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光化門 글씨 아래 열린 ‘왕의 길’… 시민 곁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광화문 점등식을 하겠습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점등!”
사회자의 힘찬 구령에 맞춰, 광화문 앞에 환한 불빛이 들어왔다. 월대 복원에 기여한 임동조 석장, 광화문 현판의 문자를 새긴 오세종 도금공 등이 사각 유리등 조명을 켜자, 100년 만에 복원된 월대와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씨로 쓰인 ‘光化門’ 석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형색색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가 광화문 외벽 위에 펼쳐졌고,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조선 왕조의 정궁(正宮)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이 옛 모습을 되찾고 시민 곁으로 돌아왔다. 15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현판 및 월대 복원 기념 ‘새길맞이’ 행사가 열렸다. 국민 대표 500명과 함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등이 행사를 지켜봤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2006년 ‘광화문 제 모습 찾기’를 시작으로 추진된 현판과 월대의 복원이 마무리됐음을 알리고 완성된 새 모습을 국민께 선보인다”며 “임금이 백성과 직접 소통하던 역사적 가치를 계승해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새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
하이라이트는 오랜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공개된 광화문 현판.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쓴 기존 현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치밀한 고증 끝에 금색 글씨로 쓴 검은 현판이 새로 걸렸다. 지난 2010년 광화문 복원 기념식에서 공개됐던 현판이 석 달 만에 갈라지면서 교체하기로 결정된 지 13년 만이다. 이후 배경색과 글씨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소장 광화문 사진(1893년 무렵)과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발견된 경복궁 중건 공사 기록 ‘경복궁 영건일기’(1865년 10월 11일) 등을 근거로 현판의 색상 고증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2018년 ‘경복궁 영건일기’를 판독한 결과, “광화문 현판은 묵질금자(墨質金字·검은 바탕에 금색 글자)”라는 기록이 나온 것이 현판을 전면 교체하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 문화재청은 2018년 1월 검정 바탕에 금박 글씨로 현판 색상을 바꾸겠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지난 5년간 글자 크기, 단청 등을 정밀 고증하면서 나무의 내구성 강화를 위한 건조 작업을 계속해왔다. 글씨체는 현재 현판과 같이 경복궁 중건 당시의 훈련대장이자 영건도감 제조(조선 시대 궁 등의 건축 공사를 관장하던 임시 관서의 직책)를 겸한 임태영의 한문 해서체를 그대로 따랐다.
◇임금이 걷던 길 지나 경복궁까지
이날 함께 공개된 월대(月臺)는 궁궐의 주요 건물 앞에 단을 높여 설치한 넓은 공간을 말한다. 국가 중요 행사,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하는 장소 등으로 활용됐고, 현재는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종묘의 정전 등 일부 건축물에 남아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월대 전체 규모는 남북 길이 48.7m, 동서 폭 29.7m.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너비 약 7m 어도(御道·임금이 다니던 길)의 자취도 확인됐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소장했던 동물 조각상이 월대 중 어도의 맨 앞 부분을 장식했던 서수상(瑞獸像·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이었음이 밝혀져 유족이 이를 기증한 일도 있었다. 난간 양쪽을 장식하던 각 석조물이 고증과 발굴을 통해 제자리를 찾은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웅장한 취타대 연주와 함께 경복궁 수문장이 개문(開門)을 명하자, 붉게 칠해진 광화문의 세 홍예문이 활짝 열렸다. 참석자들은 임금이 드나들던 어도를 걷고, 월대를 통과해 경복궁으로 들어서면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홍승재 문화재위원회 궁능분과위원장은 “월대 복원은 그동안 단절됐던 광화문과 육조거리를 연결함으로써 한양 도성의 중심축을 회복하고 옛 모습을 완성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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