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현대아파트에 대한 한국인 코드[EDITOR's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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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재미교포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강남불패, 부동산 투기, 욕망 등 다양한 상징을 갖고 있는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2023년 한국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다뤘습니다.
정계·관계·언론계 특혜분양으로 단번에 고급 아파트의 상징이 된 후 수십 년간 한국 부동산시장을 지배해온 압구정 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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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재미교포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세무조사 한번 받으면 사업을 접거나 감옥에 갈 확률이 높다.”
조세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미국에서는 상식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실제 미국 국세청 산하에 있는 범죄수사국(CID) 직원들은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며, 이들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기면 80% 이상이 처벌을 받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 비율은 30%를 밑도는 것과는 다르지요.
왜 이렇게 다를까. 힌트를 제공한 사람은 문화인류학자 클로테르 라파이유입니다. 그는 “세금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보안관이다”라고 했습니다.
서부개척 시대 돈을 걷어 보안관을 사 공동체를 지키는 것에서 미국인들의 세금에 대한 코드가 형성됐다는 것입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돼 강력한 처벌은 필연적이라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세금에 대한 코드는 무엇일까. “세금 다 내고 어떻게 장사하냐”, “유리지갑인 직장인만 봉이다”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아마도 저변에는 “나라가 해주는 것은 없고, 뜯어만 간다”는 인식이 깔려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세금에 대한 코드는 ‘수탈’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인과 미국인은 돈에 대해서도 다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엄청난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을 존경합니다. 그와 한 끼 식사 자리가 수십억원에 팔릴 정도니까요. 또 창업에 성공하면 다시 창업을 하고, 그 결과 큰돈을 모으면 박수를 받습니다. 미국인들의 돈에 대한 코드는 ‘성취’이기 때문이라고 라파이유는 분석합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부자들이 존경받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부의 축적이 세습이나 편법을 통해 이뤄졌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꼽습니다. 물질만능주의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꺼풀 들여다보면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이후 한국인들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군사독재를 거쳤습니다. 좀 살 만해졌나 싶었더니 외환위기가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고, 검증된 방향으로 향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 방향이 돈이었습니다.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보험’, 이것이 한국인의 돈에 대한 코드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 전 한국인들의 마음에 또 다른 상징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분을 만났습니다. 사업으로 100억원을 벌었다는 40대 그는 “돈을 손에 쥐자 마자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가난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돈을 벌면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살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압구정 현대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거지요.
강남불패, 부동산 투기, 욕망 등 다양한 상징을 갖고 있는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2023년 한국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젊은 친구는 이런 답을 했습니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갖고 싶은 몇 환상을 자극하는 것 중에 하나다.” 이런 환상을 자극하는 것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그 희소성이 선망을 자극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다뤘습니다. 구역별 재건축 진행상황과 향후 전망 등입니다.
정계·관계·언론계 특혜분양으로 단번에 고급 아파트의 상징이 된 후 수십 년간 한국 부동산시장을 지배해온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되는 이 아파트가, 아니 더 넓게는 돈이라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길 기대해 봅니다. 미국에서 부자에 대한 존경이 그가 이룬 성취에 대한 존경인 것처럼 말이지요.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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