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친구
유난히 무덥고 비가 많았던 올해 여름. 야간에 산행을 하기로 했고 일기예보에는 밤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다. 야간에 하는 산행이고 축복처럼 비까지 내려준다니 한편 두렵고 한편은 설레었다. 두렵지만 산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산행을 함께하는 친구를 생각하면 지난날 산행을 같이하다 유명을 달리한 친구, 여러 사정으로 산행을 함께하지 못하는 친구, 그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가 어느 능선 길을 지나면 살아 나오고,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어느 바위를 오르다 보면 살아 나오니 산 또한 친구가 된다.
우리의 친구 개념과 영어권의 friend는 의미가 다소 다른 것 같다. 영어권에서는 나이차가 10살 이상이라도 가족 친인척을 제외하고 친한 사람을 friend라고 부른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라 친구(朋友·붕우)라고 하면 나이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는 외간 사람 정도라는 뜻이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친구는 ‘나와 동갑 또는 동급생인 친한 사람’만을 친구라 부른다. 단 한 살만 차이가 나도 친구 관계가 되기 매우 어렵다. 어쩌면 일본군으로부터 이어진 대한민국 국군의 수직적 군대 문화에 변질된 유교적 전통이 혼합되어 사회에 심어져 내려온 영향이 크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고산은 벗을, 좋고도 그칠 때가 없는 물과 지고 피는 꽃과는 달리 변치 않는 바위, 눈서리에도 구천에 뿌리 곧은 소나무,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사시에 푸른 대나무, 세상일 다 보고도 말 아니하는 달, 이 다섯을 모두 친구라 하는데 나이는 무슨 상관이며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왜 필요하며 사람이 아니면 또 무슨 상관이겠는가? 소준의 ‘계명우기’에 보면 친교의 목적과 관계 형태에 따라 4가지 부류의 친구를 구분하는데 외우(畏友)는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는 친구이니 서로의 잘못을 바로 잡고 의리를 지키는 사이, 친구이상으로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친구이며, 밀우(密友)는 힘들 때 서로 돕고 친밀한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친구이고, 일우(昵友)는 즐거운 일에만 잘 어울려 함께 노는 친구, 힘들고 어렵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곁에 없는 친구이며, 적우(賊友)는 필요할 때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어울리는 친구, 자신이 불리한 일이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는 친구로 구분한다.
산길을 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천둥이 치고 벼락이 내려친다. 나와 같은 산에 있는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나는 어떤 친구를 친구라 하는가를 생각하다 지음(知音)인 친구, 백아절현(伯牙絶絃) 이야기가 생각난다. 본래 지음은 종자기(鍾子期)한테서 나온 것으로 사람 이름이다. 백아(伯牙)는 중국의 거문고 명인이다. 백아의 지음이 종자기다. 그의 거문고 곡조 소리를 알아준다는 뜻이다. 그건 친구 간에 서로 그 사람 뜻을 알아준다는 말이다. 지음(知音)이 지기(知己)인 것이다. 백아가 진나라 대부로서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됐는데 풍랑을 만나 어느 낙도에 다다라 달밤에 거문고를 한 곡조 뜯으니, 저쪽에서 누가 제대로 장단을 맞추어 지음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웬 사람이 지게 목발을 치면서 맞장단을 쳐 백아가 누구냐고 물으니, 종자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백아와 종자기는 거기서 의형제를 맺는다. 일국의 대부, 장관하고 그 나무꾼 하고 의형제. 그렇게 지음 자리에는 국경도 없고, 귀천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 후 3년 만에 친구 생각이 나서 그 섬으로 찾아가 그 자리에 가서 또 한 곡조를 뜯는데 비곡(悲曲)이 나와 ‘참 희한하다. 어째서 이럴까?’ 백아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종자기를 찾고자 길을 가는 노인에게 종자기 집을 물으니 그 노인이 대성통곡을 하며 종자기가 자기 아들인데 죽었다는 것이다. 백아는 그때서야 느닷없이 비곡이 나온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거문고를 산산조각이 나게 부숴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뜯지 않았다고 한다.
지음이라는 게 그런 것이고 지기인 친구라는 게 그런 것이다. 그런 친구가 있는가 생각하며 빗속을 걷다가 벼락 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산은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너는 너와 함께 산을 타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친구냐고. 쏟아지는 빗속에 정상은 보이질 않고 등산화 속에 물이 질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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