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문병기]‘저항의 축’과 ‘독재의 축’이 만날 때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2023. 10. 1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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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공격해 전쟁을 일으킨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소위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에 속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이 전쟁 발발 후 거의 매일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어떤 세력도 이번 사태를 이용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 이유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목표를 이미 달성한 만큼 이란 등이 미국과 직접 충돌하는 모험을 감수하려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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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지원 명분 힘 얻는 美 우선주의
글로벌 안보 질서 변화 신호탄 우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이스라엘을 공격해 전쟁을 일으킨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소위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에 속한다. 미국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국의 동맹에도 반대하는 비공식 군사 동맹을 뜻한다. 이란,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인 하마스와 헤즈볼라, 시리아, 예멘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일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다만 미국은 지상군 투입이 ‘저항의 축’의 전면적인 참전을 야기할까 우려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이 전쟁 발발 후 거의 매일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어떤 세력도 이번 사태를 이용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 이유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저항의 축 내부에서도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있는 만큼 참전의 ‘레드라인(금지선)’ 또한 각각 다를 것으로 분석했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면한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는 참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는 이란, 예멘, 이라크 내 시아파 무장단체 등이 참전하는 확전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가 사실상 물거품이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목표를 이미 달성한 만큼 이란 등이 미국과 직접 충돌하는 모험을 감수하려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전쟁이 확전 없이 끝난다 해도 이미 민간인 살육 같은 참사가 벌어진 만큼 글로벌 안보 정세에는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외교 거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꼽은 지정학적 핵심 지역인 유라시아 서쪽(유럽)과 남쪽(중동), 동쪽(동아시아) 중 두 곳에서 동시에 대규모 분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년 8개월을 맞은 상황에서 발발한 이번 전쟁은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이른바 ‘독재의 축’과 ‘저항의 축’이 공통의 이해 관계를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이 하마스에 무기를 지원하는 정황은 이미 포착됐다. 또 북한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 방공 체계 ‘아이언돔’ 무력화 등의 여파를 진단하고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활용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또한 이번 전쟁을 반기는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탓이다. 중국은 양비론을 유지하며 ‘평화 중재자’로서 중국의 역할을 부각하려 한다. 하지만 날로 커져가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 우려 속에 유럽과 중동에서 발발한 전쟁이 중국의 군사적 팽창주의를 자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대한 변화는 미국 내부에서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우선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삭감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는 국제 분쟁 개입을 줄이고 동맹국의 안보 부담을 높여야 한다는 ‘미국 우선주의’ 세력의 새로운 명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억제력은 본질적으로 심리의 문제다. 이스라엘을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이면 자칫 중국과 북한이 이를 자신들에 대한 미국의 억지력 약화 계기로 여기고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전쟁이 자칫 미국의 쇠퇴와 미국 주도의 글로벌 질서 해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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