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참전→유가 150달러’ 헬게이트 초읽기…韓 증시 체력, 버텨낼 수 있을까 [투자360]
국내증시 반도체, 배터리 등 대형주 부진 겹쳐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예고로 이란마저 하마스의 편을 들며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국제유가가 악화 중인 중동 사태를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에도 압력을 가하고 있다.
대외적 환경이 빠른 속도로 악화한 상황 속에 국내 증시에서도 반도체, 배터리 등 대형 주도주의 부진이 겹치며 국내 증시가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경제 전문가들은 이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중동전쟁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전제로 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 개입’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국제 유가가 배렬당 150달러로 치솟고,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1.7%로 떨어질 것이란 관측을 내놓았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직접 충돌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블룸버그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64달러 오르고, 그 여파로 내년 세계 인플레이션율이 1.2%포인트 올라 6.7%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란은 산유국인 데다 유사시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 호르무즈해협의 하루 원유 수송량은 글로벌 수송량의 20% 수준이다.
실제로 이·팔전쟁에도 크게 요동치지 않던 국제 유가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 우려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브렌트유 12월 인도분 선물은 5.69% 오른 배럴당 90.89달러로 마감하며 3일 이후 다시 배럴당 90달러대에 진입했다. 5.77% 오른 서부텍사스원유(WTI)와 함께 올 4월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주말 전 미 뉴욕증시(NYSE) 역시 출렁였다. 지난 13일(현지시간)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0.5%, 1.23% 하락했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위기감으로 대표적 안전 자산인 금과 미 달러화 가격은 급등했다.
유니크레디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에릭 닐슨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이·팔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산하면 국제 금융시장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는 우크라니아 전쟁보다 더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월가에서도 확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분쟁 격화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 시 가뜩이나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재차 상승 곡선을 그릴 수 있고, 이로 인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금리 기조를 더 강화하고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 장기 국채 금리 상승세로 인해 미 연준 내에서 비둘기(완화 선호)파 인사들의 목소리가 부쩍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를 넘어설 경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역시도 13일(현지시간) “지금이 세계에 수십 년 만에 닥친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이먼 CEO는 JP모간 실적 발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더해져 에너지·식량 시장과 글로벌 무역, 지정학적 관계에 전방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탄탄한 노동시장과 높은 미 정부 부채로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상승할 위험이 크다. 최선의 결과를 희망하지만 여러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3고(高, 고금리·고유가·고환율) 압박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국내 증시에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우선 올 들어 국내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던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에 대해 강력한 순매도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증시 변동성에는 리스크로 작용 중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달 18일부터 지난 13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15거래일 연속 순매도세를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본격화한 지난 2020년 3월 5일부터 30거래일 연속 외국인이 순매도세를 보인 이후 최장 기간이다.
증권가에선 고금리에 따른 달러 강세가 외국인 매도세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여기에 유가 승승에 따른 우려와 기술주를 중심으로 한 국내 기업들의 실적 부진도 외국인 투심에는 악재라는 분석도 있다. 퀀트와이즈와 삼성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49조3691억원 수준을 최근 한 달간 2.2% 하향 조정됐고 코스닥 상장사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역시 2조 4460억원으로 같은 기간 5.3% 내려왔다.
중동 지정학적 갈등 확산으로 업종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산유국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동이 원유 공급을 제한할 경우, 고물가로 성장세가 둔화될 수밖에 없었던 글로벌 증시는 또 다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당장 그런 징후가 보이진 않더라도 잠재적으로 그럴 수 있다는 불안이 심어지는 게 투자자들에겐 상당한 부담”이라고 말했다.
금리의 방향성이 매우 불명확해질 것이란 판단 하에 당분간 주가 방향은 매우 모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김 연구원의 관측이다. 그는 “시장 흐름을 예상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시황이 어려워질 수 있고, 적극적인 시장 대응은 잠시 지양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포지션이 있다면 시장 변화에 덜 민감하게 반응할 업종으로 압축해야 할 것이고, 포지션이 없다면 투자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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