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걱정·질타' 속 V-리그, 1만 넘는 팬들은 의리 지켜줬다

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2023. 10. 1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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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팬들이 치어리더와 응원 중이다. KOVO 제공


'항저우 참사' 등 최근 국제 대회에서 남녀 배구가 동시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 직후 개막한 2023-2024 도드람 V-리그.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우려 섞인 목소리와 질타가 쏟아졌지만 1만 명 넘는 팬들은 프로배구와 의리를 지켰다.

V-리그는 지난 주말 치러진 남녀부 도합 4경기로 대장정의 막을 올렸다. 경기는 인천 계양체육관, 경북 김천실내체육관, 서울 장충체육관, 경기도 수원실내체육관 등 전국 각지에서 개최됐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인사하는 대한항공 선수단. KOVO 제공


지난 주말 배구장을 찾은 관중은 총 1만 734명. 놀랍게도 지난 시즌 개막 직후 4경기보다 1594명이 증가한 수치다.

개막 당일인 1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펼쳐진 대한항공 점보스와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남자부 개막전을 찾은 배구 팬은 2186명,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된 한국 도로공사 하이패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여자부 개막전 매치업엔 3491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개막전을 기준으로만 봐도 이날 2경기 총관중은 지난 시즌 개막전 4900명에 비해 777명이나 늘어난 기록이다.

지난 14일 여자부 개막전이 펼쳐진 김천 실내체육관 전경. KOVO 제공


15일 진행된 두 경기에도 총 5057명의 배구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남자부 우리카드 우리WON과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경기가 개최된 서울 장충체육관을 찾은 관중은 3064명, 수원 체육관에서 진행된 여자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과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의 경기엔 1993명의 관중이 들어왔다.

V-리그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배구계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최근 출전한 여러 국제 대회에서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부진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 배구 1차전에서 인도에 패한 남자 대표팀. 연합뉴스


남자 배구는 이번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인도, 파키스탄 등 상대적으로 열세로 평가됐던 상대들에게 무릎을 꿇으며 12강에서 탈락했다. 1966년 방콕 대회부터 매 대회 메달을 획득해 왔는데, 무려 61년 만에 아시안게임에서 '노 메달' 수모를 겪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자 대표팀은 앞서 열린 아시아 챌린저컵, 아시아배구선수권에서도 각각 3위, 5위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여자 배구도 심각했다.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첫 경기부터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받던 베트남에 2 대 3으로 무릎을 꿇는 등 17년 만에 빈손으로 귀국하게 됐다. 앞서서도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12전 전패, 2022 세계배구선수권대회에서 1승 4패, 2023 VNL에서 또다시 12전 전패를 기록하는가 하면, 2024 파리 올림픽 예선에서도 7연패 수모를 겪었다.

지난 6월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한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 한국 세사르 곤살레스 감독이 팀 실점에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침울한 분위기 속 미디어 데이부터 남자부, 여자부를 가리지 않고 우려의 시선이 빗발쳤다. 'V-리그를 굳이 왜 봐야 하냐'는 것이다.

대한항공 주장 한선수는 "생각한 것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선수들과 팬 분들 실망이 컸을 것"이라며 "V-리그에선 선수들이 더 발전된 기량을 보여야 하고, 팬 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모든 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한국전력 서재덕은 "국제 대회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 만큼 우리가 채워 나가야 한다. 반성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 연합뉴스


여자부에선 IBK기업은행의 사령탑이자 오랜 기간 남자 배구 대표팀을 지도한 김호철 감독이 쓴소리를 날렸다. 김 감독은 "현 상태로는 회복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한국 배구 실태를 진단했다. 이어 "시스템 문제를 바꾸지 않는 한 문제가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더 구체적으로 한국 배구의 앞날에 대해 각 팀의 감독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득점 후 환호하는 김지한(오른쪽)과 한성정. KOVO 제공


그럼에도 1만 명이 넘는 팬들은 개막전부터 배구장을 찾아와 의리를 지켰다. "이럴 때일수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이유다.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을 찾은 남자부 우리카드 아웃사이드 히터 김지한의 팬 김욱제 씨(26)는 "평소 좋아하던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개막전부터 배구장을 찾았다"며 "팬들이 다 같이 응원하며 좋아하는 팀의 승리를 가까이에서 보니 설레는 마음이 컸다"고 기분을 전했다.

이어 "TV로 보는 것보다 현장에서 응원하며 경기를 즐기는 게 더 재미있다"며 "잘 생기고 실력 좋은 선수들과 빠르게 전개되는 경기 스타일이 배구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 국제 대회에서 남녀 배구 대표팀 성적엔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김 씨는 "물론 배구 팬으로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안타까웠다"면서도 "그래도 팬이라면 선수들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개의치 않아 했다.

도로공사 선수단. KOVO 제공


여자부 도로공사 팬 김건우 씨(29) 역시 거주지인 서울에서 경상북도 김천까지 주말 시간을 할애했다. 경기장을 찾은 이유에 대해 "이윤정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싶었는데 부상을 당해 아쉽다"며 "문정원 선수의 팬이기도 해, 응원차 경기장을 방문했다"고 답했다.

김 씨는 "한국 배구가 국제 무대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면서도 "이럴 때일수록 팬들이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최근 김천에서 열린 포도 축제에도 겸사겸사 방문했는데, 배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프로 스포츠가 지역 축제와 결합하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woosubwaysandwiche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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