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스라엘 수교 협상 중단”…미 ‘중동 데탕트’ 차질
중동 안정화 위해 ‘양국 관계 정상화’ 추진했던 바이든 곤란
일각선 “사우디, 이스라엘 양보 요구…포기 안 했다” 시각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의 수교 협상을 중단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추진해온 ‘중동 데탕트’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지면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으로 인해 중동의 역학관계가 또다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AFP통신은 14일(현지시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미국 측에 이를 알렸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이 리야드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만난 날 이런 사실을 전해 이 회담을 통해 ‘수교 중단’ 통보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알자지라는 미국이 사우디에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달라고 압박을 가했지만, 파르한 장관이 이를 거절했다고도 전했다.
앞서 사우디는 미국 정부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왔다. 미국이 사우디와 안보동맹을 맺고 원전 건설을 위한 우라늄 농축 등을 지원하는 대가로, 사우디는 이스라엘의 국체를 인정한다는 게 합의의 핵심으로 알려졌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로서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을 고립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다만 양국 수교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팔레스타인 문제였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주장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완강히 거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이에 대해 대대적인 보복을 예고하고 나서자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계속 수교 협상을 이어가는 데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하마스의 공격 직후에는 전쟁 확대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팔레스타인 주민이 양호한 삶을 누릴 권리를 지지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그러나 지난 13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대피령을 내리고 전면 침공을 예고한 후에는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방어 능력이 없는 민간인을 계속 표적으로 삼는 것을 규탄한다”며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이 같은 상황은 하마스가 애초 이스라엘을 공격한 목적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를 막기 위해 이번 공격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해왔다. 팔레스타인의 가장 큰 지지세력이었던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차례로 수교에 나서면 하마스는 고립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2020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바레인, 2021년 모로코·수단과 수교한 뒤 사우디와 수교하는 협상에 속도를 내왔다.
다만 알자지라는 사우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가 현재는 수교 논의를 계속할 수 없다고 중단한 것으로, 만약 논의가 재개될 경우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양보가 전제돼야 할 것이란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는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수교 협상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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