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사령탑 후보에 올랐던 '일본 히딩크', 머리 희끗희끗한 노장이 되어 韓과 '재회'

윤진만 2023. 10. 1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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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일본 대표 감독 시절 필립 트루시에 감독(왼쪽), 2023년 베트남 사령탑으로 선임된 트루시에 감독, 스포츠조선DB, 베트남축구협회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오는 17일 오후 8시 수원에서 열리는 한국과 베트남의 축구 친선 A매치에서 주목할 포인트 중 하나는 적장인 필립 트루시에 베트남 감독(68)의 존재다.

지도자 경력 40년의 프랑스 출신 트루시에 감독은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초반까지 일본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수차례 한-일전에 나선 인연이 있다. 허정무 감독과 트루시에 감독, 거스 히딩크 감독과 트루시에 감독은 한국과 일본 축구의 자존심을 걸고 지략대결을 펼쳤다. 199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에선 최용수의 멀티골로 한국이 2대0 승리했고, 2000년 4월과 2000년 12월 두 차례 친선전에선 1승1무로 한국이 우위를 점했다. 성인대표 레벨에선 한국이 '트루시에 재팬'에 2승1무로 앞섰지만, 당시 청소년대표팀 감독도 겸했던 트루시에 감독은 1999년 9월 올림픽팀간 한-일전에서 치욕스러운 1대4 대패를 안겼다.

일본에 '점유율 축구'를 도입한 트루시에 감독은 1999년 FIFA U-20 월드컵 준우승, 2000년 시드니올림픽 8강, 2000년 아시안컵 우승,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을 일궜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일본 축구에 첫 월드컵 승점과 첫 승리, 첫 토너먼트 진출을 선물하며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대회 후 프랑스의 2차 세계대전 영웅인 샤를 드골 대통령에 비유한 '일본의 드골'이라는 별명을 달았고, 일본 내에 트루시에 신사가 지어졌다. 2020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괴팍한 언행, 톡톡 튀는 전술로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일본은 트루시에 감독 이후로도 지코, 이비차 오심 등 외국인 감독을 줄줄이 선임하며 대표팀 기초 다지기에 힘썼다. 한국도 트루시에 감독의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아 외국인 감독으로 눈을 돌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선임됐다.

Xinhua연합뉴스
출처=우즈베키스탄축구협회

월드컵을 끝으로 일본을 떠난 트루시에 감독은 십수년간 꾸준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축구와 연을 이어갔다. 2004년 카타르 대표팀을 짧게 맡았고, 2011년부터 중국 선전루비, 항저우그린타운 등을 이끌었다. 지도자 커리어 초반 아프리카팀을 주로 맡아 좋은 성적을 내면서 아프리카 주술사(마법사)를 뜻하는 '하얀 마법사'로 불린 트루시에 감독은 2005년,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드러냈다. 당시엔 네덜란드 출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임됐다. 대한축구협회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마치고 트루시에 감독을 새 사령탑 후보군에 올려놓았지만, 장고 끝에 '만화축구'를 지향하는 조광래 감독을 선임했다. 한국 대표팀과 연이 닿을 듯 닿지 않았다.

트루시에 감독은 2022년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8강 진출'을 목표로 내건 일본 대표팀에 "한국처럼 하라"는 조언을 남겨 화제가 됐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조직적인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승리한 것을 빗대, 일본에 점유율 축구를 버리라고 조언한 것이다.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16강에서 크로아티아에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8년말 베트남축구아카데미 테크니컬디렉터로 부임해 베트남 유소년 발전의 키를 쥔 트루시에 감독은 베트남 19세이하 대표팀 감독을 거쳐 지난 3월 박항서 감독이 떠난 뒤 공석이 된 베트남대표팀 겸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년전 한-일전을 누빈 팔팔했던 프랑스 지도자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70세를 앞둔 노익장이 되어 한국을 상대하게 되었다.

트루시에 감독은 이달 10일 중국, 13일 우즈베키스탄에 0대2로 연패하면서 베트남 팬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그는 "한국과 같은 강팀을 상대할 때 우리의 볼점유율은 30~3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현실을 인정하며, 수비 조직력과 역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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