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쟁이는 웁니다”…투자중단·구조조정 IT 보릿고개 [비즈니스 포커스]

2023. 10. 1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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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콜라비 팀은 현실적인 벽 앞에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10일 직장인 A씨는 협업 툴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인 콜라비로부터 임시 주주총회를 알리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더 이상 콜라비 운영 자금을 구할 방법이 없어 사업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메일의 요지였다. A씨는 2019년 12월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인 와디즈를 통해 콜라비에 200만원가량(6주)의 자금을 투자했다.

당시 A씨를 비롯해 이 업체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한 소액 투자자들이 콜라비에 모아준 자금은 1억8000만원. 콜라비는 이 브릿지 투자를 통해 30억원의 시리즈A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콜라비는 크라우드펀딩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불렸다.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열풍 속 몸값이 뛰어오르며 조심스럽게 차세대 유니콘 후보로까지 꼽혔다. 그러나 콜라비는 2023년 가을 자금난 앞에서 문을 닫고야 말았다. 


 고금리 직격타, 투자 반토막

벤처·스타트업 업계가 보릿고개를 걷고 있다. 채용 공고는 사라지고 임직원마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문을 닫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 초 투자 혹한기가 불기 직전까지도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 터라 지금의 침체기는 상당한 충격이다.

2023 상반기 스타트업 투자 동향. 자료=스타트업얼라이언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스타트업 총 투자 건수는 584건으로 약 2조3226억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 지난해 상반기(998건)와 비교하면 절반가량 줄어든 셈이다. 1000억원 이상 대규모 투자도 꺾였다. 전년(16건)과 달리 3건에 그쳤다. 10억 미만 투자가 348건으로 시드 투자에만 돈이 몰렸다.

투자 혹한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8월 투자건수는 1년 전 152건에서 102건으로 50건 감소했다. 총 투자금액도 4034억원(44.42%) 줄었다.

2021년까지 업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시장의 자금 유동성이 높아지면서 스타트업에 자금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2022년에 들어서면서부터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규모는 급속히 위축됐다. 특히 2022년 3분기에는 2분기 대비 투자규모가 약 45% 감소하며, 본격적인 스타트업 투자 침체가 시작됐다. 올해 상반기까지도 투자 감소세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추이. 자료=한국은행/네이버


주된 원인은 금리 인상. 특히나 대표적인 성장주인 스타트업은 고금리의 직격타를 맞았다. 저금리 시대에 기업들은 적은 이자로 대출이 가능해 투자, 인수합병(M&A) 등을 진행하기 쉽다. 그만큼 기업의 ‘성장’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투자가 절실한 벤처스타트업 역시 이 시기에 투자 규모를 큰 폭으로 늘렸다. 임금 인플레이션이 화제가 된 시기였다.

반대로 고금리 시대에는 미래를 확신하기 어렵다 보니 성장에 대한 기대 그리고 이에 대한 투자 심리도 약해진다.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의 경영과 투자 활동에 어려움이 따르게 되고, 기대 이익률도 낮아진다.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코로나19 당시 몸집 키운 여파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입을 모았다.

“작년엔 연봉 인플레였어요. 1년 만에 이렇게 뒤집히다니….”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만난 5년차 보안 담당자인 B씨는 업계 상황을 이같이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유례없는 호황에 임직원을 2배가량 늘리며 기업 규모를 키운 B씨의 회사였다. 하지만 1년 만에 업황이 타격을 입자 B씨는 희망퇴직 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개발자는 물론 비개발직군에도 예외 없는 레드카드였다.

올초부터 왓챠, 샌드박스네트워크, 패스트파이브 등 예비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후보군으로 평가받던 굵직한 스타트업들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회사 매각 등 구조조정을 진행했으며 투자 난항에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멀티채널네트워크(MCN) 기업인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지속된 적자에 조직 효율화를 위한 사업·인력 조정을 진행했다.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인 패스트파이브는 비핵심 사업 부문 직원들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설이 수면 위로 부상했던 타다도 구조조정에 돌입했으며 피큐레잇도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행 스타트업인 여기어때가 2020년 인수한 맛집 평가 앱인 망고플레이트도 최근 서비스 종료를 알렸다. 11년간 450만 이상의 사용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서비스로, 여기어때는 망고플레이트를 인수하며 시너지 효과를 노렸지만 서비스 가치와 확장성을 고민한 끝에 사업을 종료했다. 
 
이밖에 로톡(로앤컴퍼니), 뱅크샐러드, 그린랩스, 메쉬코리아 등 예비 유니콘들도 희망퇴직 및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인 클래스101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지난 8월 21일엔 클래스101이 임대료와 관리비조차 내지 못해 위워크코리아 측으로부터 내용증명 서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클래스101 측은 위워크와의 법적 분쟁으로 발생한 상황이라며, 자금난 부족으로 임대료를 미지급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클래스101은 지난 4월과 5월 전체 직원의 10%를 감축하면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진행한 상태다. 

지난 8월 21일엔 클래스101이 임대료와 관리비조차 내지 못해 위워크코리아 측으로부터 내용증명 서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위워크가 클래스101 측에 보낸 내용증명. 자료=온라인커뮤니티


더 큰 충격은 헤비급 기업들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숙박 플랫폼 기업인 야놀자는 최근 전 직원에게 희망퇴직 안내메일을 보냈다. 4개월치 급여 일시금 또는 유급휴가 3개월을 주는 조건이다. 야놀자 측은 9월 18일 사내 메일을 통해 “야놀자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선 외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조직 구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야놀자는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 284억원을 내면서 적자 전환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인 타파스 코리아도 사업 청산으로 인한 직원 전원 해고에 들어갔으며 네이버 북미 자회사인 왓패드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권고사직이 벌어졌다.

‘억대 연봉’으로 모시기 경쟁이 불었던 개발자들의 상황도 좋지 못하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프리랜서 개발자들도 놀고 있는 사람이 많아 프로젝트 수주 경쟁이 치열하다”며 “1년 넘게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몇 달째 무급으로 쉬는 개발자들이 지천에 깔렸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IT 스타트업에서 근무 중인 C씨는 “2개월째 월급이 밀렸다”며 “회사에서는 보릿고개만 지나면 괜찮을 것이라고 해 납작 엎드려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당시 공격적인 경쟁이 제살 깎아먹기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C씨는 “경쟁적으로 임금을 올린 건 결국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결과를 가져왔다”며 “개발자 연봉 1억원은 흔해졌는데 일자리는 없는 기이한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 리턴에서 찾는 기회 

전문가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미국과 글로벌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으로서는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이 많다.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글로벌 공급망 붕괴, 시장 불확실성 증대, 경기 침체 장기화 가능성 등 복합적인 요인이 혼재되어 스타트업 투자 침체기를 해결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의 자구책은 M&A다. 지난 7월엔 샐러드 배송 스타트업인 프레시코드가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법인 설립 5년 차인 2021년 회원수 20만명을 돌파했고, 샐러드 단일 상품 판매량 200만개를 기록하는 등 성장세를 보였지만 투자유치가 난항을 겪으면서 쌓이는 적자를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회원수 20만명에 대한 정보는 이 회사의 자산이다. 지난 8월엔 이 회사가 보유한 상표, 특허, 디자인 등 IP에 대한 권리를 온라인 홈트레이닝 플랫폼을 운영하는 엔라이즈가 인수했다. 커머스 영역에서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 같은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투자 혹한기가 지속된다면 외부 자금 수혈이 어려운 기업들이 매각이나 폐업을 고려하게 되는 상황이 많아질 것이고, 이때 M&A를 통한 엑시트(투자자금회수)는 생태계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방안이라는 조언이다.

송명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리서치실장은 “경쟁력은 있지만 경기에 따른 어려움으로 인해 사업을 접어야만 하는 스타트업이 폐업하는 것보다는 M&A를 통해 낮은 가격에라도 다른 기업에 인수되어 우수한 인력과 기술, 자금, 비즈니스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고 다른 기업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것이 국가경제적으로도 긍정적인 일”이라며 “인수기업은 지금 같은 시기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전략적 동반자를 찾을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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