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파도 미담만... 외신, 세상 떠난 美 ‘면세점 대부’ 피니 연일 재조명
버핏·게이츠 기부운동에 영감
딸 휴대폰 요금이 많이 나오자 전화 해지하기도
세계 최대 면세점 업체 DFS 창립자 찰스 프란시스 피니(이하 ‘척 피니’)가 세상을 떠난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그의 남다른 검소함과 자선 행적에 대한 칭송은 끊이지 않고 있다. “살면서 모든 것을 기부하고 가겠다”고 선언한 피니는 약속을 지키고 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뉴욕타임스(NYT)와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피니는 노후 생활을 위해 200만 달러(약 27억원)와 자녀 5명에게 남긴 일부 유산을 제외하고 모두 기부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수년간 샌프란시스코의 방 두 칸짜리 작은 아파트를 임대해 부인과 함께 노년을 보냈다.
5개 대륙에 80억 달러(10조8000억원) 넘는 액수를 기부했다. 대부분 익명 기부였다. 아동·청소년, 인구, 의료·건강, 교육, 과학·기술, 인권, 평화 등 그가 기부하지 않은 분야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가 27억 달러(3조6000억원)를 지원해 세워진 1000개 건물 중 그의 이름을 딴 건물은 하나도 없다. 2016년 12월 피니는 모교인 코넬 대학교에 700만 달러(94억원)를 기부하며 공식적으로 재단의 계좌를 모두 비웠고, 2020년 재단은 문을 닫았다.
1931년 아일랜드계 가톨릭 이민지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피니는 어린 시절부터 사업수완이 남달랐다. 열살 땐 집집마다 방문해 성탄 카드를 판 경험이 있을 정도다. 당시로선 혁신적인 판매방식이었다. 1948년 고교 졸업 후 공군에 자원입대한 뒤 전역자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아 코넬대에 입학했고, 소르본대 강좌 수강을 위해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현지 미 해군들을 상대로 면세 주류를 판매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1960년 홍콩에서 지금의 DFS를 공동창업했다.
오늘날 DFS는 지구촌에서 가장 큰 면세점 중 하나가 됐다. 피니는 이렇게 키운 사업을 바탕으로 40년 넘게 자선활동을 이어왔다. 1982년 자신의 DFS지분 전체(16억달러 규모)를 애틀랜틱 기부재단(Atlantic Philantropies)을 세운 것이 시초다.
피니의 사회공헌 철학은 “죽고나서 기부하는 것보다 살아있을 때 기부하는 게 훨씬 즐겁다. 타인을 돕는 걸 차일피일 미룰 이유가 없다” 생전 그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생전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신발 두 켤레를 신을 수는 없다”는 말을 마음에 새겼다.
뛰어난 사업 수완과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던 경제적 배경이 맞물려 면세점 사업으로 50세에 막대한 부를 이룬 피니는 1984년 자신의 인생을 바꿀 큰 결심을 한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DFS의 지분 38.75%를 자신의 재단인 ‘애틀랜틱 필랜스로피’(1982년 설립)로 비밀리에 양도했다. 재단의 설립 목적은 전 세계의 교육, 인권, 과학, 의료 증진을 위해 80억 달러(10조8000억원)를 기부하는 것이었다.
13년 동안 피니는 기부 활동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면지 사용을 강요하고, 변호사 수임료를 무자비하게 깎고, 모임에선 밥값을 내지 않으려고 먼저 자리를 뜨는 등 욕심 많은 구두쇠로 비쳤다. 그의 검소함은 가정에서도 남달랐다. 그의 자서전 등에 따르면 피니는 뉴욕에 살던 두 딸의 휴대폰 요금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자 전화를 해지하기도 했다. 전화없이 살 수 없다며 투정하는 딸들에게 피니가 준 것은 시내 공중전화박스 위치가 표시된 지도한장 뿐이었다.
그러다 1997년 세계 최대 명품 업체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의 법적 분쟁 과정에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법정에서 공개된 그의 회계장부에서 그가 15년간 40억달러를 대학과 사회단체 등에 기부한 사실이 드러난 것. 그전까지는 ‘돈만 아는 억만장자’로 매도됐던 피니가 자신의 재산을 남몰래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자 그제야 그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그가 기부를 시작한 계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그는 부의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 ‘기부 문화의 선구자’ 앤드류 카네기에게 영감을 받았다. 그는 1980년대 초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뉴욕, 런던, 파리 고급 아파트에 모자라 호화로운 별장도 갖고 있었다. 요트와 개인용 제트기도 있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꼈고 부에 따르는 의무를 고민하게 됐다.
남몰래 선행을 실천한 어머니의 삶의 방식도 그에게 영향을 줬다. 간호사였던 그의 어머니는 매일 아침 루게릭병에 걸린 이웃을 차로 태워주려고 일부러 외출하면서도 이웃이 부담되지 않도록 출근하는 척했다고 한다.
피니는 그때부터 자신의 삶을 재정비했다. 리무진을 팔고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했다. 그는 책과 서류를 비닐봉지에 담아 이코노미 클래스에 탑승했다. 뉴욕에 있을 때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는 대신 햄버거를 즐겨 먹었다. 그가 손목에 착용한 시계는 단돈 10달러(1만4000원)짜리였다.
피니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2010년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평생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도록 하는 캠페인인 ‘기빙 플레지(기부서약)’를 시작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버핏은 피니를 향해 “그는 모범을 보였다. 나의 영웅이자 빌 게이츠의 영웅이며 모두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빌 게이츠는 그를 두고 “놀라운 롤모델이자 살면서 베푸는 최고의 모범사례”라고 말했다.
피니는 자신의 전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속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부를 사람들을 돕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한 번 해보면 마음에 들 것이다. 게다가 죽어서 기부하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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