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총선 전략은 ‘개딸’ 중심 단일대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2023. 10. 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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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의 투시경]

● ‘문자폭탄’에 당내 비판적 목소리 소멸
● ‘문파’가 ‘개딸’로 변했을 뿐, 비주류 목소리 차단 同一
● 국민의힘 ‘하향식’, 민주당 ‘상향식’ 이견 억압
● 전쟁에서 단 한 가지 무기로 승부 보려는 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지자로 구성된 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3월 3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 관련 이탈표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역대 대통령 지지자들 성향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지지자에게 "당신은 왜 박정희를 좋아하나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대체로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왜 노무현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사람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그들에게 "당신은 왜 문재인을 좋아하나요?"라고 물으면 "문재인? 문재인 대통령이 네 친구냐"라며 화를 낸다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갖고 대통령 지지자들의 기질이나 특성을 일반화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유머가 허무맹랑한 비방이라고 보기만도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 한겨레가 영부인을 '김정숙 씨'로 표기했다가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던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한겨레는 1988년 창간 이래 줄곧 대통령 부인에 대한 존칭 표기를 '여사'가 아닌 '씨'로 사용해 왔다. '여사'라는 단어가 권위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도,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도 모두 권양숙 씨, 김윤옥 씨 등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유독 '김정숙 씨'라는 표기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무시한다"는 지지자들의 항의가 뒤따랐다. 결국 한겨레는 그동안 유지해 온 표기 원칙을 바꾸고 '김정숙 씨'를 '김정숙 여사'로 정정해야만 했다.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 폭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2016년 초까지만 해도 그런 미래를 그리긴 어려웠다. 새누리당에서는 김무성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고, 정치권 밖에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태로 모든 판이 뒤집혔다. 보수 진영이 궤멸하면서 그의 경쟁자로 여겨지던 인물들이 모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당내 경선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그와 맞붙었지만, 그 둘과 문재인 후보 사이에는 당내 조직이나 지지율 면에서 상당한 격차가 존재했다. 이변이 없는 한 그의 승리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재미있는 건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큰 데도 극심한 네거티브 공방이 펼쳐졌다는 점이다. 보통 네거티브 캠페인은 경쟁이 치열할수록 과열된다. 반대로 격차가 제법 벌어진 선거는 훈훈하게 전개되게 마련이다. 사실상 게임이 끝났다면 비전을 보여주고 호감도를 높여놓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낫기 때문이다. 조급해하는 추격자라면 모를까, 큰 차이로 앞서고 있는 후보 쪽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만큼 자신들도 이미지 타격을 감수해야 해서다.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상대 후보 캠프 관계자들에게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 폭탄'을 퍼부었다. 안희정·이재명 측에 줄 선 지방의원들을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응징하자며 그 명단을 돌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문재인 후보 캠프의 태도는 타인을 질겁하게 만들고 정떨어지게 한다"고 비판했고, 이재명 시장 측 제윤경 의원도 "대세라고 할 수 있는 문 후보 지지자들은 의원이 조금만 반대 의견을 제시해도 '리스트'를 유포하고 수천 통의 문자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 후원금을 보낸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극성 지지층 행동이 자신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사자는 천하태평이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우리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니 오히려 권장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지지자들에게 '그렇게 해도 좋다'는 신호를 준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큰 표 차이로 당내 경선과 대선에서 승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민주당이 획득한 도덕성 자산은 모두 그의 몫이 됐다. 지지율은 늘 고공 행진했고 그만큼 당내 입지도 탄탄했다. 덩달아 그의 지지층인 '문파'도 달리는 호랑이에 날개가 달린 듯한 기세로 민주당을 접수했다. 조금이라도 반기를 드는 사람에게는 '양념'이 쳐졌다. 참여를 빙자한 '양념'은 민주당 내 비판적 목소리를 소멸시켜 버렸다. 당이 친문 일색으로 개편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구석이 하나 있다. 주류에서 벗어나는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목소리를 억누르는 방식은 완전히 반대라는 점이다. 국민의힘이 다른 목소리를 찍어 누르는 방식은 대체로 권력자의 의중에 따른 하향식 압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라는 발언으로 유명했던 2015년 국회법 파동이나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로 각인된 2022년 이준석 사태가 그랬다.

반대로 민주당은 강성 지지층에 의한 '상향식 찍어 누르기'인 경우가 많다. 주류 정치인들의 선동 또는 묵인 아래 강성 지지층이 비주류 의원들을 향해 문자 폭탄 등 집단적 뭇매를 가하는 식이다. 때로는 경선에서 처참한 패배를 선사하기도 한다. 조국 사태 당시 조국 장관을 비판했던 금태섭 의원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서울 강서구갑 경선에서 무명의 신인 강선우 후보에게 패했다. 제법 인지도 있던 현역의원의 패배는 다른 의원들에게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9월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박광온 당시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인사들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에 비해 민주당에서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가 큰 건 일단 당원 수가 더 많고, 참여의 강도 또한 높기 때문이다. 2021년 각 정당이 중앙선거관리위에 보고한 '2021년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에 따르면, 월 1000원 이상 당비를 내는 당원은 민주당이 129만여 명으로 69만여 명인 국민의힘의 약 2배에 달했다. 2015년 정당법 개정으로 인터넷·모바일 당원 가입이 가능해지면서 문턱이 낮아졌고, 2017년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치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민주당 입당자가 크게 늘어난 덕이다.

여기에 몇몇 정치인이 당내 역학 구도에서 자신이 처한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팬덤 정치를 강화하며 당원 참여의 강도가 높아졌다. 당내에는 내 편이 많지 않으니 대중을 끌어들여 그 힘으로 불리함을 극복하겠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 온라인 당원을 대거 늘림으로써 호남 세력과의 경쟁에 마침표를 찍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을 동원해 열악한 당내 기반을 보완했다.

이들 팬덤은 인물 중심으로 모인 까닭에 가치가 아닌, 자신들의 우상에 대한 충성 여부로 정치인을 판단한다. 당연히 눈 밖에 나면 죽는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민주당 일부 초선의원들이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을 표명했다가 '초선 5적'이라며 거센 비난에 직면했던 사례나, '김남국 코인' 사태 당시 원외 청년 정치인들이 당의 반성을 촉구했다가 '코인 8적'이라는 멸칭으로 조리돌림당한 사례는 현재 민주당 내 정치 팬덤의 배타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예계든 정치권이든 팬덤은 있을 수 있다.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정당에 반영되는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는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의 문제는 그 팬덤이 다른 목소리를 완전히 억압하고, 의원 대부분이 그런 구조에 구속돼 있다는 것이다. 9월 21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 민주당 내에서 가결표 색출 움직임이 일자 평소 비명계로 분류됐던 의원들마저 "나는 부결에 투표했다"라고 해명하는 장면은 씁쓸하기 이전에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혹자는 이상민·조응천 의원 등을 반례로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그들 정도만 대외적으로 당을 비판하고 있을 뿐, 비명계로 분류되는 의원 대부분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데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이분법적 세계관 갇힌 민주당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9월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속설에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지만 근래의 민주당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뭉쳐 있다. 당원들의 적극적이고 집요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반대 목소리를 억누른 덕분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친문재인계 '문파'가 친이재명계 '개딸'로 바뀌었다는 것뿐, 강성지지층의 행동 양식이나 이를 부추기는 주류 정치인들의 모습은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단일대오 정당에서는 의제도 단일화되기 십상이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사활을 걸었던 장면은 대표적이다. 지방선거는 이름 그대로 지방의 일꾼을 선출하는 선거다. 중앙정치 이슈보다 지역 특성에 맞는 공약 발굴, 또는 무상급식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어젠다 세팅이 중요하다. 이런 선거를 민주당 지도부는 검찰과 대결하는 구도로 몰고 갔다. 국회의원이든 출마자든 누구 하나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민주당은 결과적으로 2년 전 총선에서 거둔 압승이 무색하게 대패했다.

획일화되는 민주당과 달리 유권자의 요구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민주당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지선에서 잇따라 패배한 이후 새로고침위원회를 출범시켜 한 달 남짓한 논의를 거쳐 '미래비전 리포트 : 이기는 민주당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발표했다. 3000명가량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들이 더는 진보·중도·보수 등 개괄적 이념에 머물지 않고 6개의 분화된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는 게 핵심이었다. 평등·평화 그룹(37.7%), 자유·능력주의 그룹(21.5%), 친환경·신성장 그룹(18.8%), 반권위·포퓰리즘 그룹(9.3%), 민생우선 그룹(6.4%), 개혁우선 그룹(6.3%) 등이었다. 이 보고서는 '독재 세력 대 민주화 세력'이라는 민주당의 전통적 이분법적 세계관으로는 요즘 유권자의 요구를 적절히 담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획일화된 목소리로 선거에 임한다는 것은 전쟁에서 단 한 가지 무기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과도 같다.

요즘 민주당의 상황은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와 닮았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럼퍼(Lumper)'라는 감자 품종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재배가 쉽고 영양소도 풍부했으며 생산량도 많았기 때문이다. 럼퍼는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아일랜드에 존재하던 많은 품종을 대체했다. 마침 영국의 산업화와 나폴레옹 전쟁이 진행돼 수출도 늘었다. 전국에서 럼퍼가 경작됐다. 그 덕에 1800년 500만 명가량이던 아일랜드 인구는 1840년대 중반 850만 명 정도로 급증했다. 그런데 1845년, 감자잎마름병이 돌기 시작했다. 잎과 뿌리에서 시작해 감자를 썩게 만드는 병균이었다. 바람을 탄 병균은 아일랜드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럼퍼라는 단일 품종에 식량을 의존하고 있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사자가 속출했다. 100만 명 넘는 사람이 죽었고,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7년 동안 수많은 아일랜드인의 목숨을 앗아간 대기근은 단일 경작의 위험성을 일깨워준다. 정치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시절 상대방에게 '양념'을 치던 '문파'부터 오늘날의 '개딸'에 이르기까지 반대파를 철저히 억누르고 강력한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가결표 색출 논란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이처럼 비주류를 쳐내고 비판적 목소리를 차단할수록 민주당이 짊어지는 리스크는 커진다. 하나의 위기가 곧 전체의 위기가 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보이는 현재 모습은 예기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을 때 속절없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보여 준 1845년 아일랜드 럼퍼 감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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