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정부 예산과 드러나지 않는 경비

경기일보 2023. 10. 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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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내년에 정부가 쓸 경비는 얼마나 될까?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657조원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이는 화폐적 비용을 수반하는 국가 예산만에 의한 경비를 뜻한다. 이를 ‘드러난 경비’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의 정부활동 중에는 ‘드러나지 않는 경비’가 상당히 많이 있다. 이를테면 징병, 명예직, 부역 등은 엄연히 정부활동 수행에 소요되는 서비스임에도 소액이거나 거의 무상으로 획득되고 있어 예산에는 반영되지 않으므로 드러나지 않는 경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징병에 의한 군인들에 대해서도 약간의 봉급을 지불하고 있으나 공무원 9급의 임금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친다. 이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차액만큼 실질적으로 국민 부담이 되고 있음에도 경비로 계상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등병의 월급은 64만원인데 9급 공무원의 월급은 236만원으로 이를 기준으로 따지면 172만원이 드러나지 않는 경비인 셈이다. 만일 군 복무에 따른 드러나지 않는 경비를 전체적으로 합산해 본다면 국방비 예산은 지금보다는 훨씬 큰 금액이 될 것이다. 이는 한 예에 지나지 않으므로 ‘드러난 경비’, 즉 예산만에 의한 정부활동 내지 재정활동은 실제의 정부활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은 물론 사실상 재정활동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엄격하게 따진다면 이들 드러나지 않는 경비를 모두 정확하게 포함시켜 정부활동 내지 재정활동을 파악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런데 경비면에서만 드러나지 않는 경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제면에서의 드러나지 않는 경비도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이른바 ‘조세지출(tax expenditure)’이라고 하는 것인데 소득공제, 세액공제, 조세감면, 특별상각 등이 이에 속하는 것들로 이들은 직접경비 또는 보조금의 형태로 예산에 계상돼야 함에도 일종의 ‘뒷문지출(back door spending)’ 형식으로 예산에 계상되지 않은 채 지출되는 경비라는 점에서 역시 드러나지 않는 경비라 할 수 있다.

정부는 내년도 정부예산을 657조원으로 계상하고 있는데 조세감면액, 즉 조세지출을 59조원으로 책정하고 있어 이를 예산에 포함시킨다면 사실상의 세출은 71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 밖에도 준조세(semi tax)라 할 수 있는 각종 성금과 기부금, 건강보험료, 원호성금, 새마을성금, 방위성금, 체전기부금, 법정부담금(내년 24조원 징수 예정) 등 정부는 여러 가지 명목으로 국민들로부터 실질적 경비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들을 거둬들이는데 사실상 이들 항목도 역시 경비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예산에 반영되지 않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준조세 부담 현황 조사에 의하면 2021년 기준 광의의 준조세는 약 181조1천억원으로 2021년 기준 조세총액 456조9천억원의 39.6%에 달했다. 만일 금년에도 200조원 정도의 준조세, 즉 드러나지 않는 경비를 거둬들인다면 이들만큼 실제의 경비는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재정활동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드러난 경비’, 즉 예산에다 ‘드러나지 않는 경비’를 모두 포함시키는 것이 이상적이다. 만일 모든 드러나지 않는 경비를 세출에 포함시킨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사태까지는 아닐지언정 실제의 재정 규모는 현재보다 엄청나게 큰 규모가 될 것이다. 우리 평범한 시민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예산만을 통해 정부활동이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들 정부활동은 모두가 국민의 부담과 희생 위에 이뤄지는 것이므로 절대로 허투루 쓰거나 낭비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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