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외국은 대피소 늘리는 추세…중청 숙박기능 없애선 안 돼

안명득 설악산민간산악구조단장 2023. 10. 1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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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대피소 (2023년 겨울 촬영 사진 c영상 미디어)

설악산 중청대피소의 철거 및 신축으로 조만간 중청대피소 숙박 기능은 사라질 예정이다. 설악산에서 오랫동안 인명 구조를 해온 민간산악구조대장 입장에서 매우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는 산장이 아니라 '대피소'를 사용하지만 그동안 숙박시설로서 순기능을 했다. 외국의 산에는 리퓨지오Rifugio(Refuge, Refugio), 로지Lodge, 헛Hut 등 다양한 명칭으로 100년 넘는 산장 역사가 있다. 이 명칭에는 대피소나 산장의 의미가 들어 있지만 식사와 숙박 기능을 제공함은 물론이고, 대피소의 역할과 산악구조에도 혁혁한 공을 새우고 있다.

필자가 몽블랑을 비롯한 프랑스, 스위스, 조지아의 산을 등반하기 위해 머물렀던 알프스의 산장들은 식음료 서비스와 샤워, 수세식 화장실 등을 잘 갖추고 있었다. 전문산악인들이 이용하는 높은 암벽 위의 산장은 대피소 개념의 무인산장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식사와 쾌적한 숙박을 제공한다. 몽블랑 아래의 구떼산장이나 스위스 마터호른 아래의 회른리산장의 경우 최근에 초현대적으로 리모델링, 신축해 호텔급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산장 운영주체를 보면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산악협회에서 관리하며, 스위스 체르마트 산장들은 가이드협회에서, 이탈리아의 산장들은 대대로 가문에서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아이슬란드, 일본 등도 공공 또는 민간이 운영하지만 시설과 서비스는 유럽과 사정이 비슷하다.

외국은 100년 이상 된 산장 보존 하는데…

유럽의 산장들은 국제산악연맹 소속 회원이라면 10% 할인까지 해주며 전문산악활동을 지원하기도 하니 우리나라와는 인식과 문화 차이가 크다. 그리고 100년 이상 된 산장들을 허물지 않고 역사적인 유물로 잘 보존한다. 알프스에서 등반을 뜻하는 '알피니즘'이 유네스코 세계복합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보더라도 산장이라는 하드웨어는 중요한 문화적 유산이다.

설악산은 우리나라 산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산세가 험하고 암·빙벽과 장거리 능선이 있어 전문산악인들의 도전의 무대, 그리고 히말라야 해외원정팀들에게 가장 적합한 훈련장이 되어 왔다.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산이 설악산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만큼 설악산 최고봉 대청봉을 오른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버킷리스트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어느 산보다 설악산에서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특히 대청봉 일대 바람골에서는 겨울에 체감온도 영하 40℃ 아래의 강추위에 히말라야보다 더 험한 날씨가 되기도 한다. 2016년 1월 대청봉에서 중청으로 하산하던 남성이 강풍과 악천후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대청에서 중청까지 30분 거리지만 그날은 성인 남성도 몸을 못 가눌 정도로 강풍이 불었고, 탈진한 사고자는 구조대가 오기까지 버티지 못했다. 그날 한계령에서 출발한 남성도 중청대피소를 얼마 안 남기고 생사의 기로에서 가까스로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다. 35명이나 되는 사람이 악천후로 인해 중청대피소에 대피했고 일부는 동상에 걸려 다음날도 하산하지 못하고 중청대피소에서 여러 날 숙박한 후에 탈출할 수 있었다.

한겨울 대청봉 바람골 체감 영하 40℃

중청대피소를 가까이 두고도 이렇게 목숨을 잃는데 국립공원공단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희운각대피소이나 소청대피소까지 가야 한다면 그 어려움과 위험은 몇 배로 증폭될지 계산을 할 수 없다.

대청봉을 하루 만에 오르내릴 수 있는 강한 사람만 대청봉을 오를 수 있다고 할 것인가? 오색케이블카를 놓을 때 장애인이나 약자들도 설악산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논리였다면, 대청봉을 오르고자 하는 일반 국민들이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도록 중청대피소에 숙박 가능 인원을 오히려 늘려야 하지 않을까?

설악산 중청대피소는 꼭 필요한 자리에 지어졌다. 소청이나 희운각까지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탈진한 사람들의 구조 요청이 증가할 것임을 확신한다. 앞으로 증가할 안타까운 사망사고나 조난 등에 그 원망을 어찌 다 감당하려고 그러는가?

다른 나라의 경우를 예로 든다.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어느 트레킹 코스에는 물이 없어 유일하게 재래식 화장실로 지어진 산장이 있다. 이 코스에서 산장은 하루 걷는 거리 중간에 있어 굳이 트레킹 도중 숙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산장이 그 위치에 지어진 것은 한 안타까운 죽음 때문이다.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이라 길을 잃은 한 청년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에서는 그곳에 산장을 짓고 경광등을 높이 달아 등대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중청대피소 숙박기능을 없앴을 경우 발생할 국민안전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충분히 검토한 후 철거해도 되지 않을까? 성급하게 없앴다가 추후 여론과 상황이 바뀌어 다시 지어야 한다면 국민의 세금 낭비 사례로 지탄받을 것이다. 공단에서는 국내외 사례들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애초에 그 자리에 중청대피소가 지어진 이유와 역사를 복기하고 좀 더 신중히 결정하기를 바란다. 노후화가 이유라면 친환경적이고 현대적으로 지으면 된다. 새로 지어진 지리산 세석대피소와 설악산 희운각대피소를 이용한 국민들의 만족도가 높고 대한민국 국민다운 대접을 받은 것 같아 국립공원공단을 칭찬한다.

대피소 기능은 살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중청대피소에 대피하겠다는 사람들에 대한 기준에 대한 논란, 대피 개념으로 숙박한 사람들에 대한 특혜 논란 등이 예상된다. 실제 부상이나 탈진한 등산객이 하산을 못 하고 대피소에서 하룻밤 자게 해달라 요청했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다고 무조건 내려가라고 하면서 못 내려가겠다고 울고불고 하는 사람을 천미터 고지의 대피소까지 119대원을 불러 올려 하산시키는 것도 목격했기 때문이다.

등산객뿐만 아니라 구조대원 안전에도 필수

오히려 대피소를 더 건설해야 할 곳도 있다. 그동안 설악산 곳곳에서 구조 활동을 하며 절실히 느낀 것인데 마등령에 대피소가 있었다면 수많은 목숨도 살리고 조난 사고들에 대응이 쉬웠을 것이다. 인기 코스인 공룡능선을 택한 사람들이 마등령에서 대부분 외설악, 즉 속초로 하산한다. 공룡능선에서 이미 힘이 빠진 등산객들이 마등령 부근에서 길고 긴 하산을 앞두고 조난을 많이 당한다.

물론 중청대피소나 마등령 같은 곳은 식수 사정이 좋지 않고 고지대에 있어 직원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하다. 하지만 국민의 등산 욕구와 권리를 생각한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공원에 당연히 편의 시설이 지어져야 한다. 일본 후지산의 경우에도 최고봉에 대한 국민들의 수요가 넘쳐 산장을 근거리에 더 짓기도 하고 적극 수용하려고 한다.

중청대피소에서 숙박할 수 없을 때 국민들과 구조대원의 안전이 우려된다. 구조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이 시점에 철거 문제를 신중히 재검토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한편 설악산은 북한산보다 험한 암벽·암릉·빙벽이 많아 대형 산악사고 또는 구조가 어려운 사고가 빈번하다. 수직의 벽에서 등반 사고가 발생했을 때 119와 공단의 재난안전과 직원들만으로는 힘든 상황이 있어 민간산악구조대가 힘을 많이 보태고 있다. 119가 활동하기 이전인 1960년대부터 설악산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민간산악구조대원들이 그 현장을 수습했다. 그러나 민간구조대원들은 어디까지나 생업을 병행하며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것이기에 한계가 있다.

다행히 국립공원공단에서는 암벽 등반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북한산과 도봉산에 특수산악구조대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성을 가진 산악인을 채용해 실효성 있게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설악산에도 반드시 도입해 주기를 바란다. 특성상 인사이동이 불가피한 119나 국립공원 일반직원들로는 암벽·빙벽 전문구조 역량에 한계가 있고, 인적 구성에 공백 없이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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