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면 욕심 많아져…난 그래서 실패했다" 마운드의 철학자, 다승 3위 ERA 9위의 비결

신원철 기자 2023. 10. 16. 07: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임찬규 ⓒ곽혜미 기자
▲ 임찬규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신원철 기자] 이제 임찬규는 간절하게 욕심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해야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렇게 마음먹었더니 성적이 달라졌다. FA 재수를 택하고 맞이한 시즌에 다승 3위(14승) 평균자책점 9위(3.42)에 올랐다. 한국시리즈 선발 등판도 유력하다.

임찬규는 15일 LG의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선발 임무를 맡았다. 이미 1위를 확정한 LG지만 이번 경기는 이겨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KBO로부터 정규시즌 우승 트로피를 전달받는 날이자, 홈 팬들에게 한국시리즈 출정을 알리는 기회이기도 했다. 29경기에서 139이닝을 던진 임찬규에게는 규정이닝이 걸려 있었다.

팀과 개인의 목표를 안고 마운드에 오른 임찬규는 5⅔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승리까지 챙겼다. LG는 임찬규의 호투를 발판으로 5-2 승리를 거두며 86승 2무 56패 승률 0.606으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임찬규는 14승(3패) 평균자책점 3.42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다승은 3위이자 한국인 투수 가운데 1위, 평균자책점은 9위면서 한국인 투수 가운데 4위다.

▲ 염경엽 감독 임찬규 김현수 오지환 ⓒ곽혜미 기자

경기 전 염경엽 감독은 "임찬규를 14일 경기에 내보낼 수도 있었는데 15일로 미뤘다. '토종 에이스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며 웃었다. 임찬규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호투로 팀에 승리를 안겼다.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임찬규에게 LG 팬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임찬규는 모자를 벗어 흔들었다.

정작 임찬규는 성적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는 경기 후 "(내가)에이스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단지 올해 성적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성적이 나왔지, 나 스스로 에이스 몫을 했다고 하기에는 (활약한 경기가) 몇 경기 안 된다. 그리고 몇 년 되지도 않았고, 올해 조금 잘한 거라 에이스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앞으로 2년 3년 그 이상으로 이런 성적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또 "그런 성적을 내기 위해서, 내가 시즌을 그냥 준비했을 때보다 작년에 팀을 위해 희생하지 못했다는 점에 후회하면서 '팀을 위해서' 시즌을 준비했더니 더 좋은 결과가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이)앞으로 시즌 준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마치 FA 이적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덧붙였다

▲ 임찬규 ⓒ곽혜미 기자

임찬규는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늘 여러가지를 시도하는 선수였다. 올해는 생각까지 달라졌다. 지금까지 임찬규에게 듣지 못했던 얘기들을 15일 경기가 끝난 뒤 들을 수 있었다. 임찬규는 절실하고, 욕심내서 야구하지 않기로 했다.

"마운드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무조건 안 좋더라. 그래서 최소한만, 가능한 단순해지고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계속 생각이 났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외부요인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목표로 잡으면 자꾸 쫓기더라. 그래서 그냥 공 하나를 내가 원하는 대로 던지기 위해 준비를 많이 했다. 계속 경기 전부터 며칠 동안 매일 (이미지트레이닝) 훈련을 했다. 마운드에서 혹시나 그런(결과에 대한) 생각이 들 때 (떨쳐내고)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지 트레이닝했다. 그런 점들이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아서 다행이다."

또 롱릴리프 경험이 마운드에서 마음을 비우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임찬규는 "결과가 좋아서 도움이 됐다고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작년에 실패했던 것도 올해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트레이닝 하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오늘 규정이닝 못 채운다고 내 생사가 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나. 간절하고 경쟁심이 커지면 욕심이 많아진다. 그러면 더 힘을 쓰게 된다. 그래서 가능한 힘을 빼려고 노력했고 롱릴리프라는 시작 덕분에 힘을 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LG 선발투수 임찬규가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염경엽 감독의 믿음도 임찬규에게 힘이 됐다. 임찬규는 "5월이 컸다. 감독님이 직구 구속에 대해 시속 135㎞가 나와도 100구를 던지게 할 거다. 90개에서 100개를 책임져야 하고 5이닝 이상 던져야 한다고 하셨다. 야구하면서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때부터 새로운 야구가 됐다.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시도를 할 수 있었고, 절실한 마음으로 던진다기 보다 힘을 빼고 던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가 키포인트였다"고 돌아봤다.

임찬규는 지금까지 포스트시즌 선발 등판에서 좋은 결과를 낸 적이 없다. 2021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두산을 상대로 2⅓이닝 4피안타(1홈런) 3실점을 남기고 강판됐다. 호세 페르난데스에게 던진 높은 공이 홈런이 되면서 실점이 늘었다. 2019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키움을 상대로 선발 등판했으나 1이닝 만에 교체됐다. 이때도 홈런이 실점으로 연결됐다. 박병호에게 홈런을 맞는 등 1이닝 2실점에 그친 뒤 교체됐다.

앞으로는 이런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임찬규는 "사실 같은 18.44m에서 던지는 공인데 한국시리즈라고 해서, 아니면 퓨처스리그라고 해서 다른 생각을 하면 정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더라. 한국시리즈 경험은 없지만 가능한 같은 마음으로 던지려고 한다. 내가 긴장을 안 해도 몸은 그렇게 반응할 거다. 정신까지 긴장하면 더 역효과가 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론은 단순하다. 과거를 만회하겠다는 것은 결과에 대한 목표다.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다. 내가 만회해야지, 퀄리티스타트를 해야지, 아니면 5이닝을 던질 거야 이랬을 때 목표가 안 이뤄지고 있으면 마운드에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실패를 반복했다. (이제는)감독님이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 내용 신경 안 쓰고 전력투구하는 게 가장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 임찬규 ⓒ곽혜미 기자
▲ 임찬규 ⓒ곽혜미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티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