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시방서에 ‘빗속 콘크리트’ 만연… 부실시공 아파트 우려

최준영 기자 2023. 10. 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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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업계 “의무규정 없어 실효성 떨어진다”
강우량 기준·책임 기술자 등
구체적 설명·강제성 없고
시공준수 확인 과정도 생략
물탄 콘크리트 활개 원인
“제도개선 없인 불신 못막아
주택안전 우려 해소 역부족”
최근 건설 현장에서 시공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실시공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21일 광주 북구 한 아파트 공사 현장이 가동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7월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폭우 속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진행돼 논란이 일었다. 이에 동대문구청에 민원이 제기됐고, 구청 관계자는 현장 작업을 중단시키고 안전점검에 나섰다. 시공사는 “비가 내리지 않을 때를 골라 콘크리트를 타설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전국 주요 공사현장에서 여전히 ‘빗속 콘크리트 타설’이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장 근무자들은 “빗속에서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어 현장에서 타설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국토교통부 콘크리트 표준시방서(건설 공사를 시행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기록한 서류)는 ‘강우가 콘크리트 품질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 책임 기술자의 검토를 받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강우량 기준과 책임 기술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는 상황이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이후 건설현장 전반에 대한 부실시공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6일 콘크리트·골재 업계 안팎에 따르면 콘크리트 표준시방서는 시설물 안전과 공사시행 적정성 등을 평가하기 위해 마련됐는데도 준수 관련 의무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선 시공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안전과 품질 저하 우려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인 만큼, 콘크리트·골재 품질검사 강화 등 제도 개선이 서둘러 뒤따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콘크리트 업계 관계자는 “어떤 구조물이 100t 하중을 견디도록 기준이 정해져 있다면, 시공 방법이 기준치를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되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의 표준시방서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로 전락한 만큼, 관련 제도 개선 없이는 불신을 해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표준시방서 도입 취지대로 설계 후 제대로 시공이 이뤄졌는지 반드시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를 의무화하지 않고서는 건설구조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이른바 ‘물 탄 콘크리트’에 대한 불신도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품질 부적합 레미콘 사용을 근절하기 위해 단위수량 품질검사 기준을 마련했다. 단위수량은 아직 굳지 않은 콘크리트 1㎥ 중에 포함된 물의 양이다. 이는 콘크리트의 강도, 내구성 등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꼽힌다. 국토부는 관련 내용을 포함해 콘크리트 공사 표준시방서를 지난해 9월 1일부로 개정 고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1일부터 건설 현장에서 레미콘 반입 시 단위수량 검사를 실시해야 하지만, 도입 취지와 달리 많은 현장에서는 저품질 콘크리트 유통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건설현장에서 원가 절감 등을 이유로 콘크리트에 물을 첨가한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돼 왔다.

이 같은 상황도 콘크리트 공사 표준시방서의 강제성이 약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단위수량 검사를 의무화하는 ‘건설공사 품질관리 업무지침’ 개정안이 최종 고시되면 콘크리트 품질관리의 현장 기준이 강화될 전망이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건설 현장에서 단위수량 검사를 실시해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 폐기, 합격이면 타설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콘크리트 품질 우려를 해결하고 관련 제도를 건설현장에서 안착시키려면 우선 정부가 정책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며 “법적인 업무지침이 조속히 마련돼야 건축물 붕괴 등 반복되는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골재 품질검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행 골재 품질검사는 품질관리전문기관이 골재 생산현장을 방문해 기준에 적합한지 검사하는 정기검사와 불시로 이뤄지는 수시검사로 나뉜다. 하지만 정기검사의 경우 사전 공지를 통해 이뤄지다 보니, 그간 품질 관리를 소홀히 해온 업체더라도 검사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실질적인 검사 강화를 위해 불시 수시검사 빈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일각의 주장이다. 골재업계 관계자는 “품질검사에서 적합으로 판정받은 골재만 사용하도록 건설공사 품질관리 지침 등도 규정돼야 한다”며 “수시검사 확대를 위한 예산 확보와 함께 골재채취법에 납품서 규정을 신설하고 적합 여부를 표기하도록 하는 제도개선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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