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일감’ 넘어 ‘독립 경영’… 정의선 현대차 계열사가 강해졌다
현대차그룹의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올해 현대차·기아 이외 해외 기업에서 따낸 차 부품 계약 규모가 처음으로 50억달러(약 6조7500억원)를 돌파할 전망이다. 2021년 연간 해외 수주액(25억1700만달러)이 2년 만에 2배로 뛴 것이다. 지난 8월 독일 폴크스바겐에서 약 5조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 공급계약을, 직후에는 벤츠에서 차세대 전기차 섀시 모듈 공급계약을 잇달아 따냈다. 모두 전기차 핵심 부품이다. 최근 모비스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에서 부품 공급계약을 따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 기업이 차를 만드는 지역에 현지 생산 설비를 만들어 주거나 맞춤 사양 부품을 제작하는 등 적극적으로 조건을 제시한다. 즉각 기술 지원이 가능한 전담 인력도 파견해 준다.
이는 2020년 10월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크게 달라진 현대차그룹의 경영 방식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끌 때엔 ‘쇳물부터 자동차까지’란 말처럼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소재·부품을 일사불란하게 그룹 내에서 조달하는 ‘수직 계열화’가 핵심 전략이었다. 계열사들은 현대차·기아의 부품 생산·개발 주문만 효율적으로 잘 처리하면 됐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 취임 후 전기차 등 미래차 경쟁력을 빠르게 키우면서 계열사의 독자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엔진이 없는 전기차는 내연차에 비해 부품 수가 30~40% 적은 데다 제작도 상대적으로 더 쉽다는 특수성이 반영됐다. 또 완성차 업체가 소프트웨어(SW)부터 배터리·모터 등 주요 부품을 직접 개발하는 기술 내재화까지 모두 가능해지면서 수직 계열화의 중요성이 덜해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자동차 말고 항공·오토바이도” 현대차 계열사의 변신
현대차와 기아만 바라보던 그룹 계열사들은 사업 영역을 넓히며 독자 생존과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는 2025년부터 항공 물류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이달 초 인천공항 제2공항 물류 단지에 IT 기반의 물류 로봇 등 첨단 자동화 설비가 들어가는 글로벌 물류 센터(GDC)를 짓기 시작했다. 당초 ‘현대차의 수출용 물류 회사’로 시작했던 이 기업은 최근엔 폴크스바겐 등 여러 해외 자동차 기업의 물류를 담당한다. 작년엔 약 3조원 규모 해상운송 계약을 따냈다. 이 중엔 전기차 물량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데 전기차 시대를 대비해 선박에 전기차 화재 예방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선제 투자에 나선 것이 효과를 봤다고 한다.
자동차 변속기와 시트 등을 만드는 현대트랜시스는 항공 인테리어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미래 주요 운송 수단 중 하나로 거론되는 UAM(도심형 항공 모빌리티)에 들어가는 시트를 선제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최근 국제 에어쇼나 항공 인테리어 디자인 대회 등에 수시로 출품한다. 지난 2019년에는 미국 전기차 기업 ‘리비안’ 제품에 들어가는 약 1조원 규모 자동차 시트 공급계약을, 지난해에는 스텔란티스그룹의 지프 SUV 변속기 공급계약도 따내는 등 해외 판로도 찾는 중이다.
엔진 제어 장치 등을 주로 만들던 현대케피코도 요즘 전기 오토바이를 달리게 하는 모터 등 구동 시스템을 미래 핵심 사업으로 정했다.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인도네시아, 인도 등의 미래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차원이다.
◇곳곳에서 사업 재편이나 경쟁 본격화
사업 재편 작업에 들어간 계열사도 많다. 내연차 엔진 모듈이 주력 사업인 현대위아는 최근 전기차 ‘열 관리 시스템’을 신사업으로 정하고, 기아 EV9에 납품하는 등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현대제철도 이달 중 연 매출이 1조원 넘는 강관(鋼管) 사업부를 별도 자회사로 독립시킬 계획이다. 기술력 경쟁이 한계에 다다른 분야 대신 친환경차 경량 소재 생산·개발 등 수익성이 높고 전문적인 분야에 더욱 집중한다는 차원이다.
모비스는 최근 내연기관 차만 만들던 시절에 생산하던 각종 부품 가운데,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외부 조달이 가능한 부문을 과감하게 정리하겠다는 내용을 주요 부서에 전달했다. 최근 수년간 수백억원씩 적자를 냈던 수소차 연료전지 사업을 현대차로 넘기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현대차·기아는 형님 회사, 계열사는 동생 회사라는 인식이 커 형님들만 바라보면 됐는데, 지금은 계열사의 자율성이 커진 대신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분위기가 강해 긴장감은 더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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