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내려간 둘째네를 보며 [서울말고]

한겨레 2023. 10. 1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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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연휴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담백한' 프로그램을 하나 만났다.

채널 '오느른'의 성공이 놀랍고 대견했다.

2018년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후 시골살이는 일부 젊은이들의 로망 중의 하나가 됐다.

냉정하게 말하면, '오느른'의 성공은 물론 젊은 피디의 시골살이에 대한 진정성과 뛰어난 영상미 등이 일차적 원인이겠지만, 그의 놀라운 성취 뒤에는 방송국이라는 거대한 뒷배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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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시골살이 힐링 브이로그 ‘오느른’. 유튜브 영상 갈무리

신현수ㅣ㈔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지난 추석연휴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담백한’ 프로그램을 하나 만났다. 제목은 ‘추석특집 감성 다큐 오느른’.

‘오느른’이 뭐지? ‘오늘은’을 소리 나는 대로 쓴 건가? 검색해 보니, 모 방송국 젊은 여성 피디(PD)가 2020년 전북 김제에 폐가를 구매한 뒤 정착하는 과정을 담은, 이미 구독자수가 수십만명에 달하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이날은 자수, 빵집, 서점 등 김제에서 이미 창업했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개여울’의 가수 정미조의 공연도 나왔다. 유명한 일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도 이 동네를 찾았다고 한다. 그것도 구라모토 쪽에서 먼저 연락해서. 채널 ‘오느른’의 성공이 놀랍고 대견했다.

2018년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후 시골살이는 일부 젊은이들의 로망 중의 하나가 됐다. ‘서울은 만원이다’를 쓴 소설가 이호철 선생은 중앙일보 1969년 10월4일치 칼럼에서 “서울 인구는 드디어 5백만에 육박하고 있는 모양”이라며 걱정과 한탄을 했다. 현재의 눈으로 보면 오백만명 가까운 서울 인구에 대한 선생의 염려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어쨌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이제 ‘과밀’과 ‘포화’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출퇴근 시간대 서울과 수도권 환승역의 풍경은 거의 ‘지옥도’에 가깝다.

그래서 한번쯤 ‘탈주의 로망’을 꿈꾸지만, ‘로망은 말 그대로 로망일 뿐’ 현실을 뛰어넘기는 녹록지 않다. 시골살이를 꿈꿀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고민은 ‘먹고 사는’ 문제일 것이다. 전원생활도 즐기면서 밥도 먹고 살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없다. 시골살이의 열망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정한 벌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옛말에도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어렵다지 않았나. 욕구를 줄이라고도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오느른’의 성공은 물론 젊은 피디의 시골살이에 대한 진정성과 뛰어난 영상미 등이 일차적 원인이겠지만, 그의 놀라운 성취 뒤에는 방송국이라는 거대한 뒷배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엄연히 선망하는 직업 중의 하나인 공중파방송국 피디인 것이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지역이 천국은 아니다. 개발업자들을 비롯한 토호들의 발호는 여전하며, 지역에 사는 분들이 일구월심 젊은이들을 기다리며, 오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성인군자도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말처럼 대한민국도 끊임없이 구별 짓는다. 서울과 지방을, 강남과 강북을, 사는 아파트 이름과 평수로 구별 짓는다. 아이들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고 교육이란 핑계로 학대에 가깝게 닦달한다. 대한민국은 오직 한줄로 줄을 세우고 끊임없이 등수를 매긴다. 1등이 아니면 불행하게 생각하고, 1등이 돼도 거기서 밀려날까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국민이 모두 불행한 나라다. 젊은이들은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고, 결혼한 부부가 출산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산적한 대한민국의 과제를 정치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지만 현재로는 기대 난망이다.

둘째네 부부가 잘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호남지역으로 내려가 산 지 몇달 됐다. 지자체에서 리모델링한 농가를 일년 계약으로 빌려 살고 있다. 살림이 다 들어가지 않아 식탁 등은 마당에 내놓았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다음주에는 ‘한달살이’를 하러 동남아로 떠난다고 한다. ‘앞으로 뭐 먹고 살려고? 아이는 언제 낳으려고?’ 따위의 질문은 당분간 참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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