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광고 사양한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 “난 연예인 아닌 선수”

김영준 기자 2023. 10.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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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투혼 ‘항저우 2관왕’ 안세영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이 8일 인천공항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 두 개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뉴시스

“길을 걸으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분이 알아봐주시고 ‘경기 보면서 눈물 흘렸다’ ‘무릎 괜찮냐’고 말해주세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낳은 최고 스타 중 하나인 배드민턴 2관왕 안세영(21·삼성생명). 개인전 결승 도중 무릎 힘줄이 파열된 가운데서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한 장면은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휴식과 재활을 위해 당분간 외부 활동 중단을 선언한 그를 지난 13일 전화로 만났다. 20대 초반 나이답게 목소리는 발랄했다. “부상 때문에 운동을 못 하고 푹 쉬고 있다”며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요즘은 잠을 많이 자고, 아이스크림처럼 운동할 때 못 먹었던 것들을 많이 먹고 있다”고 했다. “금메달 따고 아이스크림부터 먹고 싶었는데 도핑 테스트 받고 자정이 넘어서 못 먹은 게 너무 아쉽더라고요. 한국 오자마자 아이스크림부터 사먹었고, 지금도 먹고 있어요!”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그에겐 각종 인터뷰와 광고 제안, TV 프로그램 출연 요청이 빗발쳤다. 그러자 지난주 소셜미디어에 “너무 감사하지만 저는 연예인도 아니고 평범한 운동선수”라며 “앞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으니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려 한다”고 밝히며 사양 인사를 남겼다.

안세영은 올해 전영 오픈과 세계 배드민턴 개인 선수권을 비롯한 각종 굴지 국제 대회를 연거푸 석권했다. 여자 단식 세계 1위에 오르며 여제(女帝)로서 등극 채비를 다 마쳤다. 과거 천적으로 통했던 야마구치 아카네(26·일본·세계 2위)와 중국 천위페이(25·3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안세영은 천위페이에게 1승 8패로 절대 열세였으나, 올해 들어서는 아시안게임 두 경기 포함 7승 2패로 앞선다. 이전에 “천위페이에게 계속 질 때는 운동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천위페이가 이번 아시안게임 경기 후 “예전엔 안세영이 어려서 내가 이겼던 것뿐”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안세영은 “천적이 그렇게 얘기해주니 잘 성장하고 이겨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천위페이와 야마구치 같은 라이벌이 있어 더 단단해졌고, 많이 지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승부에 집착하는 배드민턴 말고 좀 더 여유롭게 내가 원하는 배드민턴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7일 중국 항저우 빈장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한국 안세영이 중국의 천위페이를 상대하던 중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적들을 제압한 비결은 지치지 않는 체력이었다. 그는 “체력 훈련을 많이 했고, 이길 수 있겠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겼다”며 “앞으로도 체력을 더 끌어올리면서 코치님들 지도를 잘 따라가면 충분히 계속 이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결승에서도 체력을 무기로 천위페이를 압도했다. “1세트 때 긴장해서 그런지 스트로크가 잘 안 됐는데, 다치고 나니 오히려 몸에 힘이 빠져서 스트로크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더 잘 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1세트 후반 부상 이후 2세트를 내줬다. 그때 셔틀콕을 최대한 좌우로 보내며 천위페이가 체력을 소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3세트에 승부를 걸어 승리를 따냈다. “계산한 전략이었다”면서 “이 상황(부상)에 어떻게 적응하고 맞춰갈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고 했다. 혹시나 선수 생활에 치명적인 부상일 수도 있었는데 불안하지 않았는지 묻자 “내 몸을 잘 안다”며 “걸을 수 있을 정도였고, 엄청 심한 부상은 아니라고 느꼈다”고 했다.

안세영의 남은 목표는 그랜드 슬램. 배드민턴 4대 국제 대회로 꼽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이다. 이제 지난 8월 세계선수권에 이어 이번 아시안게임은 달성했다. 내년 파리 올림픽과 아시아선수권을 향해 달려갈 작정이다. “부상을 당하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더 단단해질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잘 회복해서 더 강하고 단단해진 세영이로 복귀하겠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결승전이 끝나고 천위페이가 영어로 “너 이제 엄청 바빠지겠다”며 웃으며 물었다고 한다. 안세영은 이렇게 답했다. “아 나 원래 좀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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