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연출가·소프라노 뭉쳤다…최고의 야외 오페라 ‘자신만만’

이강은 2023. 10. 1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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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이발사’로 재회한 표현진·박혜상
10여년 전 조연출·단역으로 인연
표, 초보자도 즐기는 연출로 명성
박, 메트 등 세계무대 활약 이어와
서로에 ‘선생님’ 호칭 써가며 깍듯
끝없는 작품탐구… ‘찰떡호흡’ 자랑
“관객에 잊지 못할 작품 선보일 것”
“처음에 둘 다 에너지가 완전 올라 터진(한판 부딪친) 다음 서로를 더 이해하면서 잘 맞춰가고 있어요.”(박혜상)
 
“맞아요. 완전 저랑 똑같은 캐릭터예요(성격이에요). 불 같은 캐릭터.”(표현진)
오는 21∼22일 서울 용산구 한강 노들섬에서 공연될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7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서는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 박혜상과 국내에서 스타 연출가로 떠오른 표현진 연출의 조합 만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박혜상(왼쪽)과 표현진이 지난 12일 노들섬에서 연습 도중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서로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끈끈한 의리가 느껴지는 친구 같기도, 닮아 보이는 자매 같기도 했다.   

오는 21∼22일 서울 용산구 한강 노들섬에서 열릴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연출하는 표현진(42)과 주인공 ‘로지나’ 역으로 2016년 이후 7년 만에 국내 무대에 서는 소프라노 박혜상(35)이다.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여념이 없는 두 사람을 최근 노들섬에서 만났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의 거장 로시니(1792∼1868)의 대표작이다. 젊은 귀족 알마비바 백작이 사랑하는 여인 로지나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 과정을 경쾌한 음악과 익살스러운 이야기로 풀어간다.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연출을 맡은 표현진(왼쪽)과 주역 ‘로지나’로 출연하는 소프라노 박혜상이 연습 도중 함께 작품을 분석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표현진은 ‘달이 물로 걸어오듯‘을 비롯한 여러 창작 오페라와 모차르트 ‘마술피리’와 푸치니 ‘투란도트’ 등 유명 오페라에서 세련되고 감각적인 무대, 오페라 입문자도 몰입하며 즐길 수 있도록 한 연출로 주목받는다.

박혜상은 2020년 세계적 음반사 도이체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이듬해 성악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메트)에 주역으로 선 이후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번 노들섬 오페라 공연이 두 사람의 조합만으로도 기대감을 모으는 이유다.  

둘이 만난 건 ‘햇병아리’ 시절이던 2011년 이후 처음이다. 표현진이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국립오페라단 조연출로 있을 때 올린 도니체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대학(서울대 성악과) 졸업반이던 박혜상이 단역으로 출연했다고. 박혜상은 기억이 가물거렸지만 표현진은 “혜상 선생님이 아주 꼬마였는데 열심히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지난해 노들섬 오페라 공연을 기획해 ‘마술피리’를 선보인 서울문화재단이 ‘세비야의 이발사’ 연출을 표현진에게 맡기고, 박혜상이 출연하려던 메트의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 공연이 취소되면서 12년 만에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런데 연습 초반 둘 사이에 긴장감이 왜 높아졌던 것일까.  
표현진 연출
“‘로지나 장인’으로 불리기도 한 선생님은 7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서는 거니까 더 완벽하게 준비해 왔겠죠. 저도 야외에서 하는 큰 작품이라 최선을 다해 머릿속에 그려 놓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놓치고 ‘왜 그렇게 연출하는지’ 물으니 저는 ‘나의 의도가 이렇다’라고 반박하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고 연출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어요. 선생님이 새침데기처럼 보여도 실제론 야생마예요. 정말 예술가 같다고 할까.”(표현진)

“저는 작품을 해석할 때나 연기할 때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항상 물어봐요. 단순한 연기도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한 다음 하는 것과 ‘그냥 단순하게 해야지’ 하고 하는 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질문하고 요구한 게 많았는데 잘 받아주셔서 감사했어요.”(박혜상)

그렇게 서로 이견을 좁히고 이해의 폭을 넓힌 후에는 찰떡 호흡을 자랑한다. 연출가와 출연진 모두에게 쉽지 않은 야외 공연에서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오페라가 극을 다루는 만큼 성악가에게 배우로서의 자세를 요구하는 표현진과 작품·등장인물의 특성을 철저히 분석한 뒤 진정성 있게 노래하고 연기하려는 박혜상의 스타일이 어울리기도 한다. 
소프라노 박혜상
박혜상은 “(개인적으로) 노래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정화하고 위로 받는 데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노래와 연기에 진실한 감정을 담으려고 노력한다”며 “그럴수록 맡은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커지고 연기와 노래가 자연스러워진다. 관객들은 ‘진짜 노래’인지 아닌지를 가수 표정만 보고도 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표현진도 “오페라가 재미없을 때는 가수(배우)가 노래만 신경쓰고 엉뚱한 연기를 할 때”라며 “그런 면에서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작품을 탐구하고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려는 선생님이 더 돋보인다”고 박혜상을 높이 평가했다.   

3수 끝에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 들어가고, 졸업 후에도 오랜 기간 단역을 전전하던 박혜상이 해외 유명 극장들에서 러브콜(출연 제의)이 잇따르는 ‘월드 클래스(세계적 수준)’ 성악가가 된 건 이런 자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다만 월드 클래스 소프라노란 평가에 부담스러워했다. “그런 얘길 들으면 어디 들어가서 숨고 싶을 정도로 부족한 사람이에요. 물론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건 감사하죠. (그런 평가가) 부담될 때는 명상도 하면서 압박감을 안 받으려고 합니다. 자신감이 있어야 노래도 잘 나오거든요. (한편으론) 그런 평가들이 ‘주위의 믿음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그만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자극제가 되기도 합니다.”(웃음) 

앞으로 이들의 꿈이 궁금했다. 박혜상은 “조수미·신영옥·홍혜경 같은 선생님들 덕분에 내가 이 자리까지 온 것처럼 후배들이 (나보다) 더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을 닦아주고 싶다”며 후배 가수들과 국내 오페라 활성화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다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표현진은 “국내외 관객이 모두 좋아할 만한 (한국적 소재와 우리말로 하는) 멋진 창작오페라를 만드는 게 나의 숙명이고 사명”이라며 “그런 날이 오길 정말 고대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언젠가 세계적인 창작오페라로 함께 하길 소망하며 연습실로 향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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