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자식에게 아무 일도 벌어지지 말라고 학원 보내는 거예요[소설, 한국을 말하다]
사교육 - 너희는 자라서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9월 4일부터 연재에 들어간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았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이야, 초짜 가능이라고 했더니 진짜 리얼 생초짜가 왔네.”
알 없는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성규의 이력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하얀색 브이넥 티셔츠에 감청색 반바지, 조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담백하고 좋네, 뭐. 지저분하지 않고.”
그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툭, 그렇게 말을 받았다. 그는 흰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성규가 받은 명함에 따르면 조던 운동화가 송 원장, 흰 와이셔츠는 박 원장이었다. 둘 다 고등부 국어 담당. 성규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계속 번갈아 가며 그 두 사람과 눈을 맞추려고 했다. 입꼬리는 살짝 올린 채 최대한 부드럽게. 그만큼 성규는 절박했다.
어젯밤, 성규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면서 시강 시나리오를 짰고, 또 예상 면접 질문에 큰소리로 답변해 보기도 했다. 학원 강사 경력이 전무한데, 당신을 어떻게 믿고 학생들을 맡기죠? 네, 저는 비록 강의 경력은 없지만 오랫동안 이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해 왔습니다. 저 자신 또한 학원 키즈로 자라나서 누구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니 아니, 이건 너무 일반적인 답변이고…. 성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그게 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성규는 경기도의 1기 신도시에서 삼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자랐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작은 치킨집을 운영하면서 그들 삼남매를 키웠다. 성규는 기억이 닿아 있는 시절부터 계속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래서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추억과 인간관계가 그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외고 입시 광풍에 시달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자정 무렵까지 학원에 붙들려 있던 중학교 시절(덕분에 중2병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냥 졸리기만 했으니까)과 학원장이 도박 빚에 시달리다가 야반도주, 그야말로 수능 멘붕이 왔던 시절까지(그 학원장은 아이들에게도 돈을 꾸었다), 성규는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이런저런 학원에서 보냈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경기도 소재의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하고 났더니 그 후론 남아나는 시간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성규는 대학 시절 내내 롤과 함께 지냈고, 정신을 차려보니 대학 졸업 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공기업 입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동안 월세와 생활비를 보내주었지만, 두 달 전부턴 그 모든 게 끊기고 말았다.
“엄마 아빠는 이제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지금부터 네 앞가림은 네가 알아서 해야 해.”
두 달 전, 엄마는 그렇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교육이니 학원이니 욕들 하지만… 하 참, 학원 없으면 청년 취업률은 어떻게 할 건데? 이 초짜들 누가 다 받아줄 건데?”
흰 와이셔츠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에이, 그래도 이 이력서는 너무 심했다. 알바 경력도 쓰고, 뻥도 좀 치고 그래야지. 난 처음에 이력서 냈을 때 교내 연극제 참가했던 거까지 싹 다 썼는데.”
뿔테 안경은 탁자를 계속 검지로 두들기면서 말했다.
사실 성규 또한 그걸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경기도 2기 신도시 안에 위치한 국어전문학원, 2명의 원장이 운영하는 젊은 학원, 중등부 전담 국어강사 모집, 경력 무관, 초보 강사 가능, 월화수목 4일 출근, 3개월 월급제(150만 원) 이후 비례제(45%)로 전환, 면접비 지급. 그것이 성규가 본 그 학원의 강사 구인 광고였다. 대학도 졸업한 마당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순 없고, 그렇다고 다른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동기들도, 선배들도 그런 과정을 거쳐 학원 강사를 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이력서에 아무런 거짓말도 쓸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학원은 원래 무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영점에서부터 올라가는 거니까….
“이성규 씨, 이성규 씨는 학원 강사의 최고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흰 와이셔츠가 물었다.
성규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강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중엔 좋았던 선생님들도 많았다. 아이들을 정말 위해주었던 선생님, 아이들을 위해서 원장과 싸워준 선생님도 있었고, 학원을 ‘째고’ 튄 친구를 찾아 근처 피시방을 다 뒤지고 돌아다닌 선생님도 있었다. 한 선생님은 시험 때마다 엑셀 파일로 그동안 나왔던 객관식 정답 비율을 정리해서 나눠주기도 했다. 잘 찍는 거, 그것도 실력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지금은 학원 원장이 보는 학원 강사의 덕목을 말해야 했다. 그게 핵심이었다.
“글쎄요. 강의력… 강의력 아닐까요?”
성규가 그렇게 말하자, 뿔테 안경이 피식,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난 강의 진짜 못했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강의력은 덕목이 아니고 기본인 거고….”
흰 와이셔츠는 잠깐 뿔테 안경을 바라보며 말을 끊었다. 그러곤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여긴 돈이 오가는 곳이라서 마케팅 능력이 최우선시되는 곳이에요.”
“아, 네….” 성규는 그 순간부터 자신이 면접을 망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아, 아직 시강이 남아 있으니까.
“마케팅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아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건데, 이성규 씨가 생각하기에 지금 학부모들은 무엇을 제일 원하고 있는 거 같아요?”
성규는 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 자녀를 키우다가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부모님. 부모님은 성규가 의사가 되거나 변호사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 거기까진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사람, 그것만 바라고 또 바랐다.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그것도 제대로 못 하는 자식이 될 것만 같았다고, 그렇게 엄마는 말한 적이 있었다.
“철저한 성적관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요, 아니요. 그것도 아닙니다.”
흰 와이셔츠는 성규의 이력서에 무어라고 적으면서 말했다.
“그건 소수의 학부모들뿐이고…. 여기 이 동네 학부모들은 자식에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말라고 학원에 보내고 있는 거예요.”
흰 와이셔츠의 말을 받아서 뿔테 안경이 “내가 가르치는 학생 엄마는 자기 자식이 학원이라도 다니지 않으면 마약에 손댈 거 같다고 그랬어”라고 중얼거렸다.
“좋은 학원은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거죠. 그래서 말인데.”
그러면서 흰 와이셔츠는 성규에게 가끔 아이들 자습도 맡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시험 때는 물론이고, 방학 때도 자습과 특강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거기에 따로 수당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성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강사가 되고 원장이 된 거거든요. 이성규 씨만 열심히 해준다면 혹시 압니까? 나중엔 여기 지분 투자해서 우리와 함께 공동 원장이 될지?”
흰 와이셔츠가 그렇게 말하자, 뿔테 안경이 정색을 하면서 나섰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말은 하면 안 되지?”
“가정이야, 가정. 그렇게 열심히 해 달라는.”
“아니, 왜 열심히 해 달라는 말을 그렇게 하냐고? 아이 참나, 난 이런 게 기분이 나쁘다니까.”
뿔테 안경은 그러면서 애당초 중등부 과정을 새롭게 만드는 것도 자신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미 다 합의해놓고. 둘 사이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고, 성규는 그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에도 비용처리를 이상하게 하더라는 말과 인테리어 비용 이야기까지 나오자, 흰 와이셔츠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뿔테 안경 또한 지지 않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사람이 서로 노려보는 가운데 성규는 계속 ‘안긴문장’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젯밤 내내 준비했던 시강 자료…. 이 학원에 살포시 안기겠다는 말로 마치려고 했던 시강 자료인데… 안기긴커녕 얻어맞지나 않으면 다행일 거 같았다.
성규는 그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강의실 밖으로 빠져나오다가 무언가 퍼뜩 떠올라 다시 그쪽으로 다가갔다.
“저기 근데… 면접비는 어떻게?”
성규가 그렇게 말하자, 흰 와이셔츠가 여전히 화난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띠링, 이내 성규의 스마트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배스킨라빈스 파인트 쿠폰이 도착했다.
“학생들이 돈의 위력 깨닫는 게 사교육… 그게 두려움의 정체”
■ 작가의 말
“학생들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보는 직종의 사람들이 바로 학원 강사니까요.” 이기호 작가는 ‘너희는 자라서’의 등장 인물이 전부 학원 강사인 것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는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이 작가는 학생들이 사교육에서 ‘돈의 위력’을 배운다고 우려했다. 그는 “학생들이 학원 강사들의 노동 조건과 인기에 따른 그들 사이의 위계를 보고 경험한다”면서 “그것이 바로 사교육이 학생들에게 주는 교육이고 경험, 두려움의 정체”라고 설명했다. 소설 속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작가는 “사교육의 위력을 경험한 지금의 학부모들은 현재 삶이 그나마 사교육 덕분이라 믿는다”면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며 괜찮은 아빠 엄마라고 자평한다”고 지적했다. 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최소한 부모 세대만큼 살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사교육 대물림이 시작됐고, 이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을 거 같습니다.”
■ 이 작가는…
1972년생. 1999년 등단. ‘최순덕 성령충만기’ ‘차남들의 세계사’ 등을 썼다. 김승옥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수상.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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