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派獨 근로자 60년, 이제는 국가가 보답할 때

김홍균 주독일 대사 2023. 10. 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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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뤽 아우프(Glück Auf).”

독일의 1000m 지하 갱도에 들어갈 때마다 한국에서 온 광부들끼리 나누던 인사라고 한다. ‘행운을 갖고 위로 올라오라’ 는 뜻의 인사는 석탄 가루와 한증막 열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냈던 그분들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1963년 한국과 서독 정부 간 한국 광부의 임시고용계획협정에 따라 1977년까지 약 8000명의 한국 청년들이 탄광 인력이 부족하였던 서독에 파견되었다. 근로 조건이 열악한 서독의 병원과 요양 센터에는 한국 간호사들이 파견되었다. 1966년부터 10년간 1만1000명이었다. 이들 광부, 간호사들은 자신들의 땀과 눈물의 대가를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고 거의 모두를 고국에 송금하였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보낸 송금액은 많게는 당시 한국의 연간 총수출의 1.9%에 해당되는 거금이었다. 1달러의 외화도 소중했던 가난한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데 종잣돈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상당수의 광부와 간호사들은 계약 기간 종료 후에도 독일에 남았다. 하지만 이분들의 독일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대부분이 근로 기간에 비례하여 지급되는 독일 정부의 연금에 의존하고 있는데 연금액은 넉넉지 않다. 30대 초반에 와서 65세 정년까지 계속 일을 한 간호사 분이 받는 연금액이 월 1400유로(약 199만원)인데 방 한 개의 정부 소유 노인 아파트 월세 600유로를 내고 나면 물가가 비싼 베를린에서 생활하기 빠듯하다. 그나마 간호사들은 사정이 낫고 광부 출신 분들 중에는 근속 기간이 짧아 독일 복지 체계에서 벗어나 있어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분들도 많다.

올 추석을 맞아 70~80대의 노인이 된 광부, 간호사 100여 명이 한국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최초로 파독 근로자들만을 위한 오찬을 베풀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꽃피운 그대에게”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 앞에서 “이제는 대한민국이 감사드리고 모실 차례이고 여러분의 땀과 헌신을 국가의 이름으로 예우하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지난 2002년 국회는 파독 근로자에 대한 지원 필요성에 공감하고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에 대한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기념사업을 위주로 하고 있어 파독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난해 파독 근로자에게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법률안 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해당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파독 근로자들이 중동 진출 건설 근로자나 자발적 해외 이민자와 무엇이 다르냐고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근로자 독일 파견은 국가 간 협정에 따라 추진된 사업이고 그들의 파견을 담보로 서독 정부로부터 1억5900만 마르크를 빌릴 수 있었다.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송금액과 더불어 ‘한강의 기적’ 초석이 된 것이다. 조국에 대한 이분들의 기여에 조금이나마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 될 것이다.

올해는 한국과 독일이 외교 관계를 수립한 지 1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파독 근로자들은 모범적인 교민 1세대로서 한인 사회의 뿌리를 내리고 양국 관계의 기반을 다지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는 국가가 책임감을 갖고 파독 근로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하고 보답할 시기이다. 그 시작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법률 개정안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데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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