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보는 내내 벌받는 느낌이었던 ‘화사한 그녀’, 어떻게 예매율 1위 했나

신정선 기자 2023. 10. 16. 00: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 어때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6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보다가 ‘이런 영화는 관객이 봐준 대가로 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은 물론이고 관람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보상도 해줘야 하고요. 뉴스레터 독자분들이 알면서도 속는 영화 마케팅, ‘그 영화 어때’ 13번째 레터는 영화 ‘화사한 그녀’의 ‘전체 예매율 1위’ 주장을 짚어보겠습니다.

영화 '화사한 그녀'(감독 이승준) 포스터. 화사한 것은 포스터뿐이다.

영화 ‘화사한 그녀’(감독 이승준)는 지난 11일 개봉했습니다. 그런데 언론 시사회를 5일에 했어요. 4일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해 대부분의 영화 기자들이 부산에 내려가 있을 무렵입니다. 흠. 기자들이 안 보고 안 써도 흥행에 자신 있어서? 아니면 기자들이 안 보는 게 오히려 나아서?

10월10일 오전 제 이메일함에 도착한 메일 제목입니다.

‘<화사한 그녀> 엄정화의 코믹 케이퍼 통했다! 전체 예매율 1위! 화사한 흥행 예고!’

열어보니 서두부터 잔뜩 흥분했습니다.

<화사한 그녀> 개봉 D-1! 전체 예매율 1위 등극!

<30일>, <화란> 제쳤다! 10월, 흥행 다크호스 등장! ‘흥행 퀸’ 엄정화의 화사한 컴백!

2023년 10월10일 실시간 예매율. 개봉 하루 전인 영화 '화사한 그녀'가 2만3996명을 모아 1위로 기록됐다.

위는 메일에 첨부돼 있던 캡처파일입니다. 제가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다면 당장 데이터를 비교해봤을텐데, 이때만 해도 아직 ‘화사한'의 실체를 접하지 못했던지라. ‘30일’은 어떤 영화에 의해서든 제쳐질 만하고. ‘화란’은 취향을 많이 타니까. ‘화사한’이 잘 나와서 일찌감치 입소문을 탔으면 가능한 상황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15일 일요일) 영화를 보았습니다.

먼저 든 생각이 제가 레터 첫 줄에 적은 문장입니다. ‘이 정도면 봐준 내가 돈을 받아야겠는데.’ 도입부부터 어리둥절. 보는 내내 벌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관객을 뭘로 보는 거지, 생각도 들더군요. 제가 영화 담당이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일어섰을 거에요. 담당기자니까 참고 참으며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보고 나왔습니다.

이런 영화가 예매율 1위를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데이터 보시겠습니다. 아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자료입니다. 위가 ‘화란’ 아래가 ‘화사한’입니다.

영화 '화란' 발권 통계, 15일 현재.
영화 '화사한 그녀' 발권 통계. 15일 현재

‘화사한’ 측에서 ‘화란’을 제쳤다고 내세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날 개봉했거든요. 두 영화의 개봉 당일인 11일 매출과 관객수 봐주세요. ‘화사한 그녀’ 1만3118명에 9987만2400만원, ‘화란’ 3만1843명에 2억909만2301원입니다. 장당 가격이 다르죠. ‘화사한’ 7613원, ‘화란’ 9110원입니다. ‘화사한’은 정가의 절반입니다. 10일 실시간 예매로 2만명 넘었을 때는 장당 가격이 대략 7000원 이하로 떨어졌을 듯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런 영화가 전체 예매율 1위를 하는 쉬운 방법, 그것은 쿠폰입니다. 공짜 쿠폰이든 할인쿠폰이든 개봉 전에 예매율 순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쿠폰을 마구 뿌리는 겁니다. 물론 그만큼 매출은 줄어듭니다. 하지만 전체 예매율 1위라는 수치를 만들기 위한 초기 투자비로 보는 거죠.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영화 '화사한 그녀가 예매율 1위라는 기사들.

쿠폰을 뿌리고 1위를 억지로 만들어서 느낌표로 가득한 보도자료를 뿌립니다. 그러면 기사가 포털에 노출됩니다. 피해자는 관객입니다. ‘1위? 괜찮은 영환가?’ 안 그래도 밝고 경쾌한 영화가 보고 싶었던 어떤 관객은 1만5000원을 주고 기대에 차 예매합니다. 그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장탄식을 해도 늦었죠. 분노한 관객은 이제 영화관 대신 집에서 안전하게 OTT를 켜지 않을까요. 악순환이죠.

‘화사한’만 쓰는 방법은 아니에요. 정도의 차이지 다른 영화도 쓰긴 합니다. 심지어 익숙합니다. 그런데 그 순위와 영화 만듦새가 지나치게 차이가 나면 이번처럼 눈에 띄는 거죠. 기자나 평론가들 평가가 항상 맞거나 여러분의 취향과 일치하진 않을 순 있습니다. 그래도 영화 좀 봤다는 사람들의 평을 꾸준히 읽으시면 선택에 도움이 되실 거에요. 포털에 무작위로 노출되는 보도자료 말고요. 여러분의 1만5000원은 소중하니까요.

그럼, 다음 레터는 보시면 재밌을 영화로 보낼게요. 감사합니다.

그 영화 어때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