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배우 홍사빈의 길에 '화란'이 꼭 필요했던 이유
그동안 홍사빈을 눈여겨본 사람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배우 홍사빈'을 주목해야 한다. 영화 '화란' 속 홍사빈은 그 존재를 관객들에게 단숨에 각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고 인상 깊다. 가뭄 아닌 가뭄 속 20대 배우의 귀한 '발견'이다.
홍사빈은 갑자기 나타난 스타가 아니다. 호평받은 단편작 '휴가' '폭염'을 포함해 1백여 편의 독립 장·단편에 출연하며 차곡차곡 자신만의 내공을 착실하게 쌓아 올렸다. 오디션에 도전해 '화란'에 합류하게 된 그는 기쁨과 슬픔, 왠지 모를 막막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눈물을 흘렸다. 잘 해낼 수 있을지 등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 속에 시작했지만, 1백여 편을 찍은 시간은 고스란히 홍사빈 안에 녹아 있었다. 그는 깊고도 섬세하게 연규라는 인물을 그려냈고, '화란'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눈길을 뗄 수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렇게 홍사빈은 연규처럼 그동안 몸담았던 세계를 넘어 더 큰 세계를 향해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그에게 있어 '화란'과 연규는 또 다른 시작점이었다. 홍사빈은 말했다. "'화란'은 배우로서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겠다는 많은 위로를 받은 작품이자 배우로서 흐렸던 미래, 안개처럼 불투명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걷어준 영화"라고 말이다.
홍사빈의 세계를 넓힌 '화란'과 연규 그리고 칸
홍사빈은 첫 장편 영화 '화란'이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공식 초청받으며 전 세계 영화인이 꿈꾸는 무대인 칸을 밟았다. 기쁨을 온전히 만끽할 정신도 없었다. 그는 "단 하루도 못 즐겼다"고 했다. 긴장도 긴장이지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홍사빈은 "난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닌데 갑자기 벼락 맞은 느낌이었다. 다양한 행사가 굉장히 많았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칸에 간 게 배우로서 너무 귀중하고 또 가고 싶은 건 있는데, 지금 한국에서 인터뷰하는 게 훨씬 편한 거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정신없이 보냈지만, 칸에서의 경험은 아직 '신인'이란 위치에 있는 홍사빈에게 값진 경험을 안겨줬다. 그는 "시선의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었다"며 "나라마다 관심 있는 이슈도 다르고, 주안점을 두는 부분도 다른데, 다양한 시선을 볼 수 있게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칸을 통해 더 넓은 세상과 시야를 만날 수 있게 해준 '화란'은 홍사빈이 연기해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관객 입장에서도 그가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그만큼 연규라는 캐릭터와 그의 성장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홍사빈은 "연규라는 캐릭터는 내 또래 남자배우라면 너무나 하고 싶어 할 만큼 홀로 성장하는 아이 이야기다. 나 역시도 당연히 이 캐릭터에 매료됐다"며 "또 영화라는 작업이 나이마다 얼굴을 남기고, 그렇게 해서 인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개인으로서도 지켜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화란'이란 영화가 있으면 배우로서 너무 좋을 거라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화란' 속 연규는 대사보다 표정과 몸짓 등으로 자신의 언어를 대신하는 인물이다. 그런 만큼 연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석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했다. 이를 바탕으로 혼자 셀프 비디오를 찍거나 지금까지 출연한 장·단편 영화를 보면서 그 속에 어떤 얼굴이 있는지, '화란'에서 자신이 연기할 장면들에서 연규의 얼굴이 어떻게 보이면 좋을지 생각하며 연습했다.
홍사빈은 "내가 생각한 연규는 화란에 가고 싶은데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 본인 스스로도 해답을 못 찾은 아이다. 그래서 여러 사건이나 일에 휘말리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연규는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봤기에 나쁜 아이로 비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연규를 따라가는 이야기이기에 연규가 반감을 사게 되면 관객도 연규를 보면서 피로감을 느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그런 면에서도 연기적으로 표현하는 게 많아질수록 해석의 여지가 많이 생기니 꾹꾹 눌러 담았다"고 설명했다.
홍사빈을 빛나게 해 준 배우들
자신만의 해석과 함께 찾은 현장에서 연규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건 송중기를 비롯한 선배 배우들이다.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조직의 보스 치건(송중기)처럼, 현장에서의 송중기 역시 홍사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베테랑 배우 송중기의 배려 속에서 홍사빈은 캐릭터를 보다 더 생생하게 확장할 수 있었다.
홍사빈은 "영화 안에서 치건이란 캐릭터를 만났을 때는 굉장히 많이 놀랐다. 영화적으로 생각했던 범주와 다른 치건의 모습을 서늘하게 잘 표현해 주셨다"며 "현장에서 상상했던 대로 되는 일보다 상상했던 대로 안 되는 일이 배우로서 더 귀중하다고 느끼는데, 그런 현장의 순간을 많이 만들어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완구(홍서백)의 오토바이를 다시 되돌려 놓은 후 치건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송중기는 매 테이크 다른 치건의 모습을 선보이며 홍사빈에게 매번 다른 자극을 줬다.
홍사빈은 "송중기 선배님뿐 아니라 김종수, 정만식 선배님 등 모두가 내가 어디서 이런 기회를 받나 싶을 정도로 너무 편하게 대해주셔서 부담감 등 짐을 다 덜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금이라도 내가 빛이 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과 괴로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선배님들과 하다 보면 제가 굳이 빛나야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선배님들께서 제 주변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주시면 제가 남은 빛을 받아서 빛나면 되는 영화였다는 걸 끝나고 나서야 많이 알았어요. 굳이 뭘 안 해도 된다고, 원하는 게 있으면 편하게 하면 된다고 해주셨죠. 그런 배우로서의 태도도 저한테 너무나 많은 귀감이 됐어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다른 배우들에게 저 역시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선배 배우뿐 아니라 첫 연기 도전에 나선 가수 겸 배우 김형서(비비)에게서는 또 다른 배움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홍사빈은 "배우들과 대화하다 보면 오히려 배우라는 틀 안에서 대화할 때가 있는데, 형서 배우와는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 오고갈 수 있어서 좀 더 생생한 남매 관계를 담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김형서를 두고 홍사빈은 '아티스트'라고 표현하며, 역시나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현장에서의 모든 만남과 모든 순간이 그에겐 '배움'이었다.
배우 홍사빈의 '화란'
스크린 속 홍사빈을 보면 '배우 홍사빈'이 아닌 다른 홍사빈은 떠올릴 수 없다. 그런 홍사빈을 두고 그의 친구들은 '내가 알던 홍사빈이 맞냐?'고 이야기할 정도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배우라는 꿈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배우의 꿈은 나 혼자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더 소중해진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홍사빈이 배우가 되고자 했던 건 거창하거나 큰 이유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그는 소설 '빨간머리 앤'을 언급하며 "'어떤 꿈이 구체적인 목표나 희망이 있을 필요는 없지. 막연히 생기기도 하는 거니까'라는 문구가 있다. 그걸 보며 힘을 얻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연기를 하게 된) 이유가 매일매일 바뀌기도 한다. 언젠가 꼭 구체적인 이유를 만들어 보겠다"고 웃었다.
어떻게 보면 막연하게 발 들인 배우로서의 길이지만, 허투루 걸어오진 않았다.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을 때, 남들보다 몰랐고 부족했기에 더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재밌어졌다. 그는 "내가 진짜 하고 싶다면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오디션 사이트에도 2천 개가 넘는 메일을 보냈다. 밤새워 기다려 대사 한마디만 하고 온 적도 있다. 홍사빈은 "나한테는 소중하고 의미가 컸다"며 "그런 훈련이 있었기에 지금 내 연기를 조금이나마 좋게 봐주실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극중 연규에게 화란(和蘭·네덜란드의 음역어)이 그랬던 것처럼, 홍사빈에게도 어려운 순간에 희망이 되어준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일초의 고민도 없이 '화란'을 완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감독과 배우, 스태프, 제작사 관계자들이라고 답했다.
"촬영하면서 혼자 속상해서 숙소에서 많이 울기도 했어요. 저한테 '화란' 같은 존재는 사실 이 영화의 제작사, 스태프, 배우들이에요. 본인의 남동생인 것처럼 잘 대해주셨어요. '어떻게 저런 마음을 갖고 날 도와주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움을 많이 받았죠. 또 이분들과 찍고 싶은 게 '화란'인 거 같아요."(웃음)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N:터뷰]'거미집' 김지운 감독 "영화적 자존심 지켰다"
- [EN:터뷰]개척자 강제규 "韓영화 미래, 관객 마음 훔치기"
- [EN:터뷰]"'1947 보스톤' 성패, 임시완에 달렸다고 했죠"
- [EN:터뷰]'1947 보스톤' 강제규 "영화보다 더한 역사, 되레 덜어냈다"
- [EN:터뷰]강동원 "'천박사'는 현대판 전우치…호러 가장한 액션"
- [EN:터뷰]송강호 "연기요? 늘 '정답 아닌 정답' 찾고 있죠"
- [EN:터뷰]"코로나 이후 영화요? 시대 고민 담은 생필품이죠"
- [EN:터뷰]봉준호 겪은 김태완 대표가 본 '봉준호 키드' 유재선
- [EN:터뷰]'잠' 제작자 "정유미 이선균 아니면 누가 연기하랴"
- [EN:터뷰]사부 '봉테일'에게 유재선 감독이 배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