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실리콘벨리’ 싱가포르, VC들도 현지 진출 활발
지난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 8위
VC 관계자들 “동남아 시장, 총성 없는 전쟁터”
싱가포르 공기업 출신 인재 모시기도 치열
수년 내 투자금 회수 현실화가 당면 과제
“동남아시아 일인당 평균 소득은 연 4000달러를 통과해 가처분 소득이 발생하는 구간에 접어들었습니다. 향후 10년 간 지속될 폭발적인 소비력 성장을 고려하면 동남아 진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SV인베스트먼트(289080) 싱가포르 법인을 이끌고 있는 방정헌 상무는 15일 싱가포르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국내 벤처캐피탈(VC)들이 동남아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동남아 벤처시장은 국내와 비교해 초기 성장기로 높은 투자 수익률을 노려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그랩(싱가포르), 고투(인도네시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VC들이 동남아 진출을 위해 선택한 거점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지리적 이점, 전통적 금융 허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등에 힘입어 동남아시아의 실리콘벨리로 불린다. 동남아 주요 스타트업들의 약 80%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다.
최근 홍콩 금융시장이 코로나19 이후 주춤하면서 반사이익까지 누렸다. 미국 리서치 회사 스타트업 게놈이 스타트업 투자 규모, 시장 영향력 등을 종합해 지난 6월 발표한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GSER 2023)에서 싱가포르는 전년 대비 10계단 오른 8위를 기록하며 서울(12위)을 제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주요 VC들은 앞다퉈 싱가포르에 지사를 세우고 있다. 한국투자파트너스가 2019년 국내 VC로는 처음으로 싱가포르 법인을 설립했고, 에이티넘인베스트(021080)먼트(2021), 우리벤처파트너스·인터베스트(2023) 등 국내 대형 VC들이 잇달아 싱가포르에 전진기지를 세웠다. LB인베스트먼트(309960), IMM인베스트먼트도 싱가포르 사무소 설립을 검토 중이다. 방 상무는 “동남아 시장에서 플랫폼 기업 투자는 이제 벨류이에션 고점에 다다랐다”며 “전기차, 헬스케어, 소프트웨어 등 기술·제조 기반 분야가 앞으로 투자 대상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VC관계자들은 현재 싱가포르 VC시장에 대해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다”고 입을 모았다. 한 국내 VC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동남아 시장에 1000억 원 이상 규모의 펀드가 드물었지만 지금은 세계의 자금이 모여들고 있어 예전보다 좋은 투자 기회를 선점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로컬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면 ‘현지 인재 모시기’가 필수인데 최근에는 싱가포르경제개발청(EDB) 투자부문 자회사인 EDB인베스트먼트 출신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국내 VC들은 로컬 VC와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하는 방식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국내 VC 입장에선 로컬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고 동남아 VC들 반대로 국내 VC를 통해 한국 투자 시장 진출을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일례로 SV인베스트먼트는 7월 로컬 대형 VC인 AC벤처스와 이스트벤처스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 전기 오토바이 제조사인 마카모터스(Maka Motors)에 약 500억 원 규모 투자를 집행한 적 있다.
실제 투자금 회수가 아직 미비하다는 점은 동남아 VC 시장이 당면한 과제다. 동남아 시장에서 VC 투자가 활성화 된 건 2010년 경으로 통상적인 펀드 만기(10년) 사이클을 이제서야 처음으로 마무리하는 단계다.
올 5월 싱가포르 중심업무지구(CBD)에 사무실을 연 우리벤처파트너스의 현지훈 상무는 “지난주에 만난 해외 출자자(LP)의 한 관계자로부터 ‘동남아 스타트업의 가치는 올라가고 있는데 아직 엑시트가 안 돼 일본보다 DPI(납입자본 대비 분배금 배율)가 낮다’는 고민을 들었다”며 “향후 몇년 이내에 실제 엑시트 사례가 나타나야 VC투자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싱가포르=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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