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만으로 설명이 부족한 김동률의 '투혼의 열창'

김고금평 에디터 2023. 10. 16.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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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의 열화일기] <리뷰> 7~15일 6만 관객 앞에 선 '고독한 예술가'의 짜릿해서 더 슬픈 무대
마지막 곡 '기억의 습작'에서 김동률이 한줄기 조명을 받으며 마지막 가사 '~그 꿈들 속으로'를 열창하며 마무리짓는 장면. /사진제공=뮤직팜


어쩌면, 우리는 4년 전에도 그랬듯 지금 이 순간 마음 졸이며 첫 곡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어떤 곡이 나올까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우리 심장을 또 얼마나 쥐고 흔들까에 대한 울컥거림 때문이다.

역시 그때 그랬듯, 점강법으로 치고 올라오는 멜로디와 귓가에 내리치는 가사 한 줌에 금세 훌쩍거리며 눈물샘이 터질 것이다. 듣는 내내 이어지는 그 짜릿한 전율과 숨 막히는 가창을 또 어떻게 견디고 버텨낼까. 그의 무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아직 변하지 않았고, 변할 수도 없다.

4년마다 한 번씩 무대를 열어 '월드컵 가수'라는 농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뮤지션 김동률이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송파구 KSPO DOME에서 6만 관객 앞에 섰을 때, 관객은 반사적으로 전율의 극한에서 느낄 어떤 슬픈 그림을 예상하고 있었다.

멜로디가 너무 시리고 아파서, 이보다 이 사랑을 설명해 줄 더 이상의 감정과 메시지를 찾지 못해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보다 노래를 듣는 관객이 더 마음 졸이며 힘들어하는 희귀한 장면이 또 탄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같은 다양한 이유로 공연은 잔잔한 호수라기보다 거친 파도를 내내 등에 업고 질주하는 모습이었다.

투혼의 열창이 빚은 김동률의 발라드는 듣는 이의 심장을 매순간 옥죄며 울컥거리게 했다. /사진제공=뮤직팜


공연은 또 결코 감상과 즐기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의 (음악의) 소름과 (감정의) 소진에 다다를 수 있음을 매 순간 증명했다. 무엇보다 듣는 이의 심장 구석에 남아있는 감정의 잔향과 찌꺼기까지 죄다 쓸어 담아 결국 토해내도록 부추겼다.

오프닝으로 선곡한 'the concert'(더콘서트)가 그나마 차분하게 끝나는가 싶더니, '사랑한다는 말'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로 이어지는 통에 이미 감정은 시작부터 달아올랐다. 그의 노래가 대부분 그렇듯, 도입-전개-후렴의 절차가 있긴 하지만 전개가 거의 생략된 채, 도입과 후렴의 비율이 워낙 크고 특히 후렴이 고음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서사와 절절한 멜로디 덕에 눈물샘이 너무 일찍 터졌다.

하지만, '아이처럼' '망각' '연극' '황금가면' 같은 김동률표 발라드와 거리가 있는, 음악적으로 독특하고 멋있는 장르와 접할 땐 대중가수 이상의 예술가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4비트 중심의 발라드도 김동률의 손을 거치면 어김없이 16비트 이상의 촘촘한, 리듬 있는 탱고나 재즈로 재탄생해 듣고 보는 맛과 멋을 한층 끌어올렸다. 원곡으로 부르려던 위의 곡들이 모두 탱고나 재즈, 라틴 풍으로 바뀌어 관악기들을 (그의 말대로) '고생' 시킨 것 역시 단 한 곡도 허투루 소화하지 않겠다는 그의 예술적 고집이 읽히는 대목이다.

연주팀의 구성만 봐도 그가 어떤 예술가인지 짐작케한다. 재즈 빅밴드와 오케스트라를 흥미롭게 섞은 30여명에 밴드 7명, 코러스만 8명을 투입해 소리의 틈을 허락하지 않았고 특히 어떤 소리에서도 하울링 없이 깨끗한 소리를 유지하는 것도 모자라, 개별 악기(코러스 포함)의 강약을 조절하는 절제력 역시 최고 수준을 보여줘 깔끔한 사운드를 자랑했다.

한 곡 한 곡에 묻어있는 이런 세련된 스타일과 풍성함 덕에 뉴욕과 파리 재즈 바를 몇 번이나 다녀왔는지 모를 정도로 그 알싸한 매력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김동률은 오케스트라와 재즈 빅밴드를 결합한 독특한 연주팀 구성으로 화려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구현했다. /사진제공=뮤직팜


4년 만에 열린 무대는 '대중적인 색채'로 가득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절절한 히트곡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 절절한 히트곡을 부르기 전, 김동률은 농담처럼 "트리플악셀이 이제부터 전개될 것"이라고 예고했는데, 이 대답에 대한 관객의 웃음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사랑한다 말해도' '취중진담' 'Replay' 같은 곡들이 이어지면서 흐느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김동률에겐 여자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의 경기에서 느낄 법한 애잔한 투혼의 흔적이 넘실거렸다.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쥐어짜 '이 절절한 사랑'의 극한이 어디로 갈지 같이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듣는 이를 숨죽였다.

그래서 듣고만 있는데도 눈물이 주르륵, 낮은 저음으로 가사 몇 마디만 훑어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세영이 무릎을 혹사하고도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위해 뛰듯, 김동률도 성대를 망칠 위기의 순간 전까지 '다시 못해 볼 절절한 사랑' 얘기를 전해야 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의 노래가 그토록 느린데도, 이토록 심장을 빨리 뛰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 넌 나를 사랑했었고/난 너 못지않게 뜨거웠고/와르르 무너질까/늘 애태우다 결국엔 네 손을/놓쳐버린 어리석은 내가 있지~"('Replay' 중에서) 이 가사를 부르면서 애잔하고 애틋하면서, 또 후회하는 듯한 감정을 가창에 실어 나를 때, 그 누가 빨라지는 심장을 통제할 수 있을까.

'황금가면'에서 안무팀 15명과 함깨 호흡을 맞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마지막 곡 '기억의 습작'에서 관객 누구도 호흡 한 번 내뱉지 않을 만큼 숨죽인 채 그를 지켜봤다. 어떤 설움에 북받쳤는지, 어떤 가슴 시린 장면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정지 상태로 굳어있었다.

김동률은 "현재 순간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겠다. 인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늘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으로 살겠다"며 "조금 더 늙어서 다시 만나자"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또 4년이 지나야 그리운 무대를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완벽한 무대를 위해 또 자신에게 가하는 채찍질을 수년간 두고 봐야한다는 얘기인가. 절절한 가창을 지금처럼 똑같이 듣지 못하는 건 혹시 아닐까. 이렇게 슬픈 그림을 기대한 게 아닌데, 왜 원하던 공연을 보고도 다시 슬픔에 젖어야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한 곡을 끝낼 때마다, 그 곡이 가진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다음 공연을 기약해야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4년만에 무대에 선 뮤지션 김동률. /사진제공=뮤직팜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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