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일삼은 남편 살해한 아내, 2심도 집행유예

사업 실패 후 강압·폭력적 행동 일삼아
사건 당일 피해자 깨워 부부관계 시도
흉기 가져오라며 협박…피고인 범행
커피에 수면제 탄 뒤 목 졸라 살해
法 “가정폭력 피해, 배심원 의견 존중”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수년간 이어진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그를 살해한 아내가 항소심에서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부산고법 울산재판부 형사1부(재판장 손철우)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유지하겠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남편 B씨의 손목을 흉기로 긋고 베개로 얼굴을 눌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2017년도께 건축 관련 사업에 실패한 뒤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술을 마시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경제적 어려움마저 겪던 A씨는 아들 2명과 딸 1명을 데리고 시어머니 집에서 살게 됐다.

그러나 B씨의 폭력은 계속됐고 지난해 사건 당일에는 자던 A씨를 깨워 부부관계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술에 취한 B씨는 자신의 마음대로 부부관계가 되지 않자 화를 냈고 A씨에게 길이 32㎝ 흉기를 가져오라며 협박했다.

그러던 중 B씨가 자리를 비웠고 A씨는 미리 준비했던 수면제를 남편의 커피에 넣었다. A씨는 커피를 마시고 잠이 든 B씨의 손목을 흉기로 긋고 베개로 얼굴을 눌러 살해했다.

범행에 사용된 수면제는 지난해 A씨가 두 차례에 걸쳐 처방받은 약품으로 가루로 만들어 방 안 서랍에 보관하던 것이었다.

A씨는 수사기관에 “남편이 없으면 모든 사람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야 할 가치”라면서도 “A씨가 지속해서 가정폭력을 당해왔고, B씨가 없어져야만 자신과 자녀를 보호할 수 있다는 극단적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점 등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를 다시 구금하면 자녀들이 부모의 부재 속에서 성장해야 하고 B씨의 유족들도 탄원서를 제출했다”며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의 의견이 법원을 기속하는 효력을 갖지는 않지만 제도 취지를 고려하면 배심원의 의견은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1심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은 A씨의 범행에 대해 전원 유죄를 평결하고 집행유예에도 만장일치 의견을 냈다.

이재은 (jaeeu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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