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 여자친구가 국방 전문가?…12억짜리 용역 몰아준 연구원
'보육교사 출신인 여성이 회사를 세워서 방위사업청 산하 연구소의 10억 원대 연구 용역을 따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성공 스토리는 알고보니 실화였습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 여성의 남자친구가 바로 해당 연구소에서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연구원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방위사업청 산하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자신의 여자친구 이름으로 회사를 세우고 12억 원짜리 외주 용역을 수의계약하게 했다가 적발됐습니다.
■ 여자친구 이름으로 회사 세워 '셀프 용역' 수주?...억대 연봉도 '셀프 지급'
그런데 이 회사, 처음부터 국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페이퍼컴퍼니였습니다. 회사 대표인 국기연 연구원의 여자친구는 보육교사 출신이었는데, 매달 천만 원씩 총 1억 원의 월급도 '셀프 지급'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방위사업청의 '외주용역업체(하도급) 부정행위 조사결과' 보고서에는 국기연 연구원의 이같은 부정 행위가 상세히 기재됐습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은 국방 기술정책과 전략을 연구하고, 무기체계 개조 등을 통해 국방 R&D 체계를 혁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2021년 설립됐습니다. 연간 예산이 1조 원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큰 기관입니다.
이곳에서 무기체계 개조 개발 업무를 맡고 있는 A 연구원은 지난해 7월, 관련 사업을 주관할 업체 2곳을 선정했습니다. 이 업체 2곳에는 총 53억 원의 정부지원금이 지급됐습니다.
이들 업체들은 무기 체계 시뮬레이션 시험을 수행할 외부 업체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사업을 담당하는 A 연구원과 지인인 B 교수, 그리고 A 연구원의 여자친구는 회사를 만들어 '셀프 용역'을 따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A 연구원은 우선 여자친구에게 종잣돈 500만 원을 건네며 회사를 설립하게 했습니다. 실질적인 운영은 A 연구원 본인이 맡았는데, 당연히 무기 체계 시뮬레이션을 할 능력은 없었습니다.
이 회사는 결국 A 연구원이 관리하는 기업들로부터 각각 6억 원짜리 용역을 수의계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A 연구원이 업체 선정부터 계약서 작성에 전부 관여한 결과였습니다. 총 계약 금액 12억 원 중에서 7억 원은 선금으로 지급받았습니다.
이렇게 지급된 나랏돈, 실제로 용역 수행에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는 게 방위사업청의 감사 결과입니다. 회사 대표인 A 연구원의 여자친구는 그 돈으로 2억 1200만 원짜리 오피스텔을 구매했습니다. 자신 앞으로 매달 천 만원의 월급도 지급했는데, 이 월급은 남자친구인 A 연구원과 나눠썼습니다.
감사 결과 이들은 실제 용역 사업을 B 교수가 소속된 부산의 모 국립대 연구실에서 수행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감사 보고서에서 "(해당 업체는) 실질적 연구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수주한 과제는 ○○대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등 명목상 사업장만 유지"했다고 적시했습니다.
■ '청년 채용' 가장해 고용노동부 지원금 480만 원도 챙겨
이들 일당의 '나랏돈 가로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여성 기업이라는 점을 내세워 서류상 직원을 채용한 것처럼 꾸며 고용노동부로부터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 480만 원도 부당 수령했습니다.
완전 범죄가 될 뻔 했던 이들의 행각은 국기연의 사업비 집행내역을 점검하던 외부 회계법인에 의해 꼬리가 잡혔고, 방위사업청의 대대적인 감사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A 연구원은 지난달 해고됐고, 국기연은 이들 일당을 이해충돌 방지법 위반과 사기,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 혐의 등으로 경남경찰청에 고발했습니다.
KBS가 반론을 듣기 위해 직접 통화를 시도한 결과, 해당 연구원은 "딱히 입장을 말씀드릴 것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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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easy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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