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사람도 문화재 대하듯… ‘세심함’이 빛난다[Leadership]
문화재 분야는 전문 지식이 없거나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현안을 파악하기 힘들다. 문화재 분야 리더들에게 전문성이 꼭 필요한 이유다. 우리 역사와 문화재를 향한 깊은 애정과 열정도 필수다. 문화재에 대한 깊은 사랑과 전문성은 기본으로 장착하고 각자의 무기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최응천 문화재청장과 최영창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의 리더십을 분석했다. 문화재 발굴과 보존 등 문화재와 관련한 모든 일을 하는 문화재청과 문화재 활용에 방점을 둔 사업을 펼치는 한국문화재재단,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환수를 추진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문화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세 곳이다.
내가 먼저 현장으로… ‘솔선 수범’
◇현장 다니며 직접 설명하는 문화재 전문가…‘솔선형’ 리더
최응천(64) 문화재청장은 모두가 인정하는 문화재 전문가다. 동국대 불교미술과를 나와 홍익대 및 일본 규슈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일을 시작한 그의 주 전공은 불교미술, 그중에서도 금속공예다. 동국대 교수를 역임했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8년이나 지냈다. 처음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에 입사한 게 1983년이니, 도합 40년 경력이다.
워낙 전문가다 보니 유물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도 직접 나선다. 지난 7월에는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쪽샘 44호분’ 발굴성과 시사회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관람객들에게 직접 설명했다. 당시 최 청장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것과 같은 발굴단 복장을 한 채 설명에 나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기자들에게 유물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여러 차례 마이크를 잡는데, 그의 높은 전문성은 발표 내용에 대한 신뢰성을 키운다. 전문 분야인 금속공예뿐 아니라 자기나 서화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도 깊다 보니 현장에서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듣는 게 아닌, 오히려 학예연구사에게 설명을 하는 경우까지 왕왕 생긴다고 한다. 한 문화재청 관계자는 “최고의 전문가니 우리가 따라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면서 “전문 지식이 깊고 경험도 많다 보니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빠르게 적절한 판단을 내린다. 우리가 바라는 리더에 가깝다”고 말했다.
직원들보다 더 깊은 전문성을 갖고 있는 일부 리더들의 경우, 권위적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최 청장은 그렇지 않다고 주변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를 잘 아는 한 지인은 “최 청장의 리더십은 리더십이라기보단 펠로십에 가깝다. 후배들을, 함께 문화재를 연구하는 동료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청장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현장도 많이 나간다. 취임한 첫해 일주일에 나흘은 지역을 다녔다. “각 문화재가 처해 있는 보호 환경, 보존 환경은 모두 다르다. 특히 사적 등의 경우 직접 현장에 가야 주변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 확인이 중요한데, 최 청장 역시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게 답이라는 생각으로 현장에 많이 나간다”고 한 문화재청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최 청장의 현장 방문은 관료적이지 않고 전문적이라는 점에서, 보다 날카롭고 공격적”이라고 덧붙였다.
직원 의견 소중하게… ‘소통 실천’
◇전 직원과 70차례 만나 의견 청취…‘소통’하는 리더
최영창(59)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일간지에서 20년 이상을 일한 기자 출신이다. 그는 신문사 문화부 소속일 때부터 문화재계에서 이미 유명했다. 고려대 사학과 출신으로, 사학 박사 학위 과정까지 수료한 그의 문화재를 향한 애정이 기사에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기자직을 그만둔 그는 지난 2013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활용홍보실장 및 조사연구실장을 맡으며 문화재계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어 국립진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했고 2021년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기자는 말 그대로 ‘기록하는 자’이자 ‘듣는 자’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일이기에 ‘듣는’ 능력이 중요하다. 최 이사장의 이러한 기자 경험은 지금 ‘소통’의 리더십으로 빛나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의 직원들은 그에 관해 하나같이 “소통에 진심인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문화재재단은 조직 구성원의 직종과 직급이 다양한 게 특징 중 하나다. 고궁 활용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 등을 주로 하되, 한정식을 판매하고 전통예술공연을 선보이는 ‘한국의집’과 전통문화 상품 판매점 등도 운영하기에 정규직 사원부터 계약직, 판매직 등으로 직제가 다양하다. 취임 직후부터 “바람직한 직장문화 확립을 통해 직원들이 일하고 싶은 직장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이야기해온 최 이사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직원들을 소규모로 모아 끊임없이 간담회를 가졌다. 그 횟수가 70회를 넘는다. 지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예외 없이 모두 만났다. 한 재단 관계자는 “부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소규모 간담회를 계속해 오다 보니 이사장의 귀가 열려 있고 우리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인식을 직원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도 “직장 내에서의 협력적이고 긍정적인 환경을 강조한다. 업무 추진에 있어서도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재단 밖 문화재 관련 인사들과 두루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그의 장점 중 하나다. 재단의 한 직원은 “재단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은 것 같다. 재단 사업을 진행할 때 필요한 관계기관 전문가들도 최 이사장이 추천하고 연결해준다. 사업을 담당하는 직원으로선 상당히 고마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부드럽고 강단있게… ‘외유 내강’
◇30년 내공…‘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협상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조사하고 불법적으로 유출된 한국 문화재의 환수 등을 추진하는 곳이다. 해외 기관과 협상할 일이 많기에 이사장의 협상력이 크게 중요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이끄는 첫 여성 수장이기도 한 김정희(65) 이사장을 두고 재단 안팎에선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를 확인하게 된 뜻깊은 전시였으나 국내 일각에선 우리 유물을 다른 나라에서 봐야 하는 데 있어 실망감에 대한 표현부터 우리가 돈을 주고서라도 직지를 가져와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각종 여론이 분출했다.
직지를 보관하고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지난 수년간 직지 대여를 놓고 불편한 상황을 이어오던 터라, 지난 4월 직지 공개에 앞서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과 재단 측이 만났을 때의 미팅 분위기도 어색했다고 한다. 이를 부드럽게 풀어낸 게 김 이사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어려운 자리였지만 김 이사장이 위트 있는 말과 부드러운 자세로 미팅을 이끌었고 프랑스 측도 어느새 긴장을 풀고 우리에게 호의적인 자세로 다가왔다”면서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김 이사장이 ‘한국에서도 직지를 전시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고, 그 결과 내년에 재단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 실태조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통 여성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부드러운 리더십을 이야기하는데 김 이사장은 그 속에 강단이 있는 분”이라며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편 강단 있는 내공으로 합의점을 도출해낸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사학과를 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후 원광대 교수를 30여 년간 역임했던 김 이사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불교미술 전문가다.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재단 직원들은 “불교미술 관련 유물을 검토할 때면 김 이사장이 마치 ‘천군만마’와 같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최응천 ‘규제 혁신해 포상’ 최영창 ‘궁·능 콘텐츠 개발’ 김정희 ‘문화재 환수 총력’
■ 3人의 성과와 과제
지난해 5월 취임한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규제 혁신 분야에서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한 원칙은 지키면서도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불필요한 규제는 풀려고 노력했다는 그는 지난해 규제 혁신 분야에서 정부 포상도 받았다. 다만 서울 풍납토성 보존·관리 문제와 김포 ‘왕릉뷰 아파트’를 둘러싼 관할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과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있어 이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최 청장은 지난 60년간 이어져 온 ‘문화재’ 체제를 ‘국가유산’ 체제로 전환하는 일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과거 유물’이나 ‘재화’의 느낌이 강했던 ‘문화재’ 대신 국제적 기준인 ‘유산’(遺産·heritage)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다. 최 청장은 올 연말까지 이와 관련한 미래 전략 비전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021년 5월 취임한 최영창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경복궁 별빛야행’ ‘창덕궁 달빛기행’ ‘수라간 시식공감’ 등 고궁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국민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키는 성과를 냈다. 궁과 능을 활용한 신규 콘텐츠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SNS 등을 활용한 문화재 홍보에도 열성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문화재재단과 문화재청이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문화유산채널’은 최근 구독자 100만 명을 넘어 골드버튼을 받기도 했다. 최 이사장은 앞으로도 전 세계인들에게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김정희 이사장이 약 1년간 수장 자리를 맡았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최근 고려시대 사경 ‘묘법연화경’ 권제6을 일본에서 환수한 일로 주목받았다. 경전의 내용을 금박, 은박 가루로 필사한 귀한 유물이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도 불법 유출된 문화재는 환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선물이나 구입 등으로 다른 나라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활용 사업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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