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빵 만들다 숨진 23살…“제 딸 박선빈, 기억해주세요”
“우리 선빈이 때 바뀌었다면 없었을 재해 반복
선빈이의 죽음 잊지 않고 같은 일 더는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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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빈. 한겨레는 1년 만에 그의 이름을 적는다. 이전까지 ‘에스피엘(SPL) 평택공장에서 일하다 식품 혼합기에 끼여 숨진 스물셋 노동자 ㄱ씨’로 불렀다. 선빈씨 어머니 전아무개(52)씨는 “선빈이의 죽음을 잊지 않고 같은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딸의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10월15일은 선빈씨가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전 국민을 아연하게 한 지난해 에스피씨(SPC) 계열 에스피엘 공장의 중대재해 1년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충남 천안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전씨는 딸에게 쓴 편지를 앞에 두고 고개를 떨궜다. 편지에는 “해답을 찾을 수 없어 그 고통과 슬픔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구나”라고 적었다.
지난 8월 같은 에스피씨 계열 샤니 빵 공장의 죽음을 접한 뒤 반복되는 중대재해 앞에서 느낀 좌절감을 적은 문장이다.
반복되는 ‘그날’
일하다 목숨 잃는 노동자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전씨는 “그날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날, 2022년 10월15일 아침 6시18분. 야간(저녁 8시~아침 8시) 근무 중 고추냉이 소스 배합작업을 하던 선빈씨의 오른팔이 배합기계 회전축과 회전날 사이에 끼였다. 어머니 전씨가 소식을 들은 건 사고가 나고 한 시간쯤 지난 뒤였다.
“인사 사고가 나 회사로 와보셔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집에서 공장으로 가는 15분이 무척 길었다. 경찰은 “너무 참혹하니 현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왜 그때 그 말만 듣고 들어가 보지 못했는지, 그게 내가 너무너무 후회돼요.” 전씨가 말했다.
1년 전 선빈씨의 발인 날(10월20일) 전씨는 한겨레에 “(에스피씨에) 단지 바라는 건, 우리 딸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영인 에스피씨 회장은 이튿날 대국민 사과를 하며 중대재해 재발방지 약속과 함께 안전관리 강화에 1000억원 투자를 약속했지만, 전씨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선빈씨의 죽음 이후 열달 만인 지난 8월8일 같은 에스피씨 계열인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반죽 볼 리프트와 분할기(반죽 기계) 사이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다시 선빈씨한테 중대재해가 닥친 그 날이 떠올랐다. “우리 선빈이 때 바꿨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잖아요. 말뿐이었습니다. 뭐 하나 바뀐 게 없어요.”
샤니 공장 사고 당시 리프트 기계에는 상승·하강 때 작동하는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고, 끼임을 감지하고 멈추는 안전 센서도 설치되지 않았다. 선빈씨가 끼인 식품 혼합기도 끼임을 감지하고 정지하는 등의 방호 장치가 없었다. 고작 10개월 시차를 두고 닮은 죽음이 반복됐다.
일터에서 기계가 된 사람
전씨는 딸의 죽음과 그 이후 반복된 중대재해를 겪으며 “기본적인 체계조차 잡혀 있지 않은” 기업의 민낯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회사는 직원을 사람이 아닌 기계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한겨레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선빈씨 사고에 대한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재해조사 의견서’를 보면, 선빈씨가 끼인 기계는 위험성 평가에서 끼임 위험이 파악되고도 ‘미미한 위험’으로 평가돼 안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선빈씨가 했던 소스 배합 작업에 대해선 위험성 평가도 이뤄지지 않았고 작업안전표준서 또한 없었다.
회사는 피로도가 크고 집중력이 떨어지기 쉬운 야간 맞교대 작업을 위험요인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사람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놓쳐선 안 될 위험을 무더기로 간과한 셈이다. 에스피엘 공장에서는 최근 3년간 끼임 사고가 12건 발생했다.
경영 책임자에게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세우는 기본적인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무력했다는 게 전씨 생각이다. 지난 8월 검찰은 강동석 에스피엘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지만, 허영인 에스피씨 그룹 회장은 기소하지 않았다.
유가족은 9월18일 허 회장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검찰에 항고했다. 항고장에는 “사업장을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기업집단 에스피씨의 경영책임자(허 회장)를 중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하지 않으면 기업문화를 개선할 수 없으며, 중대산업재해를 근절할 수 없다”고 적었다.
전씨는 “역시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은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기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7개월 불린 이름 ‘선빈’
사고 이후 선빈씨 가족은 20년 동안 운영하던 인쇄소를 정리하고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이사했다. 전씨는 “우울증약 6알을 먹으며 그냥 살아 있다”고 했다.
기억과 자책이 뒤섞인 날들이 이어졌다. 전씨는 빵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선빈에게 에스피엘 취직을 권했던 일, 식품 대기업 ‘간판’을 믿고 취업을 축하한 일, 일하다 생채기 난 팔꿈치를 보고도 ‘괜찮다’는 선빈씨 말에 지나쳤던 일을 하나씩 되짚었다. 가족은 선빈씨의 제빵 책과 평소 좋아하던 가수 위너의 앨범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그나마 힘이 된 건 함께 분노하고 위로해준 시민들이다. “그래도 기댈 곳이 있구나 싶어서 고마웠습니다. 선빈이 같은 일이 다시 안 생기는 것, 그게 아직도 바람입니다. 다른 (중대재해를 겪은) 가족들이 홀로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지, 겪어보니 알겠습니다.”
지난해 3월 선빈씨는 이름을 혜연에서 선빈으로 개명했다. ‘선빈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아. 요즘 자꾸 그 이름이 눈에 들어오네’라며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선빈씨는 좋아하는 이름으로 7개월 불리고 세상을 떠났다. 전씨는 “가족처럼 평생 같은 아픔으로 기억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선빈이 이름을 부르고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에스피엘(SPL)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은 박선빈씨에게 어머니 전씨가 쓴 편지 전문을 전한다.
편지는 선빈씨의 기일인 10월15일 선빈씨 유해가 있는 천안의 한 추모공원의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을 통해 부쳤다.
사랑하는 나의 반쪽이었던 딸 선빈아!
딸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며칠이면 1년이 되어 가는구나.
평생 잊을 수도 잊혀져서도 안 될 그 날. 2022년 10월15일 새벽 6시20분.
그전엔 우리 형편이 좀 어렵고 남들이 모를 집안 사정이 소소하게 있었을 뿐, 모두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평범함이란 생각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
그런데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청천벽력같은 일이……
지금도 너무도 생생하게 그날의 기억들이……
믿기지 않는 말을 하며 전화 한 통을 받지만 “혜연이 어머니 되시죠? 인사사고로 빨리 회사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에 믿기지 않지만 아침 일찍 전활 받고 부랴부랴 동생을 깨워 택시를 타고 너가 다니던 그곳 SPL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진지도 모른 채 불안함과 초조함, 슬픔 등 모든 불길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쳐서 기사님께 목적지도 제대로 알려드리지도 못했었다.
널 출근도 몇 번 시켜줬던 그곳을 말이다.
회사에 도착해보니 경찰관들이며 직원들이 허둥지둥하며 엄마와 동생을 현장에 데려가려 할 때, 한 경찰관이 “사고현장이 너무 참혹해서 들어가실 수 없다”는 말에 엄만 경비실에 주저앉아 그저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보같이… 우겨서라도 현장엘 직접 가보았어야 하는 건데…
그래야 선빈이 너가 얼마나 힘든 조건에서 일을 해야만 했고 왜 인사사고까지 갔어야 했는지, 그리고 마지막 인사라도 했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도 그때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엄마가 너무 바보 같고, 무책임했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그 누구도 이렇게 사고가 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 그냥 매스컴에서나 볼 수 있는 남의 얘기로만 생각했었는데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선빈이 너의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다. 문제가 많았던 회사였다는 걸 사고가 난 후에야 알게 되었고, 이 바보 같은 엄마는 대기업이라 믿고 너의 입사에 축하까지 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큰 착오를 저지르고 말았구나. 그런데 하필이면 왜 너가 그 희생양이 되었어야 했던 건지…
해답을 찾을 수 없어 그 고통과 슬픔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구나.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얻는 대가가 죽음이라면 그 누가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하고 싶을까? 그래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힘든 일을 하지 않는 이유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
얼마 전 똑같은 사고가 같은 계열사에서 또 일어났었단다.
10개월 만에 말이다. 너의 사고 당시 대국민 사과를 빌미로 안전경영에 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결정했던 SPC 회장, 하지만 또 다시 반복되는 사고들…
엄마가 널 보내는 마지막 날 한겨레 기자분께 인터뷰할 때 “제발 제 딸이 마지막이었음 좋겠다”라고 했건만 어떻게 늘 그때뿐인지 모르겠구나.
누굴 믿고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조차 믿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해결할 수는 있는 건지도 의문이 든다.
‘선빈아! 엄마 딸로 태어나서 고생만 하다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버린 너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고, 사랑한다.’ 말이라도 해주었어야 하는 건데……
너무나도 한이 되어 남는다.
거기다 사고 당시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왜 혼자서 그 힘든 일들을 도맡아서 해야 했던 건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가고 평소에 너가 했던 말들이 생각이 나더라.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이 자기만 시킨다고…’
젊다고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걸 무단히 버텨내며 일했던 너가 너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안타까울 뿐이다.
힘들다는 말을 수십번 했는데도, 그만두라고도 몇 번을 했었건만…
더 강력히 퇴사를 강요하지 못한 엄마가 또 한 번 죄인이 되는구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혜연아!
엄마는 네가 태어나서 너무 행복했었고, 기쁨 그 자체였단다. 어릴 땐 애교로 힘듦을 씻어 주던 그런 살뜰하고, 엄마 삶의 원동력이었고, 표정도 다양하고, 웃음도 많았던 세상에서 젤로 예쁜 나의 딸이었단다.
커서는 가족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 조금씩 상황이 좋아지는 중이었고, 엄마에게 고민도 털어놓고, 쇼핑도 같이하고, 시장도 같이 다니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자매 사이 같다며 부러워하기도 했었지. 그랬었는데……
엄마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 만약에 개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엇무엇을 하지 않았더라면… 등등…
자꾸 만약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더라구. 그만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지. 왜냐하면 우리는 엄마와 딸 사이보단 진정한 친구 사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다정할 때도, 싸울 때도 모든 걸 함께 한 그런 소중한 나의 반쪽이 떨어져 나가버렸는데 어찌 편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겠니.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내 딸 선빈에게 죄가 되는 느낌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게 고통 그 자체란다.
모두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힘들고. 더 보고 싶고. 아직까지도 꿈이라고 믿고 싶은 맘이 간절하단다.
딸!!
24년을 함께 보냈기에 너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는구나. 마저 정리하지 못한 어릴 적 앨범들(무려 큰 거 4개권)이며, 솜씨 좋은 너가 만들어 놓은 그림이며, 이곳저곳 너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정작 딸 너만은 이곳에 없구나.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버릴 수도 치울 수도 없구나. 이것들마저 없다면 너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다 사라질 것만 같아 엄마가 살아 있는 한 곁에 두고 싶구나.
사랑하는 내 딸 선빈아!!
엄마의 딸로 태어나 주어서 너무 고마웠고, 많은 사랑 베풀지 못해 미안했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지 못해 기 죽어 살게 해서 더욱더 미안했고, 행복한 모습 보이지 못해 너에게 죄책감을 안겨줘서 제일 미안했었다.
하지만 밝고 씩씩하게 열심히 살아가려 최선을 다한 것에 너무 감사했었어.
선빈이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더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늘 엄마 마음엔 선빈이 너가 온전히 다 자리하고 있으니 편안한 곳에서 놀기만 하고 너가 좋아하던 것들만 하면서 엄마 만날 날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잘 지내야 해.
너무 보고 싶고, 너무 사랑하고, 너무너무 미안하다.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
-세상에서 딸 선빈(혜연)이를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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