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해야할 일” vs “일방적 추진”… 의대 정원 파격확대 가능할까

이정우 2023. 10. 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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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노인인구 1900만명 ‘폭증’
의사 2만2000명 추가 필요 분석
지방 소아·응급의학과 등 인력난
‘응급실 뺑뺑이’ 해결책으로 제시
2025학년 대입부터 적용 검토
의협 “일방적 추진… 강력 투쟁”
대통령실 “국민 위해 할 수 밖에”

정부가 의대 정원을 파격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조만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줄었던 351명(10%)만큼 늘리는 방안, 국립대 중심으로 521명을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됐지만, 확대 폭이 1000명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의사 단체는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 없는 일방적 추진이라며 반발을 예고하고 있어 추진 과정에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1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이르면 이달 중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저녁으로 예고됐던 비공개 고위당정협의회 안건으로도 준비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안의 윤곽이 이미 잡힌 것으로, 발표 시점을 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번 주에 발표할지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000명 파격 확대, 가능할까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의 확대에 나서는 것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급증 전망과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 우려 등에 따른 것이다.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다. 통계나 인구를 고려하면 충분한 숫자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 치과의사 제외)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자료를 제출한 30개 회원국 중 멕시코(2.5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의료 수요는 앞으로 더 많아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961만명인데, 의료기술 발달 및 기대수명 연장 등으로 2050년엔 약 19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50년까지 2만2000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소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높은 수익 탓에 매년 대입에서 ‘의대 쏠림’ 현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필수의료 인력은 수입이 적고 일은 고되다는 이유로 지원을 꺼리고 있다. 통계청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의사의 연평균 임금은 2억3070만원으로 국내 임금근로자 평균 연봉(3997만원)의 6배에 가깝다. 지방 의료인력 부족 문제도 해마다 거론되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몇몇 지방병원은 필수의료 인력을 구하기 위해 수억원의 연봉을 내걸어도 지원자를 찾기가 어렵다. 환자를 태운 채 치료할 병원을 찾아다니는 ‘응급실 뺑뺑이’로 안타깝게 숨지는 사고도 적잖게 발생한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의대 정원 확대 규모는 351명, 521명 등이 거론된다. 의대 정원 확대 찬성 여론 등에 힘입어 1000명 이상 파격적으로 늘리는 방안이 채택될 수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과)는 “다른 나라에서도 고령화에 맞춰 의료 자원을 늘리는 상황인데 우리나라는 20년 가까이 외재적인 요인 때문에 하지 못했다”며 “지금 여기저기서 의사 부족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1000명 이상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계적인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주열 남서울대 교수(보건행정학과)는 “우선 300∼500명 정도를 확대한 뒤 5년 단위로 보건의료 인력에 대한 수급을 추계해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사들 “단체 행동” vs 정부 “그래도 해야 할 일”

의사 단체는 정부의 이번 의대 정원 확대가 일방적인 추진이라며 강력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의사 단체는 그간 단순히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공공의대 신설’ 촉구하는 경실련 정부가 2025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현수막을 들고 윤석열정부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정원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다음 달 초 진행되는 15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부터 의대 정원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최근까지도 의대 정원 발표에 대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에게 들은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의료계는 2020년 9·4 의정합의에 따라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 필수의료와 의대 정원 문제 등을 현재까지 14차례 진행했다. 이 회장은 “일방적으로 발표한다면 신뢰를 깨뜨리는 일”이라며 “의사와 의대생, 전공의 반발이 2020년보다 더 심하다. 단체 행동이나 자퇴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2020년 문재인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자 의사들은 총파업을 벌였고, 일부 의대생은 국가고시를 거부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금처럼 OECD 회원국 중 가장 적은 수의 의사가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시스템으로는 국민 불편이 초래된다”며 “특히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데 환자의 진료받을 권리 보장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협 등이 반대 투쟁을 하더라도) 개혁은 국민을 생각하면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정우·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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