이 길어져서 국제사회 피로감이 커졌는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가 잊힐까 걱정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데요.
젤렌스키 대통령은 프랑스의 한 방송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떨어질 수 있고, "중동의 비극으로 러시아가 이득을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로이드 오스틴/미 국방장관 :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모두를 지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고, 할 겁니다."]
영국과 독일도 추가 무기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앵커]
젤렌스키 대통령, 상황상 우려가 클 수밖에 없겠네요.
더구나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던 미국 하원의장이 해임되기도 했잖아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사실 미국 정치권의 우크라이나 홀대 분위기는 그 전부터 감지됐습니다.
지난달,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을 찾았는데 지난해 첫 방문 때와는 분위기가 딴판이었거든요.
젤렌스키가 하원 연설을 하겠다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원이 과하다는 공화당 강경파의 눈치를 본 겁니다.
공화당이지만 그나마 매카시 하원의장이 우크라이나 지원 필요성에 공감하고 정부와 협상할 여지도 있었는데 이 매카시가 해임됐죠.
하원이 언제 꾸려질 지 장담할 수 없어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표류 상태입니다.
백악관은 궁여지책으로 한시가 급한 이스라엘 지원과 반대 여론이 많은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패키지'로 묶어 의회 승인을 구하기로 한 상황입니다.
[앵커]
미국은 이스라엘의 오랜 우방인데 이스라엘 전쟁을 두고도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면서요?
[기자]
이스라엘 문제에서만큼은 미국은 당을 초월해 한 뜻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민주당 내부에서도 살짝 다른 기류가 읽힙니다.
다수 의원들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지만 일부 진보 성향 의원들이 하마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도 휴전을 촉구한 건데요.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현 이스라엘 정부의 극우 정책과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처우 문제로 최근 더 많은 민주당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바이든도 이런 국내외 여론을 의식한 듯 이스라엘도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앵커]
두 개의 전선을 마주한 바이든의 고민도 깊을 것 같습니다.
[기자]
바이든은 집권 초기부터 중동의 안보 문제에는 손을 떼고 중국 견제에 집중했는데요.
그래서 이번에도 이스라엘에 파병 의향은 없다고 밝혔고, 우크라이나에도 직접 참전은 하지 않은 채 지원을 하며 러시아를 억눌러 왔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더욱 긴밀해지는 러시아와 이란을 직면했다고 진단했는데요.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둘 중 하나를 택하면 전략적 실수가 될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럽에 깃발을 꽂으려는 러시아를 막고, 중동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이스라엘을 방어하는 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겁니다.
바이든은 두쪽으로 갈라진 세계 구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를 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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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효진 기자 (h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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