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라
신약 개발은 일반적으로 병증을 정하고 그 질환에 반응성을 가지는 물질을 찾거나 제조하면서 시작된다. 그 물질의 물리화학적 성질과 효력을 확인하고 먼저 동물에 시험하여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한 후 사람에게 적용하는 과정을 거친다. 약물의 통계적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높은 기술력과 자본력을 동원해 의사와 환자 등 수많은 인력의 인고와 노력으로 이뤄지는 지난하고 힘겨운 과정이다.
예를 들어 새 항암제를 환자에게 시험하는 경우 암 환자 수천 명을 모집해 그들에게 치료 약물을 제공받을 기회를 주는 대신 그 약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감수하게 한다.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어려운 결정을 하게 만드는 사실은 그들 중 절반은 아무 효과도 없는 위약(僞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처방하는 의사도 투여받는 환자도 자신이 어떤 약을 적용받는지 모른다.
위약 환자는 오직 치료받고 있다는 희망만으로 긴 임상을 견딘다. 투여와 추적 관찰로 2년 이상 시간이 흐른다. 치료제의 효과가 입증되는 길은 실제 약 투여 환자의 생존율과 생존 기간이 위약 투여 환자보다 유의미하게 클 때뿐이다. 제약업계는 그때 환호한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에 기뻐하는 것이다.
제약회사 연구소는 환자와의 거리가 멀다. 누군가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은 문서와 통계적 수치로 이루어진다. 새 약물의 임상 성공 소식은 분명 고무적이고 큰 진보이며 그로써 많은 귀중한 생명이 회복되거나 연장되겠지만, 그 이면에 죽음을 맞은 다른 환자들의 슬픔과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삶의 행복과 기쁨 또한 다만 타인의 아픔과 죽음을 딛은 결과일지 모른다. 우리의 환호와 성공의 기저엔 얼마나 많은 간절한 자들의 희생과 고통이 숨겨져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무기력과 죄책감이 포함된 경건한 차분함이 마음속에 그늘로 드리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애달픔을 상기하는 일, 아득히 머무는 익명들에게조차 애틋한 고마움을 잊지 않아야 하는 일, 그것이 내가 제약업계에서 배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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