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미술시장…‘MZ 컬렉터’가 몰려온다
“영리치 합류…파리·뉴욕 같아”
BTS RM, 아트컬렉터로 두각
주식·코인 이어 새 투자처 부상
팝아트 가고 귀여운 감성 인기
분위기 휩쓸린 ‘패닉바잉’우려
#1. 지난달 글로벌 미술 ‘큰손’들의 시선이 쏠렸던 ‘프리즈 서울’에선 2030 젊은 미술 컬렉터들이 유독 돋보였다. 개막 첫날 VIP 프리뷰를 관람한 이들은 인근 청담동, 신사동에 위치한 옥션·갤러리들이 연 디너파티를 찾아 샴페인을 즐기며 큐레이터, 작가들과 교류했다. “관심 있는 작품이 걸린 근처 갤러리로 가보자”며 늦은 밤까지 미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이들을 본 한 갤러리스트는 “‘영리치’들이 미술시장에 들어오니 서울도 뉴욕이나 파리 같은 분위기가 난다”고 말했다.
#2. 국내 주요 아트페어인 아트부산은 다음 달 디자인과 현대미술을 섞은 신개념 아트페어 ‘디파인 서울’(DEFINE SEOUL)을 연다. 런던, 밀라노 같은 해외로 진출을 노리는 이들이 상륙지로 고른 곳은 성수동. 요즘 2030세대로 붐비는 최고 핫플레이스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예술적 감성도 충분한 젊은 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디파인 서울 총괄 디렉터인 양태오 디자이너는 “한국에 젊은 미술 컬렉터들이 많아지면서 작품을 소비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고 했다.
한국 미술시장이 젊어졌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미술에 눈을 돌리면서다. 요즘 ‘핫’한 현대미술 작가 전시가 열리면 이들 사이에 ‘광클’(표를 사기 위해 빠르게 클릭) 경쟁이 일어나는 건 예사다. 한적한 관람 문화에 익숙한 4050세대는 “미술관을 예약하고 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작가와 전시기획자들은 작품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이들을 보고선 미술 향유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며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젊은층의 미술시장 침입은 비단 관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MZ 컬렉터’라는 이름으로 미술품 투자시장도 다시 그리고 있다. 수억에서 수십 억 원에 달하는 걸작을 사는 ‘큰손’은 아니지만, 수백만에서 수천만 원의 눈여겨볼 작품을 사들이며 젊은 작가를 키우는 ‘작은 손’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MZ 컬렉터의 출발점은 ‘아트 인플루언서’가 된 방탄소년단(BTS) RM이다. 2018년 해외 투어 중 우연히 미술관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알려진 그는 곧 ‘영리치 컬렉터’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전문가도 놀랄 수준의 미술에 대한 이해도를 보여주는 RM은 국내외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주식, 부동산, 코인에 이어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MZ세대가 RM 같은 아트 인플루언서의 영향을 받아 미술품 거래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미술관에 가야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누구나 손쉽게 작품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미술품을 사려면 돈과 함께 안목이나 취향, 이해가 있어야 하는 만큼 일종의 플렉스(Flex·자기과시) 수단으로 명품 대신 미술품을 택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글로벌 경매사 크리스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구매 고객 중 31%가 신규 고객인데, 이 중 38%가 30대 이하 세대다. 라이벌인 필립스는 최근 작가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인 ‘드롭샵’(Dropshop)을 선보였는데, 이는 젊은 컬렉터들이 갤러리 대신 SNS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자유롭게 구입하려는 특성 때문이란 분석이다.
MZ 컬렉터들은 이른바 ‘레드칩’으로 불리는 젊은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떠받치고 있다. 구매력이 낮다 보니 ‘억’ 소리 나는 작품 대신 취향에 맞는 작가의 작품을 찾아내 소장하고 되파는 것이다. 1988년생인 김선우 작가가 대표적이다. 날기를 포기하고 멸종하게 된 ‘도도새’를 주제로 한 그의 그림에 스스로를 투영한 MZ 컬렉터들이 열광하고 있다.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는 “4050세대가 요즘 MZ세대일 당시 팝아트 요소가 있는 작품이 유행했다면 최근엔 귀여운 감성의 작품들이 2030 취향”이라면서 “우국원이나 김선우 같은 요즘 세대가 공감할 만한 개념에 귀엽게, 또는 독특하게 표현해내는 작품이 인기”라고 했다.
미술계는 젊은 컬렉터들이 달구는 시장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낸다. 미술품을 지나치게 투자 관점으로 접근하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패닉바잉’ 등의 역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다소 안목이 부족하고 작품 가격이 결정되는 로직에 무신경한 점도 문제란 지적이다. 미술작품과 작가 이력을 알려주는 디지털 아트 플랫폼 ‘아티팩츠’를 선보인 박원재 원앤제이갤러리 대표는 “작가 경력은 작품의 이력서나 마찬가지다. 어떤 기관이 협업해왔고, 누가 소장했는지만 봐도 가격에 대한 감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다”며 “다양한 전시를 접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초기 투자 금액은 한달치 월급이 딱
초보 컬렉터가 주의할 점
젊은 ‘초보 컬렉터’의 약점은 작품과 시장에 대한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술계 전문가들이 “많은 미술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 경매사와 ‘아트 컬렉팅: 감상에서 소장으로, 소장을 넘어 투자로’(디자인하우스) 저자인 케이트 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통해 현실적인 미술 투자법을 소개한다.
◇투자로만 접근 컬렉팅 묘미 잃어
케이트 리 = 경제적으로 이윤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작품을 투자 대상으로만 보면 가격의 등락에만 집중하게 돼 컬렉팅의 묘미를 잃게 될 수 있다.
손이천 = 미술 작품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다. 집에 예쁜 작품을 걸어놓고 싶어 접근하는 게 컬렉션의 출발이다. 하지만 미학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에 미술 본연의 가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술 안목, 현장에서 익혀야
케이트 리 =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보길 권한다. 많은 작품을 대하다 보면 장르, 시대, 사조, 작가, 매체, 표현법에 이르기까지 관심과 선호가 생기고 그에 맞춰 컬렉션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손이천 = 미술은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작가는 왜 그렸을까 질문을 던지고 작가 노트를 보거나 작품을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즐기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작은 소품이라도 사볼까 하며 자연스럽게 소장의 길로 들어선다.
◇ 초보라면 한 달 치 월급이 적당
케이트 리 = 지난 프리즈 서울, 키아프 서울에선 MZ세대가 대부분 1000만 원 이하의 작품을 구매했다고 들었다. 1차 마켓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추후 2차 마켓에서 재판매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게 좋다.
손이천 = 초보 컬렉터라면 일반 직장인의 한 달 치 월급 수준인 300만 원 안팎에서 구매해보는 게 타격이 작다. 미술 작품 구매를 위해 절대 빚을 내선 안 된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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