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훈련소 안 가고 바로 자대 배치되는 ‘스포츠 군인’
입대할 때 훈련소 안 가고 바로 부대 배치
이번에 훈련소 다시 가야 제대 가능
운동선수들 병역 혜택 둘러싼 각종 논란
이번 기회에 원점부터 재정비해야
프로축구 K리그2(2부 리그에 해당) 김천 상무(尙武)는 지금 비상이다. 시즌 4경기를 남기고 승점 2점 차 리그 2위를 달리면서 막바지 순위 경쟁이 한창인데 팀 내 최다 득점자이자 에이스인 조영욱(13골·리그 득점 2위)이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서 조기 전역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 공백을 메우려면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선수를 돈 주고 데려와야 하는데 상무는 군부대라 그럴 수 없다.
조영욱도 여러모로 난감하다. 시즌 중 팀을 떠나기도 겸연쩍은데 전역 자격은 얻었지만 바로 나갈 수도 없다. 상병인 그는 기초 군사훈련(3주)을 받지 않고 부대 생활을 시작했다. 훈련소 생활 없이 자대 배치됐다는 얘기다. 상무에선 관행적으로 그런다고 한다. 시즌 중 선수들이 입대하면 일단 경기부터 뛰고 훈련은 나중에 받게 했다. 조영욱도 마찬가지였다. 상무도 엄연히 국군체육’부대’인데 개운하지 않은 관행이다.
이제 부대에선 조영욱이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 전역시켜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영욱은 제대하려면 기초 군사훈련 수료를 비롯해 각종 전역 관련 서류 절차를 마칠 때까지 3개월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게 군 관계자 설명이다. 답답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군인들처럼 군사훈련부터 받고 부대생활을 시작했으면 바로 전역할 수 있었을텐데 누구 잘못인지 모르겠다.
상무는 우수 체육 자원이 병역 의무를 회피하지 않으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에서 ‘배려’해주는 조직이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레슬링, 역도, 양궁, 펜싱 등 25종목 350여 선수가 군 생활을 이곳에서 한다. 여자축구단도 있다. 대신 이들은 병사 신분이 아니라 부사관이다. 운동선수들이야 좋겠지만 운영은 비정상적인 구석이 많다.
우선 축구만 해도 선수들 경기 감각을 유지해 준다는 이유로 프로 리그에 참가하는데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군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 리그에 속해있다는 건 좀 기이하다.
더구나 지금은 상무가 2부 리그지만 1위라도 하면 K리그1(1부 리그)로 승격한다. 1부 리그면 그 나라 프로 축구계를 대표하는 장(場)이다. 이 때 다른 1부 리그 프로 구단들은 전전긍긍하게 된다. 명색이 최상위 프로 리그 구단이고 평균 연봉만 선수 당 2억8000만원(K리그1 기준)인데 이런 고액 연봉을 투자하면서 최고 1200만원(병장 기준)만 받고 뛰는 군인들에게 지기라도 한다면 “창피하다. 문 닫으라”는 팬들 비난이 빗발친다.
더 웃픈(웃기면서 슬픈) 건 상무 선수들은 팀이 어떻게 되건 말건 전역할 때가 되면 무조건 나간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이에 따라 성적이 영향을 받는다. 나름 프로 리그 소속 구단인데 선수 부상이나 이탈이 아닌 전역이 심대한 타격을 준다니 처량하다. 실제 10여 년 전 상무는 우수 프로 선수가 대거 입대하면서 쟁쟁한 팀들을 제치고 1부 리그 1위를 달린 적이 있다. 그런데 상당수가 시즌 도중 복무 기간이 끝나 제대해 그 이후엔 11위까지 급락했다.
상무 병사들 사이에는 계급도 없다고 한다. 선수 시절 밖에서 다 알고 지내던 선후배들이라 그 관계를 그대로 지킨다고 한다. 상병이 이등병에게 존대말을 쓰고 일병이 병장에게 하대하는 장면도 흔하다. 자기들끼리만 그러면 모르겠는데 선수가 아닌 부대 지원병들한테도 그런다고 하니 위계질서를 생명으로 하는 군대라 하긴 거북하다.
상무도 문제지만 이번에 논란이 된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 특례도 제도 운영에 꺼림칙한 부분이 적지 않다. 병역 특례는 병역 면제가 아니다. 대체 복무다. 기초 군사훈련과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하고 2015년 7월부터는 취약 계층이나 어린이·청소년 등에게 특기 활용 봉사 활동을 544시간 하도록 했다. 지나친 특혜란 비판이 많아 생긴 조항이다.
544시간을 2년10개월(34개월) 안에 마치도록 해 대체 복무라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봉사 활동 증빙 서류를 내는데 이 게 사달이 난 적이 있다.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입은 축구 장현수가 이 봉사 활동 기록을 위조했다가 들켰다. 엄밀하게 따지면 병역법 위반인데 그냥 봉사 시간을 추가하는 선에서 끝났다. 유도 안바울도 걸렸다. 당시 이런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닐 것이란 관측도 나와 전면적인 실태 조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흐지부지됐다.
손흥민 역시 이 봉사 활동 의무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주로 해외에 머물다 보니 34개월 내 544시간(한 달 15시간)을 채우기 쉽지 않았다. 기한 내에 못 채우면 1년 유예 기간을 더 주긴 하지만 대신 해외 출국은 금지다. 손흥민은 하필 코로나 기간까지 겹쳤다. 자칫 소속 팀 트트넘으로 못 돌아갈 상황이 다가오자 협회와 병무청이 나서 온라인·비대면 활동까지 인정해줘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사실상 예외를 허용해준 셈이다. 손흥민이기에 별 말 없이 넘어 갔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지나면서 예술·체육 요원 관련 병역 특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아졌다. 병무청도 이를 재검토해보겠다는 분위기다. 이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긴 어렵겠지만 운영이라도 공정하게 해야 한다. 그 가치와 형평성을 꼼꼼히 따져서 다른 군 복무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 진출을 달성한 선수들은 정부에 규정에도 없던 “병역 혜택을 달라”고 요구했고, 승전보에 들뜬 분위기를 타고 이를 관철시켰다. 그 때 서해에선 북한군 공격을 받아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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