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이념보다 민생, 싸움꾼보다 일꾼

강경희 논설위원 2023. 10. 16.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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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운영을
滅公奉私 이권판 만든 文정부
유능하고 반듯한
滅私奉公 인사들 발탁해
나라 전진시켜 달라는 소임
尹정부는 얼마나 수행했나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뉴스1

정전 70주년을 맞는 올해 국제 정세는 70년 만에 이런 적이 있었나 싶게 긴장도가 높아간다. ‘제2의 스탈린’ 푸틴, ‘제2의 마오쩌뚱’ 시진핑,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이 곳곳에서 호전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친북친중 반미반일의 외교 노선을 고집해온 좌파 정부 대신 우파 정부가 집권해 어긋난 뼈를 제자리 맞춰 놓듯 국제 정세 흐름에 맞는 동맹 외교를 강화한 것은 한시름 놓을 일이다.

하지만 외교 성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40%를 밑돌고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줄곧 앞선다. 내년 총선에 앞서 민심을 엿볼 수 있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그 선거 결과에, 청문회 파행을 빚었던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물러났다. 항간에 이런 말이 돌았다. 그렇게 큰 차이의 패배가 아니면 아마도 윤 대통령은 논란 많은 여가부 장관 후보도 관철시켰을 것이라는 관측들이었다. 실제 대통령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두루 여론도 살피고 포용하면서 신중하게 결정하기보다는 한 번 작정하면 고집을 절대 굽히지 않는 이미지가 굳어진 탓이다. 그런 일방적 리더십으로 이 복잡다단한 국내 위기를 노련하고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박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거대 경제 위기를 겪었던 한국 경제는 10년 주기설의 예언이 들어맞기라도 하듯 거대 위기가 경제를 옥죄고 있다. 2% 방어도 힘겨워지는 저성장, 세계 최저 출산율, 1800조원 넘는 가계빚, 초고속 고령화 등 어느 것 하나 한국 경제에 위험 요소가 아닌 것이 없다. 경제 성장판이 닫혀간다는 건 미래의 기회가 닫혀간다는 의미도 된다. 저성장 해법에 대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의 성장 문제는 구조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재정으로 할 문제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사안마다 이해 당사자가 다른데 구조개혁을 하면 (잠재 성장률이) 2%로 올라가는 것이고 그 선택은 국민과 정치에 달려 있다”고 처방전을 내놨다. 그 말에 핵심이 담겨 있다.

정답은 있는데 문제를 풀 줄도 모르고, 풀려고도 하지 않는 ‘불능 정치’가 한국 경제를 덮친 진짜 거대 위기다. 10년 주기 위기설이 임박한 2017년에 전임 문재인 정부가 집권했다. 야당 시절 행태를 벗지 않은 채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과 우려는 무시하고 이념 폭주 정책으로 내달렸다. 집값 폭등 등 눈에 드러난 경제 실정(失政)을 자초해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는데 그 경제 부작용보다 훨씬 깊은 내상(內傷)을 사회 전체에 남겼다.

나라를 두 쪽 내고 무능하고 부도덕해도 내 편이면 발탁하고 감쌌다. 낯 두꺼운 몰염치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로 가치 전도 현상을 가져왔다. 기업은 국적, 성별, 성향 가리지 않고 두루 인재를 구하면서 글로벌 대기업으로 커가는데 정치판과 정부는 분단 국가를 또 쪼개서 좁디 좁은 풀(pool)에서 충성도 기준으로 사람을 뽑았다. 사법의 정치화, 공무원의 정치화,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정치화 등 사회 전체를 과잉 정치화하고 양분시켜 심각한 갈등 사회로 퇴행시켰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 대신,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해는 사회화하는 멸공봉사(滅公奉私) 인사들이 판을 쳤다. 외피는 좌파 이념 구현이지만 내막은 연 예산 600조원, 5년간 3000조원에 이르는 거대 국정에서 자기 편 세금 일자리 챙기는 이권 전쟁이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23개월 만에 총선을 치른다. 3대 개혁을 국정 과제로 내세우는 등 정책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거대 야당이 막고 있는 국회에서 개혁 정책 입법의 길은 봉쇄돼 있다. 대통령이 쓸 수 있는 나머지 한 카드는 전임 정부보다 월등하게 유능하고 막강한 ‘드림팀’ 인선으로 국민을 안심시키면서 개혁 의지를 보여주고 기대와 지지도를 높여나가는 길이 거의 유일했다. 하지만 23개월의 4분의 3을 보내는 동안 포용적 인사, 참신한 인사의 강렬한 메시지를 보여준 적은 별로 없다. 재탕 장관들, 측근 위주의 편중 인사, 최근에는 싸움꾼들을 이념 전선에 전면 배치하는 인사를 하고 있다. 새만금 잼버리에서 무능을 보여준 여가부 장관 후임에 검증 미흡한 논란의 인사를 발탁해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실망을 가중시켰다.

윤 대통령의 시간은 6개월도 남지 않았다. 달라진 모습으로 지지 기반을 넓혀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얻지 못하면 저성장 탈출의 해법으로 꼽히는 개혁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어 허공으로 날아갈 것이다. 성장 동력이 꺼져 가는 경제는 계속되는 작동 불능 정치의 쇳덩이에 짓눌려 더디고 무력한 속도로 힘겹게 굴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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