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100년 된 은행나무 거리… 日 시민들은 지켜낼 수 있을까 [심층기획-환경영향평가 2.0]
日 메이지신궁 외원 재개발 추진 논란
개발계획 도쿄도 승인 뒤늦게 알려져
주민·유명 문화인 등 각계 거센 반발
9월 예정 은행나무 벌채 일단 ‘스톱’
큰 틀서 설계 확정 뒤 환경영향평가
최종 인허가 직전에야 입지 등 알려져
한·일, 개발사업 때마다 반복… 갈등초래
“사전단계부터 주민 참여 필요” 지적 끝>
누가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해 주세요
미래 도시가 하늘을 막아서게 해도 되겠습니까
…
언제나, 언제나 생각했지만
저는 모르는 사이에 결정돼 있었어요
이제 사람들에게 알려주세요
바보여서 미안합니다만, 이 메시지를 퍼뜨립시다
나는 여기가 좋거든요”
지난 5일 찾은 메이지신궁 외원에는 하늘 높이 솟은 은행나무가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100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며 일본 근대사를 목격해온 은행나무 거리는 야구부 학생들이 달리기를 하고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주민에게 친숙한 공간이다.
평화롭던 외원이 도쿄도민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쯤이다. 한 부동산 개발업체가 외원을 재개발할 계획이며 도쿄도가 최종 승인 절차를 마쳤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3월 사망한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에게 편지를 쓰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나 사잔올스타즈 같은 유명 문화인들이 반대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때도 이쯤이다.
외원에는 산책로 외에 야구장, 럭비장, 미술관 등 여러 시설물이 있는데 개발업체와 도쿄도는 기존 경기장을 허물고 규모를 키워 새로 지을 계획이다. 사업조감도에 따르면 외원 내 녹지 면적은 늘어난다고 안내돼 있지만 은행나무 일부는 벌채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온 뒤 기존 계획대로 개발사업을 진행하려는 사업자 및 도쿄도와 외원을 현재 상태로 유지하고 싶은 주민 사이 뒤늦은 논란이 불붙고 있다. 2013년부터 사업계획을 만든 도쿄도와 사업자는 현행 법적 절차를 모두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하는 주민들은 사전에 이런 사업계획을 알지 못했다며, 아직 착공하지 않았으니 기존 경기장을 내부 보수만 하는 등 대안을 고려하자고 주장한다.
일본환경영향평가학회장을 지낸 다나카 미쓰루 호세이대 교수는 “친숙한 공간이고 역사·문화적 의미도 있는 외원을 그대로 두고 싶은 주민과 이곳을 개발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도지사, 개발업체, 토지소유자 간 입장 차이가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라고 평했다.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온 뒤 해당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점화되는 양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구조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광역자원회수시설(소각장)이나 제주 제2공항, 설악산 케이블카 역시 환경영향평가 또는 전략환경영향평가(사업 이전 계획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결정이 나온 뒤 사업을 두고 찬반 논란이 거세졌다.
2015년 건설계획이 처음 발표된 제주 제2공항은 여전히 건설 필요성과 도민 동의를 놓고 반대가 지속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 3월 전략환경영향평가 동의 결정을 내리며 국토교통부는 연내 기본계획을 고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제2공항은 당사자인 제주도민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고시에 반대했다. 환경부는 집단 민원이 발생하는 환경 갈등이 있는 경우 이를 중점평가사업으로 지정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정작 제주도의 지정 요청은 거부했다.
‘환경파괴가 문제인가, 그저 개발에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은 입지 선정과 예산 배분이 모두 끝난 뒤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평가 구조상 한국과 일본에서 반복돼 왔다. 환경영향평가 단계에 들어서야 주민의견을 수렴하면서 이 과정에서 나오는 ‘사업을 중지하라’는 주장에 “사실상 환경파괴가 문제가 아니다”라는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도쿄 메이지신궁 외원 재개발 문제를 놓고 일본 전문가들은 주민참여가 더 빨리 시작됐다면 논란이 줄어들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국제영향평가학회(IAIA)장을 역임한 하라시나 사치히코 지바상과대학 총장은 “전문가나 일반 도민 모두 사업구상이 끝난 뒤 뒤늦게 이 사업을 알았다”며 “정보공개 단계를 앞당기고 설계가 끝난 뒤가 아닌 여러 대안을 비교해 제일 좋은 설계안을 찾아낼 수 있을 때부터 주민이 참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나카 교수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주민 의견에 법적으로 해야 할 답변을 제출하는 형식적 참여가 보장됐다고 생각하나 주민 입장에서는 이런 답변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다”며 “양측 입장이 다른 탓”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의 규모가 정해진 다음이 아닌 더 빠르게, 입지 선정 단계에서 주민과의 논의를 진행해야 더 좋다”고 덧붙였다. 즉 현재처럼 큰 틀에서 설계가 확정된 뒤가 아닌, 사업타당성을 검토할 때부터 주민참여가 이뤄진다면 향후 논란이 생길 여지를 훨씬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외원 재개발사업은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토대로 도지사가 어떤 정책 판단을 내릴지가 남았다. 주민 반대가 이어지자 지난달로 예정됐던 은행나무 벌채는 내년 1월로 미뤄졌다. 환경을 말하는 사람들은 뒤늦게 환경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되게, 환경영향을 최소화할 대안을 더 일찍부터 함께 고민해 보자고 요구한다. ‘외원 보호’를 외치는 이들은 결국 시민의 힘을 믿고 있다. 아무리 환경영향평가를 과학적으로 진행하고 사업의 경제적 수익성이 뛰어나더라도 시민이 납득할 만한 논의·결정 과정의 민주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자체 혹은 정부의 정책 결정이 지지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라시나 교수는 “과거 일본에서 엑스포 입지가 바뀌는 등 주민참여로 사업이 바뀐 전례가 있다”며 “이번 외원 재개발도 정보가 불투명했고 민주적 논의가 확보되지 않아 내년 선거를 앞둔 도쿄도지사가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쓰모토 교수는 ODA 사업에 적용하는 ‘FPIC(Free·Prior·Informed·Consent)’이란 개념을 환경영향평가 운영 시 민주성을 제고하기 위해 적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자유롭게,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합의를 조정해 간다는 뜻이다. 환경영향평가 내에서의 절차뿐 아니라 이전 사업계획 논의와 이후 최종 인허가까지 의사결정 과정 전반에서 합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마쓰모토 교수는 “일본 외원 재개발은 자유로운 논의는 가능해도 사전 단계에서 투명하게 정보를 줘서 잘 합의했는지는 의문이라 ‘F’만 달성했다”며 “한국도 아직 F만 보장되고 ‘C’가 합의가 아닌 협의(consultation)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발전하려면 정책 결정자가 제도를 잘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나 이럴 수 있는 사람을 선거로 선출할 수 있는 시민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글·사진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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