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문화재’라고 ‘딱지’만 붙으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미래세대 위한 징검다리
기자는 부산 강서구 대저1동의 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이 많다. ‘근대의 대저’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쓸 무렵 주위에서 같은 질문을 자주 했다. 왜 대저냐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대저 일대는 또 다른 한국 ‘근대의 통로’였다. 한국의 근대성을 살펴보는 한 표본이자 부산의 근대성을 엿보는 계기가 된다는 뜻이다. 1905년 무렵이었다. 대한제국이 너무 너덜너덜해져 ‘이게 나라냐’는 소리를 들을 때였다. 그때 갈대밭 천지이던 대저라는 섬에, 풀뿌리 식민자들이 몰려들었다. 일본인 농업이주자들이다. 대저에서 ‘뜯어먹을 게’ 많았기 때문일 터다. 현재 강서구 대저1동 곳곳에서 확인되는 일본식 가옥들은 그 흔적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이 존재한다. 스토리텔링은 대중적 버전이다. 연구자의 서재에 갇힌 자료를 대중에 전달한다. 부산에서 이야기 축제가 한창이다. 오는 31일까지 진행되는 제10회 부산스토리텔링축제다.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가 주관한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부산 북구를 다시 만나는 시간’. 익히 알려진 이야기도 어떻게 보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스토리의 힘이다.
스토리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은 또 있다. 세계적 석학 제레미 리프킨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대한민국이 “수십 년간 어려운 조건에서도 복원력을 보여준 나라”라며 “부산이 2030세계박람회를 유치하면 전 세계에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한국이 해냈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가브리엘 파빌리온’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공식 심포지엄’(국제신문 지난 11일 자 1면 보도)에서다. 리프킨 이사장이 강조한 것은 부산 및 한국의 ‘복원력’과 지구촌 공동번영론이다. 기자는 그 ‘복원력’의 원천이 부산항 제1부두라고 여긴다.
부산항 제1부두는 애초 ‘타자의 공간’이었다. 일제의 필요에 의해 들어섰다. 1911년 3월 1부두의 돌제(해안에서 직각 방향으로 들어선 구조물)와 잔교(접안시설)가 준공됐다. 1부두가 실질적으로 기능을 한 것은 1912년 6월 15일 이후다. 이때부터 무역 및 철도 환승형 여객부두 기능을 했다. 앞서 일제는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연락선을 띄웠다. 1부두를 통해 풀뿌리 식민자들이 ‘신천지’ 조선으로 발을 내디뎠다. 박재혁 의사를 비롯한 많은 독립투사도 1부두로 드나들며 해방 조선을 향해 나아갔다. 해방 이후 1부두는 귀환동포의 공간이 됐다. 더는 ‘타자의 공간’만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기간 유엔군이 들어오고 군수물자가 내려진 곳이 1부두였다. 전쟁 역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해당 기간 1부두에 접안한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는 군인과 민간인을 치료하는 한편 우리나라 고아들을 돌봤다. 1950년대까지 1부두는 유엔 원조와 국가 재건의 핵심 공간이었다. 1952년 10월 1부두에서 최초의 한국 선적 화물선이던 고려호가 미국으로 출항했다. 전쟁의 와중에 대양 항로의 서막이 올랐다. 1957년 6월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의 동남아 해역 참치 조업 출어식이 열린 곳도 1부두였다. 1963년부터 10년간 1부두에는 지금의 부산공동어시장인 부산종합어시장이 자리 잡았다. 1부두에는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끈 해운업과 원양수산업 개척의 역사가 있다. 기자가 한국의 위기 극복과 도약을 향한 ‘복원력’의 원천이 1부두라고 보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문화재청의 세계유산분과위원회 심의 결과 1부두를 포함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결정됐다. 그해 여름 1부두의 옛 창고 건물 4000㎡는 2022부산비엔날레의 전시장이 됐다. 여기에는 부산이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관문이자 이주의 통로였고, 근대도시 부산의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투영됐다. 그 ‘대표 공간’이 1부두다.
1부두의 관할 지자체인 부산 중구가 부산시의 등록문화재 등록과 관련해 ‘반대’ 취지를 담은 검토의견서를 최근 시에 제출(국제신문 지난 4일 자 8면 보도)했다. 등록문화재 등록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절차다. “1부두가 문화재로 지정돼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면 북항재개발 사업을 통한 경기 활성화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근대문화유산에 ‘제한’, ‘규제’ 등을 담은 ‘문화재’ 딱지를 붙일 필요는 없다. 등록문화재이다. 지정문화재는 규제에 의한 원형 보존을 위주로 운용되지만, 등록문화재는 활용을 통한 보존이 주된 목적이다. 소유자는 등록문화재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근대도시 부산의 공간이던 은행(한성1918)과 쌀 창고(노티스), 병원(창비부산)에서는 시민이 커피를 함께 마시거나 공연, 전시 등의 문화행사를 열고 즐긴다. 1부두도 이와 같다. 1부두의 ‘다각적인 활용 방안 마련’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등록문화재 이후라도….
오광수 편집국 부국장·걷고싶은부산·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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