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손탄다
"올해말 은행들은 예금금리를 어떻게 한다고 하나요?"
올해 초 만난 한 저축은행 대표가 건넨 말이다. 연말 100조원 수신경쟁의 힌트였다. 그의 걱정은 현재진행형이다. 더 구체화되고 현재화를 앞두고 있을 뿐이다.
시작은 레고랜드 사태였다. 지방 정부이긴 했지만 정부가 돈을 갚지 않는다고 했다. 가뜩이나 채권시장 투자심리도 좋지 않았던 때다. 뺨 맞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었다. 금리가 급등했다. 특히 신용도가 낮은 채권 금리가 많이 올랐다.
금융당국이 당연하다는 듯 나섰다.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손을 댔다. 특히 은행채 발행을 중단시킨 게 악수였다. 신용도가 좋은 은행채 발행이 줄면 신용도가 다소 낮은 채권에 돈이 들어가 스프레드를 낮출 것이란 논리였다. 시장이 다르다는 충고는 흘려졌다. 게다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시장에서 인기가 더 많은 특수은행채는 두고 시중은행에만 채권 발행 중단을 강요했다. 특수은행과 달리 시중은행은 예적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시중은행은 강요된 행동을 했다. 예적금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은행채로 조달했던 자금까지 예적금으로 조달하다보니 금리를 높일 수 밖에 없었다.
이후부터는 정해진 수순이다. 가장 안전한 은행보다 덜 안전하다고 평가받은 저축은행은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만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연말 퇴직연금시장을 둘러싼 경쟁으로 예금금리는 더 뛰었다. 예금금리가 높아지니 대출금리도 덩달아 뛰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신났다. 과거엔 수많은 위험을 무릅써야만 얻을 수 있었던 연 5% 수익을 아무런 위험 없이 예금자보호가 되는 예적금으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편에선 곡소리가 들렸다. 돈 없는 서민들은 높은 금리에 이자 갚는데 허덕였다. 고물가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자영업자는 고금리 짐까지 지게 됐다. 장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서민들의 돈줄도 막혔다. 금리가 올랐지만 20% 법정최고금리에 막혀 제도권 금융권 끝자락인 대부업체는 서민들에게 돈을 내주지 못했다. 저축은행은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다가 적자가 발생했다. 최대한 돈은 굴리지 않는 것이 적자폭을 줄이는 방법이다보니 '대표 서민금융회사'라는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금융당국의 악수 부작용은 심각했고 오래 갔다. 금융당국은 이제 정상화에 나섰다. 악수를 되풀이할 순 없었다. 일명 F4라 불리는 우리경제를 책임지는 경제수장들은 100조원 수신경쟁에 불쏘시개가 될만한 걸 만들지 말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우선 은행채 발행 한도를 모두 풀었다. 예금자보호한도도 당장은 올리지 않기로 했다. 올해초 SVB(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이후만 해도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았지만 현재로서는 득보단 실이 많다는 게 정부의 판단으로 보인다.
살얼음을 걷는 상황에서 변수가 생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터졌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우크라이아 전쟁보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중동분쟁은 역사적으로 국제 유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더 직접적이었다.
금융당국이 다시 나서도 이상하지 않을 때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1일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를 열고 "철저하게 대비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물론 대응 방안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움직이는 시장에는 대응해야 한다.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면 빠르게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 거짓 소문이 떠돌고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진 시장경제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손탄다'는 말이 있다. 한번 손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손탄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손을 타게 한 어른도 마찬가지다. 손 탄 시장의 후유증으로 필요 이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이학렬 금융부장 toots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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