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기준 또 못세웠다…농촌 대표성 확립 미지수
“국회, 책임 방기” 지적 목소리
대안 제시 많지만 전망 ‘비관적’
국회의원 선거의 농촌 선거구가 점점 거대하고 기괴한 모양으로 변해간다. 인구 기준에 미달하면 인접 지역과 함께 선거구를 구성해야 하는 인구 중심 선거구 획정 기조가 심해지면서다. 내년 총선에선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작부터 나왔지만 전망은 비관적이다.
국회는 이번에도 선거 코앞에 다다라서야 ‘인구 기준’이라는 현재 틀에만 맞춘 선거구를 얼렁뚱땅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3일 재외선거관리위원회 설치를 시작으로 내년 총선의 선거 사무에 돌입했다. 이에 앞서 선관위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12일까지 국회에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선거구 획정 법정 기한인 4월10일 이후 두번째 데드라인을 제시한 셈인데 국회는 이마저도 못 지켰다.
현재 선거구 획정의 절대 기준은 인구다. 헌법재판소는 1995년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와 가장 적은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4대1로 맞추라고 판결한 이래 이 기준을 계속 강화했다. 2015년엔 인구 편차를 2대1로 맞추라고 판결했다. 그 결과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선 많은 의석이 탄생한 반면 농촌은 인구가 적은 시·군이 결합하면서 의석이 줄어들게 됐다.
농촌 주민들은 지역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려운 실정에 우려를 나타낸다. 한명의 국회의원이 지리적으로 넓고 생활·문화 여건이 다른 여러 시·군을 동시에 대표해야 하는 상황이어서다.
국회에서 농촌 민심이 과소 대표되는 문제는 내년 총선 이후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농촌 인구 감소로 현재 11곳 선거구가 인구 하한에 미달해 인접 지역과 결합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반면 현행 선거제가 유지될 경우 수도권의 지역구 의석수는 지금보다 7곳 늘어난 128석이 된다. 전체 지역구(253석)의 절반을 넘는 숫자다.
대안은 많이 제시됐다. 최근 선거구획정위가 마련한 강원지역 의견 수렴 자리에서 권오덕 참여와 자치를 위한 춘천시민연대 고문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편차를 다르게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오동철 춘천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접경지역은 수십만명의 군인이 생활하지만 이들은 부재자 투표를 통해 출생지에 투표한다”면서 선거구 획정 때 인구 기준을 ‘주민등록상 인구’만으로 따지는 점을 개선하자고 촉구했다.
선거구 획정 열쇠를 쥔 국회에서도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선거구 획정 때 ‘면적 특례’를 두자는 안이 대표적이다. 선거제 자체를 손질해 비례대표를 전국이 아닌 권역 단위로 선발하자는 대안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선거 6개월 전인 지금까지도 뚜렷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점이 문제다. 국회는 국회의원 정수, 비례대표 의석수, 비례대표 선출 방식 등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선거룰의 합의 난항으로 선거구 획정 논의 역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의 책임 방기라는 지적이 거세다. 한 전문가는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인구수와 달리 정성적인 지역 대표성은 선거구 획정에 반영하지 않아도 헌재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작아 국회에서 사실상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역 대표성 반영을 위한 방안과 법률을 마련하려는 의지가 정치권에는 없다”고 비판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구 획정 때 ‘지역 대표성 반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만 규정할 뿐 지역 대표성의 개념은 물론 ‘누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는 명시하지 않는다.
결국 종전처럼 인구 중심의 선거구 획정이 선거 코앞에서 이뤄지면 농촌은 또 한번 위축될 수밖에 없다. 15대 총선 이후 선거구 획정은 평균 선거일 50일 전에 이뤄졌고, 최근 21대에는 선거 35일 전에야 확정됐다. 강도용 한국후계농업경영인 전남도연합회장은 “농촌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거구 획정이 이뤄져야 농촌 발전에 필요한 정책이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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