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제·환경 두마리 토끼 잡는 게 칠레의 리튬 전략”
칠레 와인은 한국서, 韓 자동차는 칠레서 인기
칠레, 리튬 매장 세계 1위, 생산은 2위
길게 뻗은 국토가 에너지·관광 경쟁력 원천
한국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는 우리와 퍽 먼 나라다. 직항 항공편도 아직 없어서 비행기를 이용해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26시간이 걸린다. 시간도 정반대다. 서울이 오전 9시일 때.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밤 9시다.
하지만 경제 분야로 좁히면 칠레는 한국과 꽤 가까운 나라다. 2003년 2월 체결, 2004년 4월 발효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양국 간의 거리를 좁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칠레산 와인과 삼겹살은 한국 식생활의 일부가 됐고, 질주하는 한국산 자동차는 칠레 거리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칠레산 와인은 수년째 수입물량 면에서 1위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칠레가 전 세계 와인 생산과 수출에서 각각 6위, 5위에 머물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과 FTA 체결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볼 수 있겠다.
현대차그룹은 칠레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다(2023년 8월 기준). 브랜드별로 보면 현대차는 도요타와 제너럴모터스에 뒤진 3위지만, 5위 기아차를 합치면 월간 약 2만5000대의 판매대수로 도요타(1만7857대)를 훌쩍 넘어선다.
칠레 인구는 약 2000만 명으로 큰 시장이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칠레는 최근들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리튬 때문이다.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은 거의 모든 종류의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원자재로, 최근 전기자동차가 인기를 얻으며 덩달아 몸값이 높아졌다. 미국지질조사국(USGC)에 따르면 칠레는 리튬 매장량 세계 1위, 생산량은 2위다.
최근 한국에 다녀간 니콜라스 그라우(Nicolas Grau) 칠레 경제개발관광부 장관은 “칠레가 리튬으로 인해 역사적인 기회를 잡았다”고 했다. 한-칠레 FTA 서명 20주년 기념 행사 참가를 위해 한국에 온 그라우 장관을 12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독점 인터뷰했다.
1983년생으로 올해 40세인 그라우 장관은 국립 칠레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3월 1일 경제개발관광부 장관에 취임했다.
─올해가 한-칠레 FTA 체결 20주년이다. 그간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한-칠레 FTA는 칠레가 아시아 시장에, 한국이 중남미 시장에 진출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국과 FTA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아시아 국가와 첫 FTA였기 때문이다. FTA로 양국 간 경제, 무역 협력이 공고해졌다. 이제 한국은 칠레의 5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지난해 한국과 무역액은 79억9300만 달러(약 10조8170억원)였다. 칠레의 한국 수출액은 60억5400만 달러, 수입액은 19억3800만 달러였다. 2004년에 칠레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품목 수는 193개였는데, 2020년에는 331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는 칠레 기업 수는 354개에서 576개로 늘었다. 우리는 한국에 더 다양한 품목을 수출하길 원한다. 줄 수 있는 게 많다.”
─20년 전과 비교해 양국의 경제 상황 등 달라진 점도 많다.
“한국과 교역의 중요성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반면에 달라진 것도 있다. 한국이나 칠레나 20년 전과 지금의 경제 수준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와 무역 상황이 바뀌면 FTA도 진화해야 한다. 한-칠레 FTA도 현 경제 상황과 환경, 중소기업, 양성평등, 디지털 경제, 글로벌 공급망 등의 상황 변화를 반영해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7번의 협상이 있었는데,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에 산티아고에서 있었다. 칠레 정부는 이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 한-칠레 FTA가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유지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칠레는 한국과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도 더 협력하기 원한다. 한국이 최근 DEPA에 가입하면서 기반이 마련됐다.”
2021년 1월 발효한 DEPA는 싱가포르, 칠레, 뉴질랜드 3국이 체결한 세계 최초 다자간 디지털통상협정이다. 회원국 간 디지털 통상규범 확립과 협력 강화가 목적이다. 한국은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를 계기로 DEPA 3개국 통상 장·차관과 함께 한국의 DEPA 가입협상 실질타결을 선언했다. 정부는 DEPA의 연내 발효를 목표로 국내 절차 및 남은 가입절차를 추진한다. 앞으로 회원국이 확장되면 DEPA의 혜택 범위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중국과 캐나다도 가입 절차를 진행하고 있고 코스타리카, 중남미, 중동 국가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리튬 강국인 칠레의 위상도 높아졌다.
“리튬으로 인해 칠레는 역사적인 기회를 잡았다. 세계적으로 리튬 수요가 높아졌고 가격도 상승했다. 칠레 경제 성장과 세계 경제의 녹색 성장을 연결시키는 것도 리튬 국가 정책의 중요한 목표다.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이 리튬 국가 정책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리튬 전략의 핵심은 뭔가.
칠레의 리튬 산업은 생산 전 과정에서 정부 주도로 개발하면서 민간 부문이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환경적으로 높은 기준을 유지하고 투명성과 공정한 경쟁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초기에는 칠레 국영 광업 기업이자 세계 최대 구리 생산 기업 중 하나인 코델코(Codelco)와 칠레광물공사(Enami)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리튬 생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면 안 된다는 게 칠레 정부의 입장이다. 올해 연말에 환경보호 대상으로 지정할 염호(소금평원)와 개발 가능한 염호의 리스트를 발표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현재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탄산리튬을 가공해 만든 수산화리튬으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탄산리튬 수입량 대부분을 칠레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앞서 칠레 리튬 생산업체 SQM은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과 리튬 장기 구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칠레 정부가 청정에너지 개발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칠레는 국토 전역에 걸쳐 잠재력이 매우 크다. 아타카마 사막의 태양광 발전과 최남단 파타고니아 지역의 풍력발전이 대표적이다.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관련 규제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재생에너지와 탈(脫)탄소 관련 분야는 언젠가 지금의 광물자원 만큼이나 칠레 경제에 중요해질 것이다.”
칠레의 재생에너지 경쟁력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토에서 나온다. 북부 지역에는 높은 일조량을 통한 태양광이, 남극에 가까운 남부 지역에는 풍력 자원이 풍부하다. 칠레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2050년까지 전력 생산 분야에서 넷제로(Net-Zero, 탄소의 실질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 달성 목표를 세웠다. 신재생 에너지 사용 비율은 2030년까지 80%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경제개발에 관광까지 담당하고 있다. 칠레 관광의 매력 소개 부탁한다.
“다양한 자연 환경을 한 나라 안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다. 북쪽에 고원과 사막이 있고, 도시와 해변, 계곡과 호수, 강, 화산, 파타고니아와 남극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뽐낸다. 와이너리 투어는 칠레가 자랑하는 와인은 물론 역사와 정체성, 고유 음식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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