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충돌’서 이란이 주목받는 이유[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주변국 개입 전략’으로 고립 극복, 영향력 키워
아랍-이스라엘 화해 분위기 흔들리면 이란에 이득
헤즈볼라 참전 여부 등 이란은 계속 주목 받을 듯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
8일(현지 시간) 주유엔 이란 대표부는 성명을 통해 전날 대규모로 진행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자신들은 상관없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공격 직후 다양한 채널에서 제기된 ‘이란 개입 의혹’에 대한 반박이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선 하마스와 헤즈볼라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이 공격 작전을 승인했다’, ‘이란과 하마스가 이번 공격에 대해 논의했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다.
이란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개입은 부정하면서도, 목소리는 높이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 분명한 하마스 지지 메시지를 내고 있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부 장관은 14일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수행한다면 이란 또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유엔 이란 대표부도 ‘X’(옛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 측의 전쟁 범죄가 중단되지 않으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져 있고, 국경도 맞대고 있지 않은 이란은 왜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일까. 나아가, 왜 주요 이해 당사자로 거론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이란의 이번 사태 개입 여부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일까.
● ‘시아벨트 전략’으로 주변국에 개입
“한국은 이란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선 이란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중동 나라들에게 이란은 안보 측면에서 많은 위협을 주는 나라다.” (이스라엘 외교부 관계자)
이란은 영토, 자원,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꾸준히 그리고 자주 발생해온 중동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해온 나라다. 미사일, 무인기(드론), 지상군 같은 군사력은 기본이다. 핵무기는 아직 개발 못 했지만 우라늄 농축을 비롯한 주요 기술을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무엇보다 이란은 주변국의 정치와 안보에 다양한 형태로 개입해 오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란과 많은 갈등을 빚어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란은 주변국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수니파 종주국은 사우디)인 것을 앞세운다.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정한 중동 나라의 시아파 무장정파와 종교지도자 등에게 자금, 무기, 인력을 지원하는 것. 필요할 경우 이란은 자국의 최고 군사조직으로 ‘정부 위의 정부’로도 인식되는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 ‘쿠드스군(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 쿠드스군은 이란군의 해외작전을 전문적으로 담당)’을 파견하기도 한다.
이런 이란의 전략을 중동 안팎에서는 ‘시아벨트 전략’으로 부른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이 시아벨트 전략의 주무대다. 헤즈볼라(레바논), 카타입헤즈볼라(이라크), 후티 반군(예멘) 같은 영향력이 큰 무장정파들은 오래전부터 이란의 지원을 받아왔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충돌할 때마다, 후티 반군이 사우디의 석유 관련 시설을 공격할 때마다 ‘이란 배후설’이 등장하는 이유다. 이라크에선 카타입헤즈볼라의 미군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마다 이란을 의심했다.
● 가자지구도 이란의 영향력 행사 지역
얼핏 보면 가자지구는 이란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다. 하마스는 수니파 무장정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은 종파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하마스도 적극 지원해 왔다. 가자지구도 이란의 영향력 확장 지대에 속하는 것이다. 하마스에 대한 다양한 자금과 무기 지원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 또 이란은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을 ‘쿠드스의 날’로 정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강조하기 위한 문화적, 종교적 조치였다.
하마스 입장에선 고립돼 있는 자신들에게 무기와 자금 지원을 해주는 이란은 꼭 필요한 존재다. 당연히 협조적이다. 그러다보니 ‘이번 사태의 배후에 이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란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안보 실패, 심지어 ‘이스라엘판 9‧11 사태’란 말이 나올 만큼 이번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큰 것도 의심을 키운다. 14일 기준 이스라엘서는 1300여 명이 사망했다.
한 마디로, 하마스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공격으로는 이렇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 미사일과 드론 강국이면 시아벨트 지역에서 다양한 지상군 전력을 운용해온 이란이 어떤 형태로든 배후에서 무엇인가를 했을 것이란 뜻이다.
● 고립 뚫기 위해 주변국에 개입
그렇다면 이란은 왜 무장정파를 이용해 주변국의 정치와 안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복잡하고, 위험한 전략을 펼치는 것일까.
이란은 1979년부터 미국과 척을 졌다. 사우디 등 주변국들과도 관계가 악화됐다. 시아파 종교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세속주의와 친서방을 지향했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면서부터다.
혁명을 통해 이란은 시아파 종교지도자와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독특한 ‘신정 공화정’을 구축했다. 근본주의 이슬람을 강조했고 서방과는 분명한 거리를 뒀다. 이때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크고 작은 경제 제재에 노출돼 왔고, 1980~1988년에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경험했다.
이란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큰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수니파 아랍 왕정 산유국들은 아예 이란 대응이 주목적 중 하나인 정치‧경제 연합체 걸프협력회의(GCC)까지 1981년에 구성했다. GCC 국가들은 왕정을 무너뜨린 이란의 ‘혁명 경험’이 자국에 영향을 주는 것을 극도로 우려했다.
이처럼 고립된 상황 속에서 이란은 시아벨트 전략으로 활로를 찾으려 했던 것.
이란 전문가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이란은 시아벨트 전략을 통해 자국 영토가 공격받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중동 전역에 행사하고자 했다”며 “특히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이 활동하는 동안 이 전략이 크게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1998년부터 쿠드스군 사령관으로 활동했던 솔레이마니는 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솔레이마니 사살 작전은 미국, 나아가 이스라엘, 사우디, UAE 등 친미, 반이란 성향 국가들이 이란의 주변국 개입을 얼마나 위협적으로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으로 사례로 꼽힌다.
● 아랍-이스라엘 ‘해빙 무드’ 깨지면 이란에 수혜
이번 사태로 최근 조성돼 왔던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의 화해 분위기가 깨질 위기에 놓였다는 것도 이란의 개입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 부분이다.
최근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외교 정상화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었다. 2020년 9월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UAE, 바레인과 수교했다. 그 뒤에는 모로코, 수단과도 수교했다.
이스라엘이 과거 앙숙이었던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이뤄내는 건 아랍과 이스라엘 모두와 사이가 나쁜 이란 입장에선 또다른 고립을 의미한다. 특히 ‘아랍의 맹주’ 사우디까지 이스라엘이 수교하는 건 더욱 심각한 변화다. 이란으로서는 할 수만 있다면 ‘아랍-이스라엘 해빙 무드’를 흔드는 게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고,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말 그대로, 하루 아침에 아랍권과 이스라엘 사이의 형성돼 오던 화해 분위기가 깨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보복 공격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외교 정상화 움직임에 이번 사태가 큰 악재가 될 것이란 전망은 벌써부터 나온다.
결과적으로 이란으로서는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란 부담스런 변화가 최소한 연기될 수 있는 여건을 맞이한 것이다.
● 헤즈볼라 참전은 사실상 이란의 참전
그렇다면 이란은 하마스의 이번 공격에 개입한 것일까.
증거는 없다. 이란을 40년 넘게 직·간접적으로 제재해 왔고, 이스라엘 지지를 선언한 미국도 ‘이란이 개입한 게 분명하다’는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아직 이스라엘 정부도 이란의 개입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굳이 이란이 자신들을 더욱 ‘왕따’로 만들 대규모 무력 도발을 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은비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는 “이란은 핵 합의가 깨지면서 다시 강화된 경제 제재를 풀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의 불만도 많은 상황”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하마스를 이용한 대규모 무력 도발을 일으켜 고립을 가중시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오래전부터 이란이 하마스에 대한 무기와 자금 지원은 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개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보복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란은 다시 한번 많은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최근에도 이스라엘을 향해 수차례 박격포 등을 이용해 도발했다. 또 강경한 하마스 지지, 이스라엘 비판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에 헤즈볼라가 본격 개입할 경우 사실상 이란과의 전쟁이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즈볼라는 설립됐을 때부터 이란과 긴밀했고, 하마스보다 훨씬 더 많은 무기와 자금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헤즈볼라가 참전할 경우 지금도 혼돈에 빠져 있는 중동 정세는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칠 것이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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