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칼럼] 한국형 디지털서비스법을 고민하자
EU, 플랫폼 기업에 대응 촉구
권리 오남용 콘텐츠 좌시 안 돼
기업 책임 묻되 대책 지원해야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가짜뉴스와 유해 콘텐츠가 기승을 부리면서 전장 못지않은 극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끔찍하고 폭력적인 게시물이 여과 없이 유통되고 조작된 영상과 뉴스가 난립하면서, 심리전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유럽연합(EU)이 즉각 행동에 나섰다. 메타, X(옛 트위터), 틱톡 등 플랫폼 기업에 대해 24시간 이내의 긴급 대응을 촉구했다.
EU가 과민 반응을 하는 걸까?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건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다. 27개 국가의 연합체가 디지털 전환의 국면에서 성찰과 토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단단한 디지털 규범을 형성한 것이 본질이다. 개인과 기업의 늘어난 자유만큼 이에 걸맞은 책임을 촉구하는 것이다. EU의 선택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지난 1일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아시안 게임 남자축구 중국팀 응원 조작 의혹이 터지자, 여론조작과 가짜뉴스 논쟁이 점화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곧장 ‘여론 왜곡 조장방지 대책’ 범부처 TF 구성을 지시했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여당 관계자는 중국 특정 세력이나 북한에 의한 개입도 의심되는 정황이라고 논평했다.
북한이 하마스 테러집단을 모방해 남한 영토를 침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네이버나 카카오를 이용해 가짜뉴스 전쟁과 극한의 심리전을 펼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일부 신문과 논평가들은 매크로에 능한 해외 이용자가 재미 삼아 중국팀 응원 지지율을 조작한 거라고,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며 정부 여당을 조롱하고 있지만, 과연 이들이 건전한 상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쟁, 테러집단이 콘텐츠를 남용하는 것이 심각한 만큼, 민주주의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콘텐츠 남용 역시 똑같이 비난받아야 한다.
여론조작과 민주주의 훼손이 심각한 문제인 만큼,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신공격과 인격살인, 사회 집단을 향한 혐오표현도 관용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비수와 다름없는 비방 댓글에 유명을 달리한 젊은 연예인들, 훼손된 명예로 극단적 고통에 시달리는 선량한 시민들을 떠올리면,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권리를 오남용하는 콘텐츠들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
한국형 디지털서비스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이미 논의되고 있는 추천 알고리즘의 투명성 문제를 포함하되, 가짜뉴스와 유해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의 책임을 일깨우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플랫폼 기업의 예방 노력을 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긍정적인 신호는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건전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크고 작은 플랫폼 기업들이 유해, 증오 콘텐츠를 탐지하고 가려주는 기술과 정책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런 자발적 노력이 법제화에 앞서 기업들의 대응역량을 키워줄 것이다.
카카오 먹통 사태가 1주년을 맞았다. 카카오는 데이터센터 추가 건립, 인프라 다중화를 통해 재발 방지를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안정성 보고서’에 담아 최근 발간했다. 플랫폼 기업에 단호하게 책임을 묻되, 합당한 정책 수립에 대해서는 격려하고 지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전하고 투명한 디지털 미래사회를 만드는 데 너와 내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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