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곡절이 깃든 '古典의 품격'…'마스터' 증명한 '멜로디'
7~9·13~15일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서 여섯 차례 공연에 6만명 운집
'트리플 악셀'급 노래들로 구성한 대중적 세트리스트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고전(古典)'이라 불러도 절대 과하지 않다.
싱어송라이터 김동률이 4년 만에 연 콘서트 '멜로디(Melody)'는 그의 숱한 히트곡들이 유행가를 넘어 어떻게 대중음악계 반석(磐石)이 됐는지를 증거한 자리다. 지난 7~9·13~15일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DOME·옛 체조경기장)에서 여섯 차례 공연한 장기전인데, 수십인조 오케스트라까지 함께 했음에도 명확한 기준이 된 곡들 덕분에 어느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특히 김동률이 "역대급으로 대중적인 세트리스트"라고 예고한 것처럼 히트곡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사랑한다는 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이제서야' '그게 나야' '이방인' '취중진담' '리플레이' '기억의 습작' 등 우리나라 대중음악계가 김동률(혹은 그가 이끈 듀오 '전람회')로부터 수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는 품격 있는 발라드가 연이어졌다.
김동률의 말을 빌리면, 모두 '트리플 악셀'급 노래들이다. 트리플 악셀은 피겨스케이팅에서 '공중 3바퀴 반 회전'을 가리키는 고난도 기술인데, 감탄을 부르는 장면이다. 이번 공연에서 울려퍼진 노래들은 저마다 콘서트에서 하이라이트를 담당할 수 있는 곡들로 고난도 가창과 상당한 감정선을 요구한다. 이런 곡들이 연이어 이어졌으니 김동률이 회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목에 상당히 무리가 가는 세트리스트로 김동률 본인도 "부르기 힘들다"고 털어놨을 정도였다.
이 뿐만 아니라 이번 콘서트에선 시간의 퇴적을 환기할 수 있는 곡들도 대거 포함됐다. 데뷔곡인 전람회 '꿈속에서', 프로젝트 듀오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 솔로 1집에 실린 곡으로 전람회의 서동욱·카니발의 이적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내 오랜 친구들' 등도 홀로 불렀다.
콘서트에 세션으로 참여한 고상지는 자신의 밴드와 함께 인터미션 무대를 꾸미기도 했는데, 탱고 대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와 함께 가수 김원준의 '쇼'를 들려줬다. 김원준의 '쇼'는 1996년대 크게 히트한 곡으로 김동률이 작사·작곡했다. 뮤지컬 분위기를 풍기는 근사한 구성이 일품인데, 벅참이 일품인 고상지의 편곡과 만나 더 화사했다.
김동률하면 주로 웅장한 발라드를 떠올리는데 은근히 뮤지컬 분위기를 담은 곡도 꽤 있다. 지난 5월 공개한 신곡 '황금가면'은 그 정점에 있는 곡이다. 김동률 소속사 뮤직팜은 이 곡 발표 당시 "흡사 브로드웨이 블록버스터 뮤지컬의 클라이맥스를 연상시키는 넘버"라고 소개했는데, 이번 콘서트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반복적인 페달 톤의 피아노 코드 위로 공감각을 확장시켜주는 스트링, 김동률이 로망을 품고 있는 브라스 섹션의 웅장함, 펑키한 기타와 베이스 라인 여기에 화사한 코러스와 무대 뒤에서 한 일(一)자로 내뿜는 조명으로 '진짜 뮤지컬 같은 무대'가 재현됐다. '황금빛 고전 무대'라고 칭해도 될 정도였다.
김동률은 "이 곡에서 제 댄스를 기대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추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면 제 춤만 회자될 거 같아 자제했어요. 1년 동안 준비한 공연인데 아깝잖아요"라고 덧붙였다. 콘서트 관객은 이미 잘 알지만, 과거 라디오 DJ로도 활약한 김동률의 입담은 화려하다. 콘서트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된 것과 관련해선 "저도 티켓 오픈 당시 예매에 참여했는데 당황스러웠고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면서 "'주제 파악'(가수가 인기에 비해 좌석이 적은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여는 것에 대해 유머를 섞어 아쉬움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을 잘 하라고 하시는데 제가 방탄소년단(BTS)이나 임영웅 씨 급이 아니잖아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동률 콘서트에선 기존 노래의 다양한 편곡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도 재미다. '취중진담'은 '취중고백' 자체에 대해 멈칫거리는 마음을 담은 '어덜트 버전'(2019년 버전)을 선보였다. '구애가'는 재즈 스윙 리듬으로 국악 가락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디테일한 부분들이 콘서트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김동률의 콘서트엔 오페라의 서곡에 해당하는 근사한 오프닝이 있는데 이번엔 정규 5집 '모놀로그' 수록곡 '더 콘서트'가 그 역을 담당했다. "널 만나러 갈 시간 / 마음에 떠도는 음을 모아 / 한 소절씩 엮어간 멜로디에 / 가슴에 묻었던 생각들을 / 이제 너에게 보여줄 시간 / 불이 꺼지고 / 내 등 뒤로 밀려오는 음악 소리에 / 천천히 검은 막이 걷혀질 때"라는 노랫말이 실제 불이 꺼지거나 막을 올리면서 물리적으로 구현될 때의 환희는 생생한 라이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또 무대 위엔 김동률이 자랑스러워하는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 세세하게 조형돼 있어 웅장함도 선사했다. 하프까지 포함된 오케스트라를 대중음악 공연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앙코르곡으로 '내 마음은'와 '멜로디'까지 들려준 김동률의 이번 콘서트는 시대를 타지 않는 유행가의 곡절(曲節·악곡의 마디)엔 곡절(曲折·복잡한 사정이나 까닭)이 녹아 있어 끊임없이 계승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올드팬뿐 아니라 젊은 팬들이 계속 공연에 유입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 뮤지션에 에 그 팬이라고 팬들은 공연 내내 거의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지 않은 성숙한 팬문화도 보여줬다. 6회 공연에 6만명이 운집했는데, 대부분의 팬들이 그랬다.
결정적으로 김동률의 공연에선 음악에 대한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겸손하기 때문이다. 김동률은 "저보고 주제 파악하라고 하시는데 그 말 자체가 제겐 너무 감사하고 벅차다"면서 "팬데믹을 보내면서 기존에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게 됐어요. 사소한 것들을 더 감사하게 됐죠. 더 열심히 채찍질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연 내내 무대 가운데서 지휘자 같은 역을 해내며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기도 했던 김동률은 이제 명실상부 대중음악계에서 마스터 반열에 올랐다. 음악이 "멜로디 한마디 말보다 진실한 맘을 전하는 메시지"이고 "아련한 기억의 조각들 어제처럼 되살리는 마치 마술같은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 노래로 전파하는 '음악 전도사'이기도 하다. 김동률은 내달 신곡을 발매한다. 1993년 MBC 대학가요제로 가요계에 발을 들이고 1994년 전람회 1집으로 데뷔한 그는 내년 데뷔 30주년을 기념한 프로젝트를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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