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보다 바쁜 조연 김종수 “영화 위한 장판 깔아주는 게 내 일”

백수진 기자 2023. 10.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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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연 영화만 5편… 39년차 배우 김종수
지난 12일 만난 배우 김종수는 “마흔 넘어 처음 영화에 도전했을 때 이창동 감독이 ‘진짜 보고 들을 수 있으면 배우가 된다’고 했는데 이 말을 마음에 새겼다”면서 “지금도 연기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했다. /장련성 기자

얼굴은 가물가물해도 역할을 들으면 누구나 그의 연기를 기억한다. ‘미생’의 김 부장, ‘1987′의 박종철 열사 부친, ‘극한직업’의 치킨집 사장까지.... 39년 차 배우 김종수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영화 속 배경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든다. 지난 12일 만난 김종수(59)는 “그럴 듯한 장판을 깔고 벽지를 바르는 게 우리 조연들의 역할”이라고 했다.

지난봄 ‘드림’을 시작으로 여름 시장에선 ‘밀수’ ‘비공식작전’, 추석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최근 개봉한 ‘화란’까지 올해만 주·조연을 맡은 출연작 5편이 개봉해 총 920만 관객을 동원했다. 노숙자, 건달부터 골동품 가게 사장, 세관 공무원, 외교부 장관까지 선과 악,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매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다작 배우로 ‘또경영(배우 이경영의 별명)’에 이은 ‘또종수’라는 애칭도 생겼다.

배우 김종수는 올해만 출연작 5편이 개봉하며 총 920만 관객을 동원했다. 세관 공무원(밀수), 노숙자(드림) 등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였다. /NEW·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밀수’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40대 초반에 영화를 시작했는데, 상을 처음 받아본다. 늦게 받은 상이라 더 큰 축하를 받은 것 같다. 후배들이 ‘조금 더 일찍 잘됐으면 좋지 않았겠느냐’고 물어보는데 일찍 잘됐으면 빨리 소비되고 사라졌을 수도 있지 않겠나.”

-’밀수’의 류승완 감독은 “김종수 배우는 그 연배에 가질 수 없는 신선함이 있다. 매번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미지가 굳어지면 연기 생명이 단축될 것 같은 불안함이 있다. 20~30대 배우처럼 자라면서 모습이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투를 바꾸든, 눈빛을 바꾸든 미묘한 부분이라도 다르게 만들어보려고 고민한다.”

-’천박사 퇴마연구소’에선 백발 휘날리는 골동품 가게 황 사장으로 변신했다.

“캐릭터의 외양에선 머리 스타일이 가장 중요하다. 딱 맞는 옷까지 찾으면 연기할 때도 편해진다. 황 사장 역은 의상팀과 동묘에 가서 직접 의상을 골랐다. 동네 패션 센스 뛰어난 어르신 느낌으로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려 했다.”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에서 백발의 긴 머리에 노란 셔츠를 입고 골동품 가게 사장 역을 맡은 배우 김종수. /CJ ENM

1984년부터 울산의 극단에서 활동하던 그는 마흔이 넘어서 처음 영화 연기를 시작했다. 이창동 감독이 사투리 쓰는 배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오디션에 지원했다. ‘밀양’의 부동산 사장 역에 캐스팅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로 7~8년 동안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학생들이 찍는 단편, 독립영화, 아침 드라마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

-울산에서 머무를 수도 있었을 텐데, 늦은 나이에 도전을 한 이유가 있나.

“밀양을 찍고 나서 ‘나 같은 배우도 쓰임새가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촌에서 쓰기 딱 좋은 배우’ 정도로 남고 싶진 않았다. 기왕 하는 것 이 분야 최고들과 일해보자 싶었다. 50대 배우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리스트에 드는 게 목표였다.”

-맡은 역할마다 그곳에 수십 년 살아온 사람처럼 생활감이 느껴진다.

“관객이 이야기에 빨리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게 조연의 역할이다. ‘밀양’에서 송강호가 카센터 사장이라는 건 믿어지지 않지만, 우리 같은 조연 배우들이 그럴듯한 장판을 쫙쫙 깔아 놓으면 관객도 믿고 이야기에 들어올 수 있게 되지 않나.”

드라마 '미생'은 그의 얼굴을 대중에 알린 첫 작품이었다. 김부련 부장 역을 맡았을 땐 “그 건물에 일하던 부장님 데려온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tvN

-수많은 영화·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배우로서 크게 성장한 작품이 있다면?

“연기자로서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미생’이 가장 애틋한 작품이다. 배우는 사람을 공부하는 직업인데, 드라마 속 인물을 보면서 큰 공부가 된 것 같다. 제목 미생(未生)도 내 일생과 비슷하게 느껴졌고(웃음).”

-’화란’에선 신인 배우들과도 호흡을 맞췄는데, 연기 조언도 해줬나.

“요즘은 조언이 필요없다. 내가 어릴 때 봤던 영화랑 지금 영화는 제작 과정도 화법도 완전히 달라졌다. 오히려 그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더 고민하고 캐릭터를 분석해오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더 긴장하게 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50대 배우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룬 것 같다. 새로운 목표가 있나.

“예전엔 현장에 가도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사1 역할 어디 계세요?’ 찾으면 달려가고, 촬영이 끝나면 가도 되는지 말도 없고. 지금은 반갑게 인사해주는 동료가 있으니 그저 즐겁다. 일터이자 쉼터, 놀이터인 이곳에서 오래 일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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