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로리’, 파이프 오르간이 바흐 연주하자…무대가 울렸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롯데콘서트홀 무대 위에 앉은 관객 100명
21년 3개월간 이어진 마룻바닥 콘서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띠로리 ~ 띠리리리리 띠”
첫 마디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곡이 있다. 숱한 예능 프로그램과 시트콤 속 ‘좌절’ 장면에 사용된 바로 그 곡. 패기 넘치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가 5000여개의 파이프 소리로 롯데콘서트홀 무대를 쩌렁쩌렁 울렸다. 오르가니스트 박준호가 손과 발을 분주히 옮길 때마다 음표들의 파동이 무대 바닥으로 고스란히 전달됐다. 발끝이 찌릿하며 전율이 일면, 그제야 또 한 번 체감한다. ‘마룻바닥 콘서트’의 묘미를 말이다.
999번의 공연 끝에 ‘더하우스콘서트’(이하 하콘)가 집밖으로 나왔다. 지난 10일이었다. 장장 21년 3개월간 한 주도 쉬지 않고 이어온 ‘하콘’이 1000회 공연을 맞아 첫 외출을 하는 날이었다. 장소는 국내 굴지의 클래식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 2000여석 규모의 공연장은 이날 텅텅 비었다. 의도된 ‘공백’이었다. ‘하콘’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전층 객석을 통째로 비우고 무대 위로 관객 100명을 올렸다. 합창석, 날개석만 오픈해 받은 관객은 고작 400명. 이날의 관객들은 난생 처음 연주자들처럼 객석을 바라보며 롯데콘서트홀 무대 위에 앉았다.
‘하콘’의 1000번째 무대엔 총 여덟 팀, 53명의 음악가들이 섰다.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 대표는 “1000회 콘서트의 구조는 1, 2, 3, 4-4, 3, 2, 1‘이라고 했다. 첫 무대와 마지막 무대, 두 번째 무대와 일곱번 째 무대 등이 짝을 이룬 구성이었다. 일종의 ’수미쌍관‘이 ’하콘‘의 1000번째 만남에서도 이어졌다.
첫 무대와 마지막 무대는 대편성으로 만났다. 첫 주인공인 에라토 앙상블이 모차르트가 8세 때 작곡한 교향곡 1번으로 대편성 무대를 선보였다면, 앙상블블랭크는 예술감독 최재혁의 지휘로 스티브 라이히의 곡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곡이었다.
두 번째 무대는 열한 살 첼리스트 김정아였다. ‘하콘’은 오랜 시간 스타 발굴의 장이었다. 원조 클래식 스타인 김선욱은 열여섯 살에 ’하콘‘에 처음 얼굴을 비췄다. ’쇼팽 콩쿠르‘ 최초의 한국인 우승자가 되기 전이었던 열다섯 살의 조성진,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이었던 열일곱 살의 임윤찬도 일찌감치 이곳을 거쳤다.
이번 1000회 갈라콘서트에 등장한 영재 김정아의 무대는 400명의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허밍과 함께 솔리마의 ’라멘타치오‘를 연주했고, 종종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관객들을 훑어 보기도 했다. 소리의 울림을 헤아리려는듯 롯데콘서트홀의 높은 천장을 바라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김정아와 짝꿍이 된 무대는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무대였다. 영재와 ‘완성형 연주자’의 무대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잘 맞는 짝이었다. 문지영은 2019년 2월 첫 무대를 가진 이후 무려 11번이나 ‘하콘’과 인연을 맺었다. 유독 ‘하콘’의 무대를 아끼는 문지영은 오랜 고민 끝에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를 선곡했다. 문지영이 ‘하콘’의 첫 무대에서 연주한 곡도 바흐였다. 문지영은 “지나온 하우스콘서트의 시간과 공간의 분위기, 관객으로 공연을 들을 때 특별한 순간을 맞을 수 있는 곡을 생각하며 선곡했다”고 말했다. 흐트러짐 없이 내면의 소리까지 담아낸 흡인력 있는 무대였다.
색소폰과 현악기도 짝꿍이었다. 관악기와 현악기의 대비를 보는 두 무대였다.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와 피아니스트 문재원이 함께 한 무대에선 아찔한 호흡을 만끽하며 찐득한 관의 매력을 만났고, 젊은 연주자들의 현악 사중주 아레테 콰르텟의 무대를 통해 도약하는 실내악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르간의 짝은 국악기 생황이었다. 생황 연주자 김효영은 하프 연주자 황세희와 퍼커션 김정균과 함께 이색적인 생황 연주를 들려줬다. 국악기임에도 서양악기처럼 이국적인 생황의 소리에, 종종 가야금을 뜯는 듯한 하프의 조화가 생경하지만 아름다웠다.
‘더하우스콘서트’는 2002년 7월 12일,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박창수 대표의 연희동 자택에서 시작됐다. 이 공연이 특별한 것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지우며 음악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좁혀졌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의 듣는 음악의 질감은 독특하다. 공연장의 편안한 의자에 앉을 때와 달리 음표 하나 하나가 바닥을 타고 손끝, 발끝으로 와닿는다. 소박한 공간에서 마주한 특별한 음악은, 감동 이상의 울림을 남긴다.
첫 외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대형 클래식 공연장에서 연주자들만 볼 수 있던 객석을 바라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고, 악구마다 실린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무한한 진동으로 다가왔다.
1000번의 공연을 마친 뒤 박 대표는 무대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마라톤을 완주한 느낌이 이런 걸까 싶디. 한 번 더 완주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공연 내내 살며시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느끼고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본 그는 “1000회를 끝으로 대표 자리에서 내려온다”며 “하우스콘서트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대교체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마룻바닥 콘서트’는 1000회 이후에도 계속 된다. 1001번째 만남은 바이올리니스트 스티븐 김과 비올리스트 박하양의 무대다. 다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으로 돌아간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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