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야구든, 여름야구든, 가을야구든 피칭은 피칭일 뿐이다···‘14승’ 임찬규의 깨달음

안승호 기자 2023. 10. 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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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임찬규가 지난 15일 잠실 두산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즌 14승(3패). 국내파 다승 1위로 시즌 최종전을 마친 투수의 인터뷰였다. 2011년 입단 이후 10승 고지를 두 차례나 밟은 이력은 있었지만, 올해만큼 내용이 알찼던 적은 또 없었다. 이른바 ‘커리어하이’ 시즌이다.

이런 배경의 인터뷰라면 성공 배경에 대한 기술적 자기 분석 등이 우선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 15일 잠실 두산전 이후 만난 임찬규(31·LG)의 시선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

야구가 대표적 ‘멘털 게임’이지만, 참가자들의 정신 세계까지 끄집어내서 보편적 어휘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종목이다. 그저 그럴 것이라는 짐작으로 이면의 심리전이 해석되곤 한다.

임찬규는 여느 인터뷰와는 출발부터 다른 얘기를 했다. ‘생각’을 화두로 던졌다. “생각이란 게 (성격에 따라) 속도가 다르고, 과정도 다르다. 마운드에 서면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까지 많은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그런 것들을 최소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간은 그런 작업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기에 꺼낸 얘기였다. 임찬규는 “단순화하려해도, 늘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외부 요인 때문인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로 목표를 잡고 그걸 보면서 자꾸 쫓겼다”며 “그래서 그저 공 하나를 내가 원하는 곳에 던지는 신경 쓸 수 있도록 해봤다”고 말했다. 방법에 대한 물음에 임찬규는 “아주 세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고 밝혔다.

임찬규가 밝힌 준비 과정은 상상 밖이었다. 임찬규는 “가령 잠실 두산전이라고 하면 잔디 색깔과 잠실구장의 냄새 그리고 상대팀 이승엽 감독님 모습까지 미리 이미지로 그려놓는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경기장에서 일어날 수 있고, 선수 본인으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예상 가능 장면 모두를 예습해두는 작업이다. 임찬규는 “경기 흐름으로는 만루에서 볼 스리까지 몰린 상황까지도 생각해놓고 미리 생각을 지우는 작업을 해둔다”고 말했다. 임찬규는 이 대목에서 “미리 이미지트레이닝을 많이 한다고 해서 팔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니다. 잘 될 때면 5분 10분이면 정리가 되기도 한다”며 위트도 섞었다.

임찬규(왼쪽에서 두번째)를 비롯핸 LG 정규시즌 우승 주역들이 트로피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깨달음이었다. 임찬규 스스로 지난 시간의 실패 배경을 ‘생각’에 얽힌 모든 것들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임찬규는 “작년에 실패했던 것도 올해 성공 기반이 됐다”며 “오늘도 규정이닝이 걸린 경기였는데, 규정이닝을 채우겠다는 생각보다는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한다고 내 생사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섰다. 너무 간절하면 오히려 과도한 힘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임찬규는 생각을 비우고 등판한 이날 5.2이닝 피칭으로 규정이닝을 채웠다.

임찬규는 11월7일 시작하는 한국시리즈 2선발 또는 3선발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어떤 경기라도 18.44m의 같은 거리에서 공을 던지는데, 퓨처스리그라고, 또 한국시리즈라고 다른 생각이 입혀지면 도움이 안 되는 거 같다”며 “한국시리즈 경험은 없지만 결국 같은 거리에서 공을 던지고, 이미 만났던 같은 선수들을 상대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LG 임찬규. 연합뉴스



피칭 디자인이든 구종과 폼의 변화든 기술 얘기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투수의 성공 리뷰 인터뷰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말씀’도 생각 나는 시즌 마무리 인터뷰.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따라 대상이 달리 보이듯 피칭도 순수 피칭으로만 접근할 때 최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기 때문이다. 임찬규의 생각이 닿아있는 지점이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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