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아름다운 마침표를 모욕한 이복현

김병수 2023. 10.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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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김병수 기자] 지난 2004년 8월 25일. 국민은행에 거대한 태풍이 불어닥쳤다. 증권선물위원회가 당시 김정태(2014년 1월 2일 별세) 행장에게 '은행이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중징계 처분을 했다. 김 행장의 임기는 그해 10월 30일. 금융인이 중징계를 받으면 금융회사에 취업할 수 없다. 그렇게 김 행장은 금융권에서 퇴출당했다.

이 징계안은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당시는 2002년부터 시작된 일명 카드 대란으로 카드사들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신용카드사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락하면서, 영업 재원인 카드채 금리가 폭등했다. 카드사의 조달 금리가 뛰니 카드사들은 배겨 낼 재간이 없다.

신용카드업 겸업 라이선스를 가진 은행들이 계열 카드사를 흡수·합병(2003년 9월 30일)한 이유다. 은행의 신용등급으로 카드업의 영업 재원인 채권을 발행하거나, 은행의 예금을 영업에 활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 과정에서 국민카드의 손실을 은행이 승계하면서 회계처리기준을 어겼다는 게 감독 당국의 제재 근거였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국민은행이 전년도(2002년)에 158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게 쌓았다는 혐의까지 더했다. 그렇게 2개 혐의를 합쳐 금감위는 김 행장을 금융권에서 내쫓았다. 대형 금융회사에서 회계처리기준 위반 일명 분식은 매우 드문 사례다. 신용을 먹고 사는 금융회사는 평판 훼손을 매우 중시한다.

현재까지도 대형 은행의 분식 징계는 한 손으로 꼽을 만큼밖에 없다. 이런 대형 은행이 징계받을 위험을 감수하고 분식을 감행했다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금융인들이 많았다. 그렇게 김 행장과 당시 재무 담당 윤종규 부행장은 국민은행을 떠났다.

지난한 송사가 시작됐다. 윤종규 씨는 자신의 친정이나 다름없는 삼일회계법인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분식 주동자로 송사 중인 인물을 회계법인도 받을 수 없다. 그렇게 6년 동안 떠돌았다. 윤종규 씨가 대법원에서 당시 감독 당국의 징계와 관련해 최종 무죄를 받은 건 2015년. 무려 10년 만이다.

윤종규 씨는 금융회사 취업 제한이 풀린 후 2010년 어윤대 회장 때 KB금융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KB금융은 혼돈의 시기였다. 금융업계에 만연한 관치의 그림자가 KB금융을 집어삼켰다. 관료 출신들과 정치권에 연이 닿는 사람들이 KB금융을 지배하면서 그들만의 권력 투쟁으로 무너져 갔다. 윤 부사장은 4년 만에 다시 짐을 쌌다.

KB금융 이사회가 4대 회장(2014년)으로 윤 전 부사장을 추천하면서 수습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3연임. KB를 리딩금융그룹으로 안착시키고 아름다운 마침표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지난 5일 갑자기 현 정권의 실세라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곱지 않은 발언이 튀어나왔다.

요약하면 이렇다. ①회장 후보를 정해놓고 평가 기준과 방식을 정했다 ②이런(어떠한)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CEO(최고경영자)경쟁에 참여하게 하고 싶다는 걸 먼저 정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공정과 정의의 시대에 맞춰 법률 지식에 밝은 CEO를 모실 예정이니 지원하십시오'라는 공고라도 해야 하는가?

감독 당국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 보니, 더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 5월 9일 롱 리스트 20명을 선정한 후, 7월 20일에 회장 추천위원회 운영안을 개정했다는 것이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의 회장 자리에 명함을 내볼만한 사람이 그리 많은가? 20명이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출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가 아닐까?

무엇보다 당시 개정 사항은 외부 후보들에게도 자신의 비전을 충분히 제시하도록 3주 앞당겨 검증 시간을 확보한 것인데. 8월 8일 1차 쇼트 리스트 6명, 8월 29일 2차 쇼트 리스트 3명을 선정한 후에도 외부 출신에겐 면접 기회를 2번 주는 파격적인 방법도 선택했는데.

운영안 개정(룰)의 내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형식 요건만 따져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 감독 당국의 일 처리 지침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금융 CEO 선임 과정은 부침이 심했다. 정치권과 정부 관료들의 집요한 개입에 흔들린 적이 더 많았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김정태 행장이 퇴출당하고 윤종규 부행장이 국민은행을 떠난 10년 동안 KB금융과 국민은행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이 정도로 안정적인 권력 교체를 보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윤종규 회장의 퇴임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이 원장은 금융산업의 관리자로서 실질을 보지 않고 규정집 자구(字句)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렇게 윤 회장의 9년을 모욕했다.

/김병수 기자(bs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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